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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사람 Sep 08. 2023

요양유치원 햇살반 할아버지

한 달 전, 두상이 특별한 할아버지가 새로 입원하셨다. 할아버지의 두상은 꼭 스펀지밥에 나오는 '징징이'같다. 늘 투덜투덜 불만 많은 캐릭터 징징이와 성격도 비슷하셔서 항상 마음에 품은 서러움을 토로하신다. 문제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보니 자세히 들어야 겨우 3분의 1 정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계신 병실은 햇살이 참 잘 들어오는 병실이다. 낮에 라운딩 하러 올라갈 때면 할아버지의 독특한 두상이 햇빛을 받아 귀엽게 반짝거린다. 할아버지는 꼭 미운 4살 유치원생 같으시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들어 칭얼칭얼 하실 때, 아무리 열심히 들을래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다시 "이게 싫어요? 뭐라고요..?" 여쭤보면, "아니~!" 하며 더 짜증을 부리신다.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의 말을 두어 번 안에 알아듣지 못하면 우선 공감하는 리액션을 취하고 본다. 


"아이고, 정말요? 할아버지 너무 속상하셨겠다! 어떻게 하면 좋아!"


그러면 할아버지는 이제야 알아들었냐는 듯


"그래! 내가 속상했어!" 하시곤 이내 차분해지신다.


어느 날, 밥을 먹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리신다고 간병사님이 애먹으셔서 할아버지를 설득하러 올라갔었다.

 



할아버지 왜 식사 안 하시려고, 입맛이 없어요?


아… 아니. 배가 속이… 그래...


속이 안 좋아서?


아.. 아니야.


소화가 잘 안 돼요?


그래… 소화. 소화가 안돼서...


그러면 할아버지 밥 말고 죽으로 드셔보실래요?


응! 죽 먹어보고…


계속 죽으로?


아… 아니 먹어볼게!


그래요. 그럼 점심은 죽 드셔보시고 괜찮으면 얘기해 줘요.


그… 그래. 내가 다른 건 다 모르겠어도 사랑하는 당신 하고… 빨간 옷 입은 남자(간병사님). 내가 알아. 지금도 죽 먹을 거냐고 물어보고… 맨날 괜찮은지 물어보고, 과자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하고, 내가 다 알아. 다 기억하고 있어.

 

정말요? 전 할아버지가 저 기억 못 하시는 줄 알았는데~


다 알아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랑 감사해요. 항상 고마워.


뭐야~ 저 감동받았어요. 정말 고마워요.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엄마는 가끔 아이들의 귀여운 순간들을 우리에게 얘기해 주시는데, 조그만 애들이 자기 몸집의 몇 배나 큰 엄마를 쓰다듬으며 "선생님은 왜 그렇게 귀여워요?"라고 했다며 배꼽 잡고 웃으시던 날, 나도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사랑하는 당신. 내가 다 기억하고 있어.


나도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애들이 너무 좋다는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 코로나 검사할게요. 조금 불편해요!


아야!!! 아!!! 씨발…!


씨발...? 씨발?? 할아버지..!! 난 할아버지 아픈지 검사하려고 하는 건데, 그러면 나 너무 서운하다!! 저 진짜 속상해요! 할아버지 미워!


아… 아니야 아냐 내가 미안할게. 내가 미안해...


흥, 미워요!


그러지 마, 내가 미안해... 응?




이런 할아버지가 귀엽다는 나에게 주치의 과장님이 "그 할아버지가 귀여우면... 선생님은 정말 직업 잘 찾으셨네요."라고 하셨다. 그런 것 같다. 돈 몇만 원에 반의 반나절 겨우 얻어낼까 말까 하는 재미보다 몇백억, 몇천억을 줘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나는 훨씬 재미있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여전히 불만 가득 심통 난 상태지만, 할아버지가 세상에 홀로 버림받지 않고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계신다는 것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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