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홈플러스를 돌아 문래역에서 섰다가 합정역에서 앉았다.
앉자마자 한 오년 전 잊고 지내던
단상 수첩을 꺼내들었다.
옛버릇은 그대로지만,
많이 달라진 것은 내 몸,
아마도 마음 깊이와 또한 넓이인 듯.
흐릿했다.
지금 쓰는 글씨.
자세한 것을 보거나
생각하거나
따지거나 할 시간과 명분이 줄어든다는 뜻일까.
안경을 벗으면 조금 선명해진다.
30cm.
어릴 때 책을 볼라치며 앞을 멀득 띄워 놓고 보라던
어른들의 말이 생각난다.
이제, 안경을 벗으면 30cm 안팍이 잘 보이는 것,
그것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가까이 느끼기에
30cm가 아마도 적당한 것 같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얼굴 거리라 느껴졌다.
우연이겠지만,
이 정도 거리에 있으면
이미 두려움이나 서먹함이 쉽게 사라질 것 같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가까와진 사람이 편해 좋다.
그저 옆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사람.
필요하다고 말하면 쉽게 도와주는 사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 거리에서 존재하는 사람.
나쁜 말을 하고나 화내도 그 자리에서 웃고 있는 사람.
지금 이 생각을 하는 그런 사람들의 모여 사는 곳,
벽산메가트리움에 사는 사람들이었으면 하고 웃어본다.
처음 서로 필요에 의해 만난 것이 아닌
우연히 한 곳에서 모여 사는 사람들.
바로 이웃이다.
30cm 내에 이웃하는 사람들이다.
비숫한 곳에서 밥을 해 먹고,
잠을 자고, 놀고...
우연한 만남이 더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이어지는
우리 이웃은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또 웃어본다.
누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또 나무라기보다,
내 일처럼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웃.
어쩌면 정해진 거리가 서로 다르지만,
그 모두 30cm 안팎에서 오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또 했다.
이제 내릴 동대문운동장역이다.
다시 혜화역을 향해 갈아타야 한다.
모두들 30cm를 떨어지는 순간이다.
그래도 언제라도 30cm를 함께 할 이웃
모두 벽산메가트리움 이웃 같아 보이는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