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Apr 12. 2020

#7. 대학생활 첫마디, 대가리 박아!

3일 밤을 새도 죽지 않더라 

 한국해양대학교는 부산 영도구 조도라는 작은 섬 전체를 캠퍼스로 삼는 학교다. 1945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외항선사 산업역군을 길러냈고, 현재는 해운계 고급 인력 양성과 해운, 해양 관련 연구 등을 진행 중이다. 특히 4개의 단과대학 중 해사대학은 한 해 300명가량만 입학 가능했는데 많은 혜택이 주어졌다. 전 해사대학 생은 기숙사비 무료, 삼시세끼 질 좋은 급식이 무료, 4년간 입을 제복 및 구두 등 모든 의류가 무료다. 기성회비를 제외한 대학 등록금도 무료다. 가장 큰 특혜는 졸업 후 3년간 각 기업에 취업해 해기사(항해사 또는 기관사)로 근무를 하면 약 2년 간의 군대가 면제된다는 점이다.


 워낙 특수한 환경 때문에 다양한 학생들이 입학했다. 주로 서울, 경기, 부산, 경남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 외 다양한 지역에서 입학했다.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입학한 친구들도 꽤 있었다.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군대식의 절제된 생활이 좋아서 입학한 친구도 많았다. 그들은 졸업 후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군대를 자진 지원했다.  


 학교에 입학하면 적응교육을 받는다. 말이 좋아서 교육이지 지옥 훈련, 정신개조 그런 것이다. 교육 중 제일 처음 들은 말은 "대가리 박아!"다. 머리를 어디다 박으라는 건지? 왜 박으라는 건지?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검은색 챙이 긴 모자를 푹 눌러쓴 조교들이 튀어 오르는 팝콘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10분 뒤에 신입생 전원은 차가운 회색 바닥에 머리를 데고 있었다. 

 몇 분 후 차가운 열기가 이마로 전해졌다. 학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계속되는 훈련과 제복을 입고 생활하는 절재 된 삶. 처음 집을 나와 독립적인 나만의 공간을 갖나 싶었는데 전 학생 강제 기숙사 제공 및 2평 남짓한 공간에 2층 침대로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 2인 1실. 기숙사 건물마저도 30년이 지나 건축 D 등급을 받은, 언제 무너져도 모를 법한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잠을 자다가 위에서 깨진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져 뉴스에 나온 적도 있었다. (다행히 내가 졸업하면서 후배들 모두가 최신식 신축 기숙사로 옮겼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심한 훈련이 끝나고 직감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느낀 나는 재수를 위해 수학의 정석을 펼쳤다. 수능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이미 땀방울에 실려 증발한 지 오래였다. 날은 고요했고 룸메이트는 자고 있었다. 집합... 명제... 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함수... 수열.... 아! 나는 짧은 탄성과 함께 책을 덮고 읇조렸다.


 "내일 까지만 버텨보자!" 


 그렇게 나는 낮에 있던 혹독한 훈련을 고요한 밤에 펼쳐 든 수학의 정석으로 위로? 받으며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 나갔다. 내가 개념원리 책을 폈더라면 아마 재수 생활에 돌입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4학년 때 터진 몇 가지 사건 사고로 현재는 굉장한 학생 인권 배려가 보편화됐지만, 내가 입학할 때만 해도 1학년은 많은 불편함과 부당한 폭력을 감수해야만 했다. 계급사회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계급을 나누면 일부 계층에 권력이 생기고 그 권력은 아랫사람을 옥죄는 단초가 된다. 그리고 훈련을 통해 계급의 차이를 각인시키기도 한다.


 몇 가지 기억나는 훈련이 있는데 첫째는 해양훈련, 둘째는 부사관 합숙 훈련이다. 해양 훈련은 며칠간 해수욕장에서 합숙하면서 수영 등 을 배우는 훈련이었는데, 마지막 날 수영 실력에 따라서 학점이 부과된다. S나 A는 아무 장비 없이 맨 몸으로 수영하여 멀리 있는 섬을 돌아오면 된다. D 등급은 물 공포증으로 물에 들어갈 수 없는 학생들이 부여받게 되며, 나는 B등급을 받았는데 B등급은 구명조끼를 입고 섬을 돈다. 수영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잠자리다. 땀이 나서 찐득한 몸을 모래 위에 대충 놓인 돗자리 위에 눕힌다. 그러면 온갖 모래들이 팔, 다리, 목에 달라붙는데 도저히 떨어낼 수가 없다. 까끌까끌한 느낌을 끌어안은 채 그대로 잠이 들곤 했다.


