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1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내가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불편함이 올라오는 날. 아무리 생각해도 화낼 일이 아니었는데, 불쑥 화가 올라왔던 일. 이렇게까지 고민할 일이 아닌데 오래 마음에 남아버린 말이나 행동. 이성적으로 바라보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자꾸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찰랑이는 것.
대체로 우리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다. 다만 그 상식과 이성이 잘 발휘되지 않는 순간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한 순간은 대개 일반적이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한다. 모두의 삶과 경험이 다르므로 일반적인 마음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후회되는 일, 비이성적인 불편감과 불안을 유발하는 순간이야말로 좀 더 내밀한 스스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실마리다.
-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이두형. p. 141.
사소한 일상의 행복을 놓치지 않고 소중히 하자는 메시지에는 끄덕이면서, 사소한 일상의 불편함은 그냥 넘겨버리는 내가 있다. 책에서의 장면 설명이 딱 와닿는데,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너무 사소한 일이라서 말하기 좀 그런데..'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어김없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소하다'의 기준은 보통 타인이다. 타인이나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별거 아닌 걸로 내가 예민하게 군다라는 느낌을 받는 일.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게 더 중요한 것이 당연하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니지만 나에게는 별거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늘 챕터의 제목은 '후회의 맥락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말과 여지없이 맞아떨어진다. 우리는 갑자기 화를 벌컥 냈다고 말하지만, 갑자기 화를 내는 이상한 사람은 생각보다 없다. 그 갑자기는 그냥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맥락'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맥락의 가장 큰 문제는 남들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그 '보이지 않는 맥락'을 '버튼 눌린다'라고 표현한다. (좋은 말은 아니지만) '발작 버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눈물 버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것이든 가까이만 가도 감정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버튼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누가 봐도 '그렇게까지 예민할 부분이 아닌데, 나만 예민하다'라고 느껴질 것 같은.
책의 이야기보다는 솔직하게 내 버튼에 대해 쓰며 예시를 들고 싶었는데, 글이 나오지 않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깨달았다. 나 역시 이 버튼이 무엇인지 찾지 못했다는 것을. 이 정도면 손을 가까이 가져대기만 해도 켜지는 비접촉식 버튼이 아닐까 싶다. 에둘러서 쓰는 것조차 잘 안 되는 것을 보니.
별수 없이 책의 예시를 소개한다. 책에서는 '순살 치킨을 시켜달라고 부탁했지만 뼈 있는 치킨을 주문한 연인에게 격하게 화를 낸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이 에피소드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째는 거창한 일이나 트라우마에 대해 힘들다고 하면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런 조그만 일로 감정이 올라올 때에는 공감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중요하지만, 남들과 잘 나누어지지 않고 자책과 후회만 하기 쉽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 에피소드가 에피소드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과거의 어떤 감정을 불러옴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듯이 순살인지 뼈가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모님께 외면받고 외로웠던 과거가 있는 내담자는 연인마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줄지도 모른다는 좌절과 두려움으로 인해 화를 내 버린 것이다. 치킨으로 인한 화로는 과하지만, 이 사람마저 나를 외면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대한 화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다만, 현재 화의 맥락이 머나먼 과거의 그 지점과 닿아있다는 것을 혼자서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을 뿐.
다시 돌아가서 지금 읽고 있는 3장의 핵심은 '현재와의 접촉'이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현재 사소해 보이는 그 일이 과거와 접촉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나를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현재에서 과거로 되돌려놓는 그 '버튼'을 이해해 보자는 것 같다. 결국 그 버튼을 이해하는 실마리 역시 내 안에 있을 테니, 방법은 자기 성찰뿐이다.
책 내용을 다시 읽고 정리하면서도 나의 버튼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앞에서 쓰지 못한 내가 버튼이 눌린 이야기는, 진짜 별거 아니다. (별거 아닌 게 별거라는데, 진짜 왜 별거로 구는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 하나인데,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고,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맡겨달라는. 악의가 아닌 호의를 담아 보낸 메시지인데 왜 계속 마음에 걸리고 버튼이 눌려버렸는지 모르겠어서 글로 쓸 수가 없었다.
글의 결말로는 허무하지만,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이 이야기를 상담 선생님과 나누어보려고 한다. 단숨에 뽑는 게 아니라, 살살 호미로 흙을 걷어내고, 어떤 뿌리가 있나 일단 살펴보기만 하려고 한다. 별거 아닌 잡초니까 지금 뽑아낼 수 있는지, 뿌리 깊이만 두고 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책의 내용처럼 이 사소한 것은 꽤나 튼실한 뿌리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튼튼한 마음의 호미를 준비해 가야겠다.
이 글이 제대로 마무리지어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지만. 지금 가능한 것은 여기까지이다. 언젠가 이 버튼과 뿌리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