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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Apr 28. 2020

#11. 영어를 못하는 항해사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는 법 

 긴 여로의 피로가 빚어낸 독소가 빠지기도 전에 새로운 업무들이 밀물처럼 들이쳤다. 나는 3등 항해사로 임명이 되었고 공식적으로는 하루 8시간 동안 근무했다. 선장을 제외한 1,2,3등 항해 및 기관사관이 각각 8시간 씩 근무한다. 3년의 군복무 기간을 마치고는 2등항해사로 승선 생활을 종료했다. 항해사의 주 업무는 직접적인 선박 항해, 선박 수리 및 점검, 안전비품 등 관리, 항해계획 수립, 본사 및 외국 회사 및 항만 등과 업무 협의, 화물 특성 파악 및 화물량 계산, 국제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 선원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한다. 자잘하게는 선내 병원 관리, 선원들 부식관리, 각종 지출결의, 수십 가지의 훈련 실시 등 이 있다.


 이중 제일 어려운 게 바로 선원 관리다. 특히나 언어가 다른 외국인 선원들과의 원활한 소통은 필수다. 선박에서는 다양한 나이대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같이 일한다. 내가 근무했던 선박을 예로들면, 관리층(선장 포함) 약 8명은 한국사람이고 나머지 필리핀, 미얀마, 중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주로 동남아 출신 선원이 약 15명 정도 승선한다. 이중에는 음식만 담당하는 주방장도 2명 승선한다. 당연히 선내 모든 소통 언어는 영어다. 과거 해가 지지 않는 해운 강국 영국의 잔재 여파로 해운업의 모든 서류 및 언어는 영어로 진행된다.


 영어는 대학 졸업부터 나를 끈질기게 괴롭혀온 녀석이다. 해운 바닥에 있으면서 영어를 못한 다는 말은 관광가이드가 그나라 언어를 쓸 줄 모른다는 말 처럼 어불성설이다. 주 무대가 전 세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선박에 승선 하자마자 느꼈다. 물론 선박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제한적이다. 특히 업무 지시 및 항해 장비 및 기계 등 의 메뉴얼 독해 등은 일정량의 용어만 익히면 눈에 쉽게 들어왔다. 하지만 더 발전된 회화 능력으로 소통하고, 주고 받는 메일에서 좀 더 돋보이고 싶은 게 사람이다.


 호주에서 겪은 일이다. 호주는 백인우월주의가 강한 나라로 특히나 영어를 못하면 무시받기 일수이다. 호주에서 컨베이너 벨트로 철광석을 선창에 싣고 있는 와중에 전화가 울렸다.


 "Hello captain! This is port control. Could you tell me the list?"

 (선장님! 여기는 항만관제센터입니다. 리스트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나는 당황했다. List(리스트)를 알려달라니? 나는 계속 물어댔다. "What List?" 그때까지 List 라는 단어는 '목록, 명단, 알림표' 등 으로만 알고있었다. 그리고 선박에는 수백개의 리스트가 있다. 어색한 대치 상황이 약 3분 여간 진행됬고, 호주의 항만 담당자의 말투가 바뀌었다. 잠깐 잠깐 화도내기 시작했다. 영어를 공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호주 발음 참 알아듣기 어렵다. 특히나 흥분한 백인 40대 말 많은 호주 네이티브 여성의 속사포 영어는 나로써는 알아먹을 재간이 없었다. 결국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가깟으로 구글링을 통해 List에 기울기의 의미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선박이 현재 왼쪽으로 2도 가량 기울어 졌다고 보고할 수 있었다. 그 호주 공무원은 "Ok"와 함께 전화를 툭, 끊어버렸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옅은 수치심을 느낀 채로 앉아있었다.


 사람은 충격으로 고통받지만, 자극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영어에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던 내가 더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영어란 놈을 잡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무심코 흘려 보냈던 많은 회사 복지들이 생각났다. 영어 학원 등록 비용, 전화영어 등 많은 무료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활용하지 않고 있었다.

 

 흔히 대기업의 장점으로 손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복지 시스템이다. 건강검진(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각종 학원 및 헬스장, 수영장 등 지원, 온라인 교육 지원, 복지 카드 지원(한 달에 약 10만 원 이상), 경조사 미 생일자 축하금 등 읽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만한 다양한 복지 제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일단 휴가 때 영어 학원을 등록하기로 마음 먹고는 당장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았다.