 기억나는 두 번째 훈련은 부사관 합숙 훈련이다. 2학년 중 1학년을 교육할 수 있는 정예 멤버를 뽑는 단계가 바로 부사관 합숙 훈련이다. 지원자 가운데 많은 인원이 중간에 포기하는 가장 무시무시한 훈련이다. 우리 과에서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제비를 뽑았고 30분의 1 확률로 내가 뽑혔다. (해사대학에서 부사관 훈련을 받았다고 하면 체력과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보는데 나는 절대 지원하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듯 질질 끌려갔을 뿐...) 

 2주간 합숙 훈련을 받았는데 이때 처음으로 3박 4일 무박 훈련을 경험했다. 솔직히 시험기간에 하루는 날 밤샌 적이 있지만, 이틀 이상 밤을 새울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내게 무박 훈련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무려 3일 밤낮을 자지 않고 훈련을 받았다. 3일이 지나자 팔 벌려 높이뛰기 8,000개를 하면서 꾸벅, 팔 굽혀 펴기 천 개를 한참 하는데 힘이 들지 않아 정신 차려보니 자고 있었다.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점은 적어도 신체 건강한 20대는 3일 밤을 세도 죽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림픽에서 아무도 넘지 못한 벽을 뛰어넘는 순간 그다음 올림픽에서 모든 선수들이 그 벽을 뛰어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리적인 벽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데, 무박 훈련 이후로는 밤새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성사시키는 데 거리낌이 사라졌다. 3일 밤을 새도 죽지 않는다는 깨달음 덕분이랄까? (평생 깨닫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훈련을 제외한 학교생활은 평범하게 돌아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학교 생활도 슬슬 적응해 나갔고, 점점 다양한 활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경제 기사 스크랩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금융연구동아리에서 활동도 했다.(금융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여학생이 거의 없는 해사대학에 비하면 금융동아리에는 해양대 단과대 여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뿌듯했던 활동은 총학생회 활동이다. 


 생각 없이 활동하던 학교 인터넷 카페 덕분에 총학생회 후보 2팀의 학생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같이 총학생회를 꾸려볼 생각이 없느냐? 는 제안이다. A 학생회장은 총학생회 부회장 자리를, B학생회장은 기획국장 즉, NO.3 자리를 제안했다. 사실 별 생각은 없었다. 그저 학점 관리나 하면서 곧 있을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리던 때였기 때문이다. B학생회장은 끈질겼다. 그는 만나서 대화를 나누자고 얘기했고, 우리는 카페에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나는 단숨에 그에게 매료되었는데 그는 진심으로 학교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B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장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당선 후에는 기획국장으로 일하면서 대학의 로망! 1년에 한 번 오는 축제를 기획했다. 


 축제 예산은 약 1억 원이었고, 필요 인원은 축제 준비 위원회를 조직하여 30명을 모았다. 그들에게는 약간의 비용과 봉사시간이 부여되었다. 총학생회 약 30명의 친구들도 모두 축제에 동원됐다. 처음 진행해보는 큰 액수와 규모에 정신이 없었다. 특히 가수 선정은 굉장한 화두 거리였다. 나는 메인 가수로  아이유를 적극 추전 했는데, 단 몇 곡에 3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할 순 없었기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 다른 걸그룹으로 결정했다. 나는 메인 가수가 그다지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깊지 못했던 생각은 축제 때 눈 앞에서 걸그룹을 마주치고 눈 녹듯 사라졌다.

  6,000명이 넘는 축제는 끝이 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학점을 전 과목 A+ 을 받으면서 나의 대학 생활은 마무리되었다. 가장 바쁘고 정신없을 때 가장 좋은 학점을 받았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공부했던 것 같다. 역시 사람은 바쁠 때 더 많은 것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정설은 아니지만 내 경험상 그렇다. 생각해보니 오히려 바쁠 때 더 열심히 연애 했던 것 같다. 


 대학교 4학년이 끝나가면서 내 머릿속에는 모든 대학생 및 취업 준비생들의 염원인 취업으로 가득 찼다. 사실상 지금까지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오고 대학 생활 중에 학점 및 토익, 자격증 관리를 한 이유가 바로 직업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두근거리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곧 출항하기 위해 닻을 올리는 작은 배 위의 선장처럼 위태롭지만 씩씩하게 출렁거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6. 공든 탑이 무너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