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순간을 찾아서

느리게 읽기 1: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by 예그림

오늘은 3번째 장(축)이 되는 '현재와의 접촉'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현재를 살아가라고 하는 말은 많은 철학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철학이나 심리학에서 과거를 바라보거나 분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이유는 '현재'를 더 잘 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힘들면 힘들수록 현재에 집중하기가 참 어렵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과거의 후회나 상처에 매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와의 '접촉'이라는 표현이 참 좋다. '현재에 집중해라, 현재를 살아라'라는 말이 이미 있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반박이 나올 법 하다. 그런데 현재와 '접촉'하라는 말은 아주 작은 면만 닿아도 되니 왠지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유하자면 방 밖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바깥으로 나오라는 것은 어려운 주문일 수 있지만, 창문 바깥에 손을 뻗어 공기를 느끼라는 것은 조금의 용기를 내어 가능한 정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별거 아니지만 사소한 접점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 과거와 내부와 보던 것만 보던 자신의 눈을 돌려보는 것. 가고 싶은 그곳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현재와의 접촉이 아닐까 싶다.




그는 그렇게 그의 삶의 조각들을 모아 반짝이는 순간을 엮어냈다. 이는 아팠던 과거의 기억이 없는 것으로 되거나, 과거의 트라우마가 불현듯 엄습해 올 때 느껴지는 버거움이 소멸되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여전히 앞으로도 그는 때때로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자책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렇게 엮어낸 순간의 의미, 그 순간에 머무를 때의 느낌, 살아 있어 좋고, 더 살아봐도 되겠다는 조그만 용기가 그간의 아픔만큼이나 그의 마음 한편에 깊이 자리할 것이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121.



책에 나온 예시는 오랜 고통에 시달리던 사람이 바다가 있는 곳에서 요트를 타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경험 자체가 무엇이냐가 아니라, 그가 '반짝이는 순간'을 기억하고 아픔과 상처의 조각들 사이에서 그 반짝임을 찾아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고통이 계속될 것이고 불쑥 올라오겠지만, 그 반짝임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어줄 테니.




책의 메시지와는 좀 다른 결의 이야기인가 싶은데, 나에게 반짝이는 것은 '순간'이라기보다 '일상' 같다. 나에게 힘을 준 반짝이는 '순간'을 떠올리라고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쌓아온 일상이 나를 지탱하고 있다. 거의 매일에 가깝게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주 3회 이상 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을 지켜나가는 것.

누군가는 내가 만들어가는 루틴이 더 어렵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반짝이는 '순간'을 원한다. 갖지 못한 것을 원하는 것이 인간이니 말이다. 항상 가득 차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수용했지만, 한 번이라도, 잠깐의 순간이라도 무언가 가득 차보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욕심일까. 내가 현재와의 접촉, 반짝이는 순간을 잘못 이해한 것일까?



'죽고 싶을 정도'로 무겁고 아픈 상처는 반대로 그 정도로 간절한 무언가가 있어야 성립한다. 학대의 공포와 트라우마로 죽고 싶다는 것은 심지어 죽음을 통해서라도 간절히 평온과 안식에 닿고 싶다는 의미다. 사랑의 배신으로 상처받아 죽고 싶다면 누구보다 진솔하게 연결되는 관계를 갈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궤변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소중한 순간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만 있다면.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121.



앞에서 '반짝임'으로 표현되었지만, 윗글에서는 '간절함',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실마리'로 표현된 그 무언가를 나는 갖고 싶다. 배부른 소리일지 몰라도. 나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지만, 강렬하게 살고 싶다거나 이루고 싶은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

죽고 싶지 않지만, 갑자기 내일 사고로 죽더라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한다. 깨달음과 성숙에 의한 초탈이라면 좋겠지만, 뭔가 목적 없는 삶 같은 느낌도 좀 있달까? 앞에서도 표현했지만, 내 마음과 머리의 일부가 비어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한 번이라도 온전히 채워질 수 있을까 싶게.


그래서 맞는 표현인 지 모르겠지만 앞에서 말한 비유를 빌려와 나의 현재 이미지를 표현해 보자면, 창문에 양 손바닥을 가득 대고 바깥을 바라보고 있지만 아직 창 밖에 나가지 못한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그 한 발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책을 통해 나는 그것을 찾고 싶은 것 같다.




오늘의 글은 다른 글들에 비해 긴 편은 아니지만, 머릿속 자체가 좀 더 정리되지 않은 날것의 느낌이 있다. 전반부와 연결되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수용은 근 10여 년간 계속 곱씹으며 해온 일인데, 현재와 접촉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데 집중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앞으로의 글은 덜 소화된 날 것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오늘의 독서도 맞는지 틀렸는지 모르겠다. 그냥 말 그대로 '오늘의' 해석일 뿐.


처음으로 '연재'라는 시스템이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루틴 만드는 것에 꽤나 자신 있는 사람으로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조차 소화 못한 험한 것(?)이 나올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오히려 좋은 것으로 하자. 앞 장에서 언어 표현에 지지 않기로 했으니. 오히려 좋다.

현재 내 감정과 생각을 만나고 있으니, 그게 나를 '반짝임'으로 이끌어주리라고 믿으며.

미완성 같은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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