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유진 Oct 26. 2020

생닭 먹는 태국 귀신

보육원에 오는 아이들은 95%가 아카족, 라후족 등의 고산지대 소수민족 태생이다. 

이제는 보육원 왕언니가 된 히비(가명)는 아카족이다.


아카족의 토속신앙은 우리네와 비슷한 무속신앙으로 다양한 귀신의 존재를 믿으며 동네마다 기분이 상한 혼령들을 달래는 역할을 하는 무당이 존재한다. 우리네와 비슷하게 대대로 신병이 나며 신내림을 받는 일이 많다고 한다.

아카족의 토속신앙에서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는데,

1) 다지증 (소위 "육손") 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출생 즉시 사살하는 것,

2) 쌍둥이가 태어나면 둘 중 한 명을 출생 즉시 사살하는 것, 그리고

3) 무당과 비슷하지만 악귀를 몸 안에 지니고 있는 "피 까쓰"의 존재이다.


그들은 다지증 환자와 쌍둥이 중 한 명은 악령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살려 두어 (3)번의 "피 까쓰"와 같이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미리 그 싹을 제거하는 개념인 것이다.


"피 까쓰"의 경우 아카족 뿐만 아니라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그 존재를 믿고 있는 악령으로, 머리 밑에 내장이 달려 있는 여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피 까쓰"는 낮에는 인간 여성으로 그 존재를 숨기며 지내다가 밤이 되면 무서운 형태로 변해 먹을 것을 찾아 온 마을을 헤매는데, 피와 생고기를 좋아하며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름 아닌 태아의 피이다. "피 까쓰"는 닭과 소 같은 동네의 귀한 가축을 죽여 그 피를 마시며 주변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친다.


피 까쓰

히비의 가족은 미얀마에서 신분증을 발급 받기 전에 내전과 가난을 피해 태국으로 이주했다. 깊은 산 속에서 글도 모르고 살다 전쟁을 피해 흘러들어온 것이니 어디로 가는 것이 합법인지 불법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이 지역의 많은 무국적자들이 그렇듯 그들은 먹여 주고 재워 주는 조건으로 한 농장에 정착해 일을 시작했다. 히비의 가족과 같은 이들은 이런 농장들에서 부락촌을 이루어 대를 이어 살며 공짜에 가까운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 부락촌 내에서 결혼하는 것은 농장주들이 적극 지지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분이다. 태어날 아이들도 그 농장에서 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노비들이 대대로 한 가문을 섬기듯...


히비는 다른 이들보다 손가락을 하나 더 가지고 태어났는데, 운 좋게 산 속 마을에 살고 있을 때 태어나지 않아 악습의 피해자가 되는 신세를 면하였다. 세월이 지나고 히비네 가족이 사는 농장에도 점점 아카족 사람들이 많아졌다.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는지, 타인의 눈에서 그의 작은 손가락을 숨기고 싶어서였는지, 둘 다였는지 히비는 어릴 적 보육원에 맡겨졌다. 방학이 되면 이따금 농장에 가족을 보러 놀러가곤 했는데, 히비는 늘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며칠 째 히비의 안색이 영 좋지 않다. 무슨 일인지 물어도 괜찮다 손사래를 친다. 입꼬리만 간신히 올린 미소는 괜찮지 않다는 증거이다. 또래 여자애들에게 살짝 물어보니, 아버지는 여전히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 마당에 연로하신 어머니가 "피 까쓰"로 몰려 온 가족이 내일 모레까지 농장을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고, 하나뿐인 오빠가 열심히 발품을 팔며 싼 방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틀 정도 뒤에 다시 상황을 물어 보니 다행히 지낼 곳을 찾았다고 했다. 오빠도 급히 일용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구했다고 했다. 예전에도 모아 놓은 돈으로 오빠에게 오토바이를 사 준 적이 있었기에, 공부를 하며 틈틈히 모았던 히비의 용돈이 보증금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히비 또래 중에 중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돈을 벌겠다고 밖으로 나간 아이들도 있는데, 개중에는 훨씬 나이가 많은 소위 "슈거 대디"를 만나며 그가 주는 돈으로 호강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히비가 그 아이야말로 똑똑한 것 아니냐는 말을 푸념처럼 한다고 했다.


혹여라도 학교를 중퇴하겠다는 말이 나올까 초저녁에 히비를 따로 불러내었다.


"얘기 다 들었어.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누가 그랬어요?" 아이가 피식 웃었다.


"우리 엄마가 피 까쓰라고 나가라네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상관없어요. 우리 엄마가 피 까쓰가 아닌 건 내가 제일 잘 아니까요. 왜 농장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지내느니 아오는 게 나아요."

히비는 먼 곳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라 있었다.


"왜 얘기를 안 했니?"

"..."

"이제 다 컸으니까 얘기 같은 건 안 해도 될 것 같았니? 그래도 언니가 너 요만할 때 부터 봤잖아."


히비는 멋쩍게 웃었다.

머리가 크고 난 다음엔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이제는 나름 어른이니까, 다른 이들에게 폐 끼치기 싫고, 그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견디는 것보다 혼자 한 발짝씩 내디딛는 편이 차라리 편한 것. 

나도 녀석의 나이 정도에 그랬고, 사실 어른답지 않은 나이만 찬 지금에도 마찬가지니까.


"지낼 곳은 찾았어? 세는 얼마니?"

"500바트요. 이번 달 건 냈어요."


먼 산을 보며 급히 지갑 안을 휘적여 보니 다행히 500바트짜리 지폐가 있었다. 가슴 안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혹여 내가 울면 앞으로 녀석이 더 부담스러워할까 최대한 쿨하게 지갑에서 500바트를 꺼냈다.


"살면서 당연히 어려운 일이 있지만, 그 때마다 서로 도우면 금방 지나보낼 수 있을 거야. 얼마 안 되지만 서로 돕자. 언니가 힘들 땐 너도 도와주고."


꼰대같지만 진심이었던 말을 마치고 나서 나는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아... 이 쿨하지 못함이여. 

쿨하지 못함은 전염되기에, 나와 히비는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숨죽여 울었다.



히비의 어머니는 어쩌다 "피 까쓰"로 몰리게 된 것일까?

중세시대의 수많은 마녀들처럼, 어떤 일로 마을 사람들에게 원한을 산 것일까?

아버지의 술주정이 너무 심해서 견디지 못한 이웃들이 동네에서 내치기로 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피 까쓰"가 존재하는 것일까?


공동체가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기 어려울 때 내/외부의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문제의 원흉으로 간주하는 현상인 <희생양 현상 (scapegoating)> 은 약하거나 핍박받고 있는 공동체가 자신보다 더 약하거나 소수의 공동체에게 해를 가하는 형태로 많이 보여진다. 유색인종끼리 서로 더 혐오하거나, 1차 세계대전 패전 후의 독일이 히틀러 휘하에서 행한 일들이 한 예일 것이다. 무국적자에 술주정뱅이 아비와 육손이 딸을 가진 히비네 가족은, 그저 그 공동체에서 가장 만만한 소집단이었던 것은 아닐까.


감사하게도 히비는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기도한다. 히비가, 또 수 많은 다른 히비들이, 더 나은 미래를 일구고 과거의 공동체들로 돌아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날이 올 것을. 사람들이 "피 까쓰"가, "피 까쓰"네 딸래미가, 멀쩡히 잘 사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날이 올 것을. 그리하여 언젠가는 "피 까쓰"가 마치 도깨비처럼, 그저 동화의 한 구절로 남겨질 날이 비로소 올 것을.






작가의 이전글 장발장, 너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