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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유진 Apr 13. 2020

코로나가 벗겨낸 미소 띤 가면들

타인에 대한 포용은 정녕 풍요의 시대에만 허락되는 사치인 것일까?


때는 2000년. 처음 스페인으로 이주했을 때, 한창 사춘기였던 나에겐 가혹했던 타향살이가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인들이 대거 이주해 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동양인을 찾아보기가 힘든 시기였다. 동네 슈퍼마켓에 나갈 때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와 꽂혔다. 동네의 짓궂은 녀석들은 "치나, 치나 (중국인)"을 외치고 손가락으로 두 눈을 찢으며 따라다니기도 했다. 나도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가 있는 평범한 인간인데... 아무튼 당시엔 견디기 힘들었지만, 세월이 지난 후 회상해 보면 그때에 내가 당했던 "차별"은 그나마 악의가 없는, 상대적으로 순수한 놀림이었다. 


대학을 다니다 보니 왠지 유럽이 그리워져서, 친한 친구와 함께 파리에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다녀오기로 했다. 내 친구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는데, 처음 파리의 스트릿 벤더에서 핫초코를 사러 간 날 상인이 활짝 웃으며 우리에게 "니 하오! (무반응 후) 오... 곤니찌와!"라고 인사를 한 후부터 그야말로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물론 미국에도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유럽식 인종차별과 다른 것은, 미국에서는 은근히 차별하는 것이 많은 반면 유럽에서는 툭 까놓고 하는 차별적 언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이런 건 일상이야. 여기서 지내려면 무뎌지는 게 좋아." 나는 [쿨하게] 그에게 조언했다. 하지만 당시 이미 유럽 여러 나라의 살림살이가 기울기 시작했었고, 결국 내가 쿨하게 [무시하라]는 조언을 할 수 없는 류의 차별에 친구가 노출되었다. 주말에 리옹으로 열차여행을 떠났던 녀석이 티켓팅을 할 때 뒤에 서 있던 여자아이가 그를 쳐다보며  "Chien (개)"라고 하며 얼굴을 찌푸린 것을 경험하고 탄 기차 창틀 밖에서 웬 스킨헤드가 녀석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는 시늉을 한 것이다.

이런 것도 일상적이냐고 묻는 친구 앞에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몇 년 후 어른이 되어 MWC을 맞아 스페인에 돌아가서 택시 아저씨에게 요즘 경기는 어떠냐고 묻자, 아저씨는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요즘 유럽에서 다들 먹고살기 힘들지. 그래도 스페인 사람들은 아직 여유가 있어. 우리는 뜨랑낄로 (평정심을 잃지 않음, 느긋함) 하잖아. 이웃들이 많이 바뀌는 와중에도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지?"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엘 라발 지역과 인접한 숙소에 나를 내려 주며 아저씨는 이 동네는 위험하니 늦게 다니지 말라고 조언해 주셨다. 친하게 지내던 한국 교민 분들은 갈수록 사람들이 쌀쌀맞게 대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하셨다.




늘 서구권에서 [외국인]으로 살다가 태국으로 이주한 후 나는 처음으로 같은 동양권에서의 [외국인] 살이를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나 외국인이오]를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지 않으니 부자연스러운 태국어 발음을 들키지 않도록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만 하면 제법 현지인인 척하며 다닐 수 있어 편했다. 외국인이라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소위 아싸 취급을 면한 것이다. 내가 겪는 차별이 적다 보니 마치 이곳에서는 서양보다 차별의 수준이 더 온건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도중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한에서 태국으로 날아왔다. 초반 중국 외 국가 중 발병자 순위 1위를 달리던 태국에서 잠시 바이러스가 주춤하자 태국은 국경을 열어 두었다. 관광산업이 주 수입인 국가이니 외국인의 출입을 단절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확진자 수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태국은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오후 10시 이후로는 통행금지령이 떨어지고, 곧 주 간 이동이 차단되었다. 확진자가 많이 나온 푸껫은 락다운 상태에 들어갔다.


취소되는 항공편이 수없이 발생하고 국경들이 봉쇄되는 혼돈 중에 급하게 비자 연장을 필요로 하는 외국인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체류연장이 불가피하게 된 외국인들을 위해 마련된 30일 특별체류연장을 위해서는 대사관의 편지뿐만 아니라 주거지의 계약서류, 주거지 내에서 찍은 사진 4장 이상, 주거지 집주인의 신분증 사본과 주민등록등본 등 총 9가지의 서류가 요구되었다. 하나라도 미비하면 이민국을 다시 방문하여야 했다. 자연히 이민국 밖에는 아래와 같은 가슴 아픈 광경이 연출되었다.

이민국 밖에 줄 선 사람들. 사회적 거리두기가 없는 것이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딱 좋아 보인다.

주변 국가들이 이와 같이 국제 미아 신세가 된 외국인들에게 속속 자동 비자 연장 조치를 해 주는 와중에도 태국 정부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9가지 서류를 계속 요구했다. 그러던 중 태국의 보건부 장관이 태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유는, 더러운 외국인 ('팔랑'이라는 백인을 지칭하는 언어를 사용했지만)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목욕도 하지 않는 데 있다는 문제적 발언을 한 것이다. 곧 장관님의 혐오를 등에 업고 아래와 같은 놀라운(!) 포스팅들이 이 관광의 천국, [미소의 나라]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충 밖에 나돌아 다니는 관광객은 새총으로 쏘아 버리겠다는 내용.

위의 포스팅을 보자 어릴 적 스키를 타러 피레네 산맥을 올라가던 우리 차가 느닷없는 돌멩이 세례를 당했던 기분 나쁜 기억이 되살아났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수록곡을 기분 좋게 열창하며 달리던 우리에게 시골 동네의 껄렁껄렁한 녀석들이 꽤 큰 돌들을 투척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야말로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가만있다가 당한 혐오범죄였다.



코로나 덕에 그 어디에도 더 온건한 차별이 있는 곳은 없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도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그나마 남아 있는 손님들에게도 미소를 거두고 손가락질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코로나바이러스는 차별이 없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하얗든 노랗든 까맣든, 어리든 늙었든 참 평등하게 공격하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공격 앞에서 편 가르기를 하고 [남]을 미워하는 것은 오롯이 인간의 선택이다.


그저 생의 대부분을 타지에서 "[우리]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온 자로써, 어서 "[우리]가 아닌 사람"에 대한 포용이 허용되는 "풍요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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