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urnee Dec 07. 2022

고상한 브랜드가 깜찍한 부캐를 만드는 법

나의 첫 캐릭터 프로젝트 에필로그

캐릭터 IP가 애니메이션 회사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던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간단히 살펴봐도 네카라쿠배당토 7개 회사 중 4개 회사에 캐릭터가 있네요. 카카오, 라인은 메신저가 있으니 개연성이 있다고 해도, 배달 앱과 중고거래 앱이 캐릭터를 활용하는 건 신기한 일입니다. IT 업계뿐만일까요? ‘캐릭터 마케팅’으로 뉴스를 검색하면 엔터, 제조, 유통 등 업계를 가리지 않고 최신 사례를 무척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장사를 잘 해왔는데, 갑자기 기업들이 왜 캐릭터를 원하게 되었을까요?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로 묶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회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캐릭터를 통해 더 친근하게 전달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더 나아가 그 IP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캐릭터를 만들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후자는 그 캐릭터가 유명해져야 가능합니다. 유명해지려면 당연히 그만큼 많이 뿌려져야 하고요. 캐릭터를 직접 키우는 비용과 시간을 쓰지 않고 이미 키워진 캐릭터와 협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회사의 선택에 달린 문제죠.


이미지 출처 :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현대백화점에는 자체 캐릭터 흰디(Heendy)가 있습니다. 캐릭터 마케팅이 트렌드라 갑자기 만든 건가 하실 수도 있겠지만 태어난지 3년이 넘은 친구입니다. 태생부터 고상하게도 크리스토프 니먼이 그린 하얀 강아지가 원형이었죠. 그동안은 비주얼 위주로 활용되다가 본격적으로 IP화 하는 시점에 제가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제 임무는 이 우아한 친구를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그에 맞는 에셋들을 개발해 여기저기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 풀어서 설명하면 얘가 어디에서 왔고 무슨 성격이고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저희가 만든 스토리텔링은 웨스티 행성에서 태어난 우주 강아지 흰디가 지구로 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말랑한 젤리 식물들 사이에서 뛰놀며 느긋한 일상을 보내던 웨스티 행성과는 달리, 지구는 항상 바쁘고 시끄럽죠. 흰디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이 각박한 지구를 탐구하고, 여유와 위로를 선물합니다.



Heendy Play Edition은 올해 상반기에 진행한 파일럿 프로젝트였습니다. 첫 시도 치고는 단가가 꽤 높은, 아웃도어 중에서도 골프 라인업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함께한 제 동료는 골프를 치러 멀리 나가는 과정을 '짧은 여행'으로 해석했습니다. 모처럼만에 짬을 내어 그린 위에서 만끽하는 즐거운 순간은, ‘조금 여유로워도 괜찮다’는 흰디가 전하는 키 메시지와 꽤 잘 어울립니다.


캐릭터 굿즈라고 해서 마냥 귀여운 느낌보다는 남자도 충분히 쓸 수 있는 디자인을 상상하며 원단을 셀렉했습니다. 맑은 하늘을 담은 듯한 컬러의 헤드커버와 클래식한 블랙 깅엄체크 아이언 커버는 이런 고민의 결과입니다. 모브랜드인 현대백화점의 중성적인 감성이 계승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새끼 예쁘다는 얘기를 길게 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조금만 더 들어주세요. 굿즈 제작 > 촬영 > 웹페이지 > 캐릭터 컨셉 영상 > 오프라인 연출까지 포함된 프로젝트였는데, 턴키 대행사를 끼지 않고 세세한 부분을 직접 챙긴 터라 애착이 깊습니다. 먼지를 마셔가며 원단과 실 조합을 고르고, 박스부터 작은 태그까지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포토를 섭외하고, 컷수를 정리하고, 촬영 장소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그 시기에 잔디가 잘 자란 곳이 없어서 인조 잔디 상태를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거든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진행하다보니 포토와 스타일리스트에 비용을 많이 몰았고, 인물 컷이 메인은 아니였기 때문에 제가 모델을 했습니다. 커머스 근무 시절에 얼굴 없이 나오는 모델을 종종 했다보니 큰 거부감 없이 진행하긴 했는데, 스타일리스트 분께서 3월에 크롭티를 입혀서 조금 춥긴 했습니다. 잘 찍는 포토 분께 사진 한 장 더 받는 게 비용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내심 걱정이 많았습니다. 막상 사진을 받아보니 그럭저럭 괜찮아서 안도감에 눈물이 찔끔 날뻔 했네요. 저는 사진 찍히는 걸 꺼리는 쪽에 가까운 사람인데, 일과 관련되면 사리지 않고 나서게 되는 제 모습이 신기하고 안타깝습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했어요. 혹여라도 이 글을 보고 직접 모델하고 모델비 아껴볼까 하시는 분이 있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모델 쓸 수 있으면 모델 쓰세요ㅠㅠ)



캐릭터도 처음, 골프도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생산한 물량도 다 팔렸고, 기억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기록해봅니다.


흰디 플레이 에디션 전체 제작물 보러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첫판보다 어려운 두번째 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