 첫째로는 외국인 선원과의 소통이다. 그전까지는 주로 업무 지시만 내리곤 했었는데, 굳이 먼저 다가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사실 필리핀 선원들은 영어를 참 잘한다. 필리핀 선원들은 한국의 대기업 해운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서 상당히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다. 그들은 대한민국으로 따지자면 소위 인서울 명문대학 수준의 대학을 졸업했다.(필리핀에는 명문대학 대부분이 해양계열 쪽이다.) 당연히 영어 실력도 우수했다. 나는 2살 어린 유창한 영어 실력을 구사하는 필리핀 친구와 친해졌다. 물론 처음에는 의도적인 접근 이었지만, 점점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6개월이 지나자 개인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이 레즈비언 이라는 비밀까지도 들려줬는데, 나는 굉장히 당황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 문화의 차이인 듯 싶다. 이 친구와는 지금까지도 카톡으로 대화한다. 이 필리핀 친구는 선박 생활 약 3년 간 벌어들인 수입으로 현재는 수도 마닐라에서 향수 가게 및 레스토랑을 운영중이다.


 둘째는 독학이다. 항해사라는 직업은 고독과 친해져야 한다. 특히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대양을 항해할 때는 더욱 그렇다. 낮에는 끝없는 수평선, 밤에는 은하수가 펼쳐진다. 브라질 동쪽에서 철광석 30만 톤을 싣고 중국으로 가는 항로였는데, 한 달을 내리 항해해도 배나 섬 따위를 거의 보지 못했다. 몇 주는 낭만이 있었지만 곧 모든 시간이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사실 정말 인생에서 느껴보지 못한 수준의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외로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부 뉴스속 이해가지 않던 상황들이 조금은 이해가기 시작할 정도로 외로웠다. 극한의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공부했다. 하루 평균 2~3시간 정도는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환경을 조성하여 성공한다는 말이있다. 정말 작은 부분으로는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을 최대한 침대에서 떨어진 곳에 놓으므로써 지각을 방지하거나,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책방을 만들어 책과 친해지게 하는 방법 등 을 말한다. 많은 부모들이 비싼 값을 치르면서도 자식을 어릴 때부터 유학길에 오르게 하는 것도 모두가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영어에 관심을 갖지 못한 이유도 어릴 때부터 그러한환경을 접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며,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부리나케 공부하게 된 이유도 영어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강제적으로 조성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의 친한 친구 5명의 평균이라는 흥미로운 통계도 있는데, 그저 웃어 넘길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서울 강남 거주 비용의 폭발적인 증가는 단지 주변 상업 시설과 편리한 인프라 덕분일까? 절대 아니다.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풍기는 능력과 수준 등이 더 능력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냈다. 그런 과정들로 오늘날의 강남이 탄생했다. 모두가 강남의 살인적인 집값과 사교육 열풍을 욕하지만, 정작 우리 모두가 강남 입성을 꿈꾸고 있다.


 물론 좋은 환경이라는 게 강남에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사람의 관계는 점점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지고 있다. 검색만 하면 세상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이제 스스로 각자가 필요한, 원하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매일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다짐만 하지말고, 지금 당장 SNS에 공개해보자! "3 달 안에 토익 800점 달성에 성공하겠다!, 올해는 10kg 감량에 성공하겠다!" 라고 말이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환경이 흘러갈 수도 있다. 원하지도 않는데 극한으로 몰고가는 상황이 닥치면 사람은 좌절하고 포기한다. 환경의 조성의 중요성? 개가 웃을 일이된다. 하지만 내가 선박에서 극한의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면서도 그 기회를 살려 조용히 공부에 매진했듯이 위기의 환경을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은 많은 고민 끝에 적는다. 감히 위로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곤경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환경을 활용해야 한다. 설사 그 환경이 극한이라도 니체의 말 "나를 죽일 수 없는 것들이 나를 강해지가 한다." 처럼 꿋꿋이 일어나 걸어나가야 한다. 그렇게 얻은 열매는 감히 나조차 상상할 수 없기에 맛본 자가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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