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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길 Feb 18. 2022

생로병사 블록체인


며칠 낮밤이 잠깐 바뀌었다. 책읽기와 글쓰기 시간이 있는 듯 또 없는 듯 낮에 ‘이것을 해야 해’ 하는 절대성이 줄어든 탓일까. 그런 낮이 밤인지 하다가, 그렇게 얼마간 반복하다가 보니, 낮밤이 구분되지 않았던 것. 그러하니 몸이 마음인 듯하다가, 뭐 마음이 몸인지 구분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최근 1년 넘게 내 기뻤던 기록을 확인하지 못해 생기는 것인 듯도 했다. 무엇인가 생활 변화를 원했지만, 주변 상황이 불편했던 이유일 것이다. 그래, 뭐, 이럴 땐 밤낮이 바뀌어도 괜찮을 것이라며 몸과 마음이 뒤바뀌었으리라.     


그런데 앗, 뜨끔해진 것이 생겼다. 왼쪽 목 돌리기가 안 된다. 마음껏 꺄우뚱거림도 어림없다. 몇 번이나 뜨끔거렸는지 알 수조차 없지만 그동안 살아온 것에 무턱대고 반기를 들은 것이 원인인 듯했다. 이번엔 제4차 산업혁명이니 블록체인이니 하는 단어에 치여 살다 보니, 아마도 땅이라거나 물이나 구름 또 하늘, 그러니까 자연이란 단어를 계속 까먹은 것. 그랬다. 그러저러하게 지내다 보니 내 시간의 균형이 깨진 신호가 목뼈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당연한 결과다.     


아마도 몇십 년 넘게 원했던 것이 있었다면, 그중 하나는 내가 자연 일부임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일이었을 거다. 무턱대고 이러한 자각으로 문득 몸이 멈출 때, 언뜻 내 마음엔 새로운 색깔이 확 퍼지기를 원했으리라. 내 생애 최고의 순간들이라며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자연 속에 존재해 있으려면, 나와 자연을 구분하는 연습의 시도를 확인했어야 했으리라. 과연 나는 나를 자연과 구분할 수 있었을까? 즉, 조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조금은 다르다며, 뭐 나는 쓸모 있다며,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었을까? 그나마 확인한 순간조차 무척이나 쓸데없다고 웃을 수 있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아마도,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시간을 멍청히 주시할 수 있었을까?     


끊임없는 확인, 그 나를 확인하는 쓸데없는 시간들이란, 경험을 돌이켜 볼 때, 결국 내 것들이기에 그 모두 같아져야 했다. 그래야 언제라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을 테니. 같아져야 한다면, ‘내 목뼈가 아픈 소리를 내는 것’과 ‘정보는 힘이다. 그러니 정보는 분산되어야 하고, 힘은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것’ 등의 이 둘 사이엔 분명 내가 부여한 ‘가치의 공통점’이 있을 거다. 분명 공통점이 있어야 할진대, 크게 외치지 못하니 가끔 밤낮이 바뀔 수밖에.     


하, 그것 참, ‘내 목뼈와 블록체인 즉 분산원장’의 뚜둑 하는 그 소리들이 가진 ‘가치의 공통점’이라니! 그랬다. 인간은 언제나 자연 속에 있음을 느껴야 아름다움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이를 자주 잊는 것은? 땅을 자주 밟지 못해, 구름을 자주 쳐다보지 못해, 비나 눈을 두 팔 벌려 맞아보지 못해, 그래서 내가 자연의 일부인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러하니, 당연히 블록체인이란 생태계에 빠져, 이 생태계도 자연의 일부라며, 알량한 평생 먹거리 마련 기회라며, 반기듯 맨발이라도 들여놓았던 것이리라. 하하, 맞다. 분명 공통점이다. 참으로 궁색한.     


언제 그랬듯, 또 나는 다시 목이든 가슴이든 다리든 아플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블록체인 생태계에 내 아픈 곳들을 모두 기록해두어야 할 일이다. 이렇게, 인간의 아픈 곳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연결을 지어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이 돌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겠으나, 서로 다른 각도에서 출발해 이합집산이 될 것이겠으나, 아마도 그 프로그램은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두가 다 함께 행복해지고 싶어야 하니, 블록체인에 이를 다 기록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분명, 그 모두는 ‘생로병사 블록체인’으로 귀결되도록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로병사니 자연법칙이니 하는 블록체인 생태계들이 서로 얽히며, 가끔 인간들은 지금 나처럼 목뼈도 아프다며, 무엇인가 시원치 않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것. 그러니 기왕이면 목뼈가 좀 잘 돌아가고, 그래서 동네 학교 운동장 흙을 밟으며 산책할 즈음, 블록체인, 정보, 권력, 돈 등의 단어들을 햇빛 좋은 시간으로 잘 닦아 맑게 빛나게 하는 연습을 해야 할 일이다. 이는 그 단어들을 사용할 시간들도 구분해 줄이고, 닦는 시간 또한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일.     


닦는 시간을 줄이면 줄일수록 맑게 빛나는 내 것만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낮밤이 언제 또 바뀌느니, 세상 힘 균형이 어떠니, 내가 가진 것이 어떠니, 내 목뼈가 제일 아프니, 내 움직임이 가장 아름답다느니, 뭐 이런 등등의 시시콜콜한 것들을 땅에 내려놓기 쉬울 거란 생각이다. 그래, 맑게 닦을수록 내 것이 아닐 테니. 닦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누구든 깨끗하게 사용할 시간이 늘어날 테니. ‘생로병사 블록체인’은 그래야 할 테니. 또 목뼈가 아프더라도, 전에 아픈 것들과 웃으며 비교해, 끝까지 참을 수 있을 테니!      




<후기>     


잠자고 일어날 때, 

가끔 목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며칠 되었다. 

블록체인 때문에 생긴 잔병이다.    

 

이렇듯, 사람은 가끔 아프다. 

몸도 마음도. 

이것을 그때마다 기록해 두면, 

그 아픈 정도를 가늠해 잘 견디는 힘이 생길 듯하다.     


아마도,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아플 때마다 

그것을 기록하는 블록체인 댑이 나올 것 같다.     


일명 ‘생로병사 블록체인’이다. 

이 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누가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아프다 죽었다는 기록이 

덜 아프게 사는 빅데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프지 않고, 

언제나 웃으며 살기 바라는 인간 본능! 

나도 그렇다. 

어서 목이 잘 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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