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백만 원이 없어졌다. 그것도 통장에서.
스탭 멤버의 모바일 뱅킹 앱을 누군가가 해킹해서 두 번에 걸쳐 그의 전 재산 격인 돈을 훔친 것이다. 다행히 범인은 꼬리가 길었다. 송금 내역에 최근에 보육원에 새로 입소한 떠 (가명)의 이름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파타야의 한 시설에서 너무 나이가 많아 돌볼 수 없다며 급히 위탁 요청을 받아 만나게 된 떠는 평소 어눌한 말투에 어딘가 굼뜬 행동으로 어수룩하고 순해 보였고, 입소하자마자 다양한 보육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알고 보니 뇌전증을 앓고 있던 녀석은 얼마 되지 않아 한밤중에 입에 거품을 물며 발작을 시작했다. 자연스레 동정론이 일고, 녀석은 행동 대장일뿐이고 배후에 다른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떠와 같은 시설에서 우리 보육원으로 맡겨졌던 사고뭉치 로그 (가명) 에게 떠가 70만 원가량을 송금한 정황이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혐의를 부정하던 녀석은 현금이 인출된 스크린샷을 들이밀자 로그가 모든 것을 시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새 휴대폰이 가지고 싶었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조금 모자란 녀석 취급을 받던 그의 범행 수법은 놀랍도록 치밀했는데,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넣을 통장을 개설하고 싶다며 피해자(!)가 은행 일을 보러 갈 때 따라가 옆에서 은행 비밀번호를 훔쳐본 후, 틈틈이 그의 휴대폰이 주인 없이 놓아져 있을 때를 엿보다가, 휴대폰 액정에 알코올을 바른 후 라이터로 불을 피워 지문 자국을 확인하고 비밀번호를 유추해 낸 식이었다. 출금 당일에도 먼저 만원 정도를 오전에 송금해 보고 송금 안내 문자가 오는지 확인한 뒤, 문자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밤에 100만 원을 송금했다. 그 후로는 휴대폰 주인이 혹시라도 앱을 열어 잔액을 열람할 수 없도록 앱의 비밀번호를 바꾸었다. 초범이라기엔 너무나 치밀했고 충동적이라기엔 너무 장기간에 걸쳐 공을 들인 티가 나는 사건이었다.
우리는 이틀에 걸쳐 계속 녀석에게 정황을 물어봤는데, 물어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디테일과 로그에게 송금되지 않은 30만 원의 묘연한 행방에 대한 고백을 듣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처음이라기엔 너무나 치밀했기에 의심이 걷히지 않고, 두려움이 앞서서였겠지만 자백하지 않는 아이에 대한 괘씸함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두 번째 아침이 밝고, 우리는 떠를 보낸 보육원에 보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머, 우리 시설에 있을 때는 소소한 도둑질 외에 다른 문제는 없었는데. 너무 죄송해요."
골치 아프게 해 미안하지만 어쨌든 이제 아이는 너희 책임이라는 것을 상대방은 명확히 했다. 왠지 로그에 이어 연속으로 사고뭉치들만 보내는 것이, 어째 골치를 썩이는 녀석들을 상습적으로 떠넘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이는 뇌전증 약도 중학교 졸업장도 없이 덩그러니 보내졌다. 전 시설에서 유일하게 들려 보낸 녀석의 신분증에는 예닐곱 정도 되어 보이는 앳된 아이가 멍하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후에 떠가 로그에게 돈을 보낸 대가로 받았다는 아이폰을 들고 왔다. 보육원 내 유일한 아이폰 유저인 내가 추가로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기 위해 휴대폰 검수를 맡았다. 녀석의 휴대폰은 얼핏 보기에는 내가 사용하고 있는 모델과 비슷해 보였다. 환경설정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기종명에 기상천외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떠가 로그에게 송금한 금액이라면 아이폰 정품을 살 수도 있었다. 결국 녀석도 로그에게 당한 것이다. 보육원 선후배는 밥솥과 한 방을 공유하는 때로는 형제 같고 때로는 부모 같은 존재인데, 서로 속고 속이는 모습을 보니 서글펐다.
절도사건의 피해자는 떠와 로그가 남은 돈이라도 돌려주고 사과하면 일을 조용히 덮고자 했다. 떠와 로그는 둘 다 태국 시민권이 있었지만 피해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무국적자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떠를 따로 불러냈다.
"떠, 너 이 휴대폰 가품인 거 알고 있었니?"
"그럴 리가 없는데요."
"이런 아이폰 기종은 없어."
"...."
"네가 로그 형한테 보낸 돈이면 정품도 살 수 있어. 네가 한 번 구글에서 찾아봐. 그리고 자신이 몇 년에 걸쳐 열심히 모은 돈이 없어져도 너를 용서해 주려는 사람과 너한테 거짓말을 하는 사람 중 누가 널 더 사랑하는지 생각해 봐."
녀석의 어두운 눈동자가 일렁였다.
다음날 녀석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차명계좌 주인에게 전화해 25만 원을 피해자의 계좌로 입금했다. 5만 원은 이미 다른 곳에 사용했다고 했다. 로그 역시 남은 것이라도 돌려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설득하자 가져간 돈의 반 이상을 다시 입금했다. 그렇게 사흘간 보육원을 들썩이게 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떠의 새 휴대폰 배경화면은 피해자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한 달 반 정도가 조용하게 지나갔다.
보육원 교무실에 들어가려던 사모님이 떠가 갑자기 큰 소리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교무실 쪽에서 뛰쳐나와 소스라치게 놀랐다. 교무실 자물쇠가 방금 급히 닫은 것처럼 아직 쨍그랑대고 있었다. 놀란 사모님은 급히 금고 쪽으로 향했다. 보육원의 한 달 운영비가 들어 있는 금고에는 사모님의 서랍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금고 열쇠가 꽂혀 있었다.
장발장처럼 거듭나려면 녀석에게 몇 번의 용서가 필요할까?
그리고 우리는, 필요한 만큼 녀석을 용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