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용기

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by 예그림

불확실성이 가득한 삶을 다루는 과정인 정신과 진료를 하다 보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만나게 된다. "제가 좋아질 수 있을까요?" "지금 하고 있는 소송의 결과가 잘 될까요?" "사업이 위기에 처했는데 가정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 상처를 딛고도 제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나는 함부로 "무조건 좋아질 겁니다, 잘될 겁니다"라고 무책임하게 답하지 않는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두고 마냥 잘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기만이다.

대신 나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할 용기'를 제안한다. 그 용기는 알 수 없는 미래,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걱정하느라 소진되는 귀한 시간과 마음의 여력을 지금 우리 삶에서 실제로 시도할 수 있는 것, 지금의 최선인 것을 떠올리고 실행하는 데 쓰이도록 해준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131.




내가 참 좋아하는 인생 책 중의 또 하나가 '미움받을 용기'이다. '용기'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내 마음에 담게 해 준 책이었다. 그때그때 달라지긴 하지만 삶에 가장 필요한 한 단어를 고르라고 한다면 '용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오늘 또 하나의 용기를 배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할 용기'. 용기의 반대말을 '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만용'이라고도 생각한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잘 될 거야', '할 수 있어'라는 무조건적인 긍정의 말이 잘 납득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가님이 이것을 '기만'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에 '긍정적으로 좀 생각해 봐'라는 말을 자주 듣는 입장에서 묘한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에너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그 결과나 상황에 대해 부정적이기만 하면 무엇도 시작하기 어렵다. 나 같은 부정적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긍정'이 아니라 '용기'이다.


인생이 '예측 불가'하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지만, 사실 '머리로만' 아는 것이다. 그것을 온전히 마음으로 이해하고 체득했다면, 인생이, 사람이, 상황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화가 나거나 속상할 이유가 없다. 그 '예측불가능성'이 얼마나 사람의 에너지를 빨아먹는지..

나는 상대로 인해 괴로웠던 순간보다 내가 머릿속 상상으로 나를 괴롭혔던 시간이 훨씬 더 긴 사람이다. 상대나 상황이 나를 괴롭게 한 것은 의외로 짧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을 계속 반복하고, 결과에 대해 최악을 상상하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해한 것은 '나'다.


작가님이 이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 주신 부분이 나는 참 와닿는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 시간의 법칙'

-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에 대한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

- 그 한 시간 안에는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해질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게 어떤 것이 최선인지'를 고민하는 방향성을 유지하는 것.

- 고민의 종결 기준은 두렵고 막막하고 초조한 느낌의 해소가 아니라 '지금 내가 예측하고 대응할 지점을 충분히 검토했는지'를 기준으로 하기.

- 제한 시간이 끝나면 어차피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불안을 다독이며 온전히 나를 위한 힐링 시간 가지기.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中



시간을 제한해서 충분히 불안해하라는 것. 그리고 그 방향성을 '마음'에만 두기보다는 현실적 해결에 두는 것. 충분히 고민했다면 그대로 대응하고 나에게 여유를 허락하는 것.

이 챕터의 마지막 문장은 '그 여유가 다시금 내일 하루만큼의 삶과 고민을 이어갈 힘으로 당신에게 깃들기를 기도한다.'이다.


이미 알고 있다. 고민과 불안은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오래 같이 가려면 완급 조절을 하듯이, 오늘치 불안에는 한 시간만 허락하고, 다음 날 하루만큼의 삶과 다음 날의 고민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참 현실적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런데 숨겨진 맥락에서 나는 다시 '용기'를 떠올린다. 오늘치 불안의 한 시간 후에 내일 또 다른 한 시간 동안 똑같은 고민과 생각을 반복해서는 의미 없다. 오늘치 고민에서 떠올린 최선의 하루를 '용기 내어' 살아내어야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핵심이라기보다, 고민과 불안에 내 삶의 일부만을 허락하자는 것. 잘못된 것도, 모르는 것도 받아들이고 내 삶을 내 것으로 온전히 살아낼 '용기'를 가지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한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할 때는 언제일까? 시험 직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아니다. 그것은 타이밍과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불안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직면할 때'이다.

시험공부를 외면하고 핸드폰 게임이나 SNS를 보며 시간을 허비했을 때,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직면'할 때 불안과 스트레스는 최고조이다. 이 때도 똑같다.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이다. 망한 채로 시험이 끝나거나, 공부를 하든가.

슬프지만 첫 번째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그 순간의 불안은 지나갈 수 있게 해 주지만 반복되면 그냥 공부 자체를 포기해 버리게 된다. 두 번째는 하기 쉽지 않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일단 내가 공부를 했다는 것 자체에서 의외로 스트레스나 불안도는 낮아진다.


책에서 이 챕터의 제목을 마지막에 소개하는 이유는 이 한 문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챕터의 제목은 '꼭 필요한 불안만 만나는 시간' 정하기.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1>의 슬픔이 와 <인사이드 아웃 2>의 불안이. 이 친구들은 우리를 다소 불편하게 해서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친구들도 모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다. 앞에서 말한 시험 불안처럼, 중요한 일을 앞두고 불안하지 않다면 그것 역시 문제가 있다.


이 챕터의 제목을 '꼭 필요한 만큼의' 불안만 만나고 과한 불안을 만나지 말자고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불안을 외면하지 말고 용기 내어 만나자'는 의미로도 읽힌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불안한 것을 불안하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어떤 감정이든 용기 내어 마주하는 것. 그게 우리를 성장하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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