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시대에 채용자로 살아가기
연초에 해야 할 회사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개발 멤버 채용이 아닐 수 없다. 개발자들이 가장 많이 움직이는 봄 시즌을 대비하여 연초부터 인력 충원계획을 수립하고 인재 탐색에 나서는 것이다.
채용은 다양한 경로로 이뤄진다. 기존 멤버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추천하기도 하고, 외부에서도 도움을 주기 위해 좋은 인재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추천자가 없으면 구직시장에 나온 인재들을 채용하기도 하며, 신입 공채 후 수습기간을 마친 인원들 중 우수인력을 데려오기도 한다. 이렇듯 채용할 수 있는 루트는 많아도 문제는 어떤 사람을 뽑는가에서 발생한다. 물론 기준은 확고하다. 우선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인성과 팀워크도 갖추야 하며, 요사이 '워크에식'이라 표현하는 책임감과 성실성도 고려해야 한다.
고연차의 경력자 채용이라면 업계 인맥을 동원해 2~3군데 크로스로 레퍼런스 체크를 해보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 그 정도 경력이라면 실력보다야 인성평가인 것이고, 부정적인 평가가 주류라면 우리가 떠안아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이야기가 되니 채용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저 연차 경력자나 신입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포트폴리오도 비슷비슷하고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도 정성 들여 써놓았으니 최대한 면접에서 그의 실력과 자질을 캐치해내고, 인성과 성실성도 가늠해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쉬울 리가 있나. 객관화된 면접평가 체크리스트가 책상에는 깔려있지만 그것을 체크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니 평가자의 주관도 들어가고 평가자의 성실함 정도도 들어가는 것이다. 잦은 면접으로 인해 매너리즘에 빠져서 “그만그만한 사이즈에서는 옥이나 돌이나”라고 해버리기도 하는 것을 나는 자주 경험해왔던 것이다.
팀장들과 점심을 같이 먹는데 한 팀장이 웃기는 거라며 나 보라고 스마트폰을 건넨다. 들여다보니 누군가 자기소개서를 이런 식으로 작성한 것이었다.
27년의 내 삶을 7일이나 걸려서 되돌아보고 정리했는데, 네가 뭔데 1분 정도 슬쩍 보고 평가하느냐?!
스마트폰을 돌려주면서 만약 이런 이력서를 진짜로 받게 되면 당신은 어쩌겠냐고 물으니 그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글쎄요… 나도 그럼 27년쯤 고민한 뒤에 네 나이 54살에 합격여부 통보해주면 되겠느냐? 할 것 같은데요."
난 둘의 심정이 모두 이해되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 나를 팔아먹으려 취업시장을 전전하면서 살아온 삶과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느낌은 나도 겪어봤으니 그 젊은 구직자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취업을 하겠다는 건지 반항을 하겠다는 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지원자라면 오히려 고민하지 않고 탈락시키게 해 줘서 고맙다는 우리 팀장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밥맛은 뚝 떨어지고 말았다. 된장국을 넘기는데 입맛이 썼다. 우리가 가진 채용기준이라는게 지원자의 다양한 면을 모두 평가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서일 것이다. 실제로 채용한 사람 중 많게는 1/3 정도가 당초 원하던 것과는 달랐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인상이 좋고 유순할 것 같아서 뽑았는데 재직 내내 동료들과 한 마디도 안 하던 친구도 있었고, 로열티가 강하다는 레퍼런스 평가를 믿고 뽑았는데 팀 내 파벌을 형성해서 팀장과 대립하다가 나간 경우도 있었다. 다른 팀원들의 실력이 낮아서 자기가 메꾸느라 힘들다고 매일 한탄하던 친구가 알고 보니 쥐뿔도 실력이 없던 게 들통났다던가 성실함을 믿고 뽑았는데 회사 업무보다는 개인 외주 돈벌이에 성실한 케이스도 있었다.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기술 면접 때 너무 어버버 해서 뽑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프로그래머가 언성 히어로였다 거나 우울한 히키코모리인 줄만 알았는데 입사해보니 자기 관심분야에서는 핵인싸여서 팀 내 분위기 메이커가 되었다거나 하는 사례들이다. 이런 실정이니 “내 삶을 왜 네가 1분 만에 평가하냐!”는 항변이 머릿속을 부유하여 입맛을 쓰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만 밥그릇을 들고일어나 퇴식대로 가져가고 말았다. 하필 오후에 면접이 있었기 때문에 더 먹다간 면접 자리에서 체할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후의 면접은 형편없었다. 그는 우리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동경하고 있다고 했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꿈꿔왔다고 해서 나를 만족시켰지만, 실무 기술면접에서 기초적인 것도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한두 번 대답을 놓치자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고 마스크 위에 노출된 눈만 꿈뻑꿈뻑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면접이 끝나고 스탠드업 평가 자리에서 면접자들은 모두 No를 외쳤다. 실무자와 팀장이 No를 하는데 무엇을 어쩌랴. 팀장은 평소와 같이 차분하게 그를 탈락시켜야 할 이유들을 말했다. 모두 사실이었고, 적어도 면접 자리에서 보여준 모습에 의거하면 진실에 가까웠다. 그렇다.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여러 면 중 우리가 들여다본 것은 한 면뿐이 아닐까? 형편없는 고물차를 모는 사람이 모두 가난뱅이는 아니고, 매일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해서 그의 재산이 엄청난 것은 아니잖은가? 채용면접이 일상화된 우리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고 자평하지만 그 선입견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세상은 얼마나 좁고 닫힌 풍경일 뿐인가?
모두 회의실을 나간 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창가로 다가가니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이 약간 굵어져 있었다. 창 아래 건물 정문 앞에 방금 면접을 봤던 그가 아직 서 있는 게 보였다. 아까부터 내 눈치를 보던 팀장이 슬쩍 다가와 같이 창밖을 보다 그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제 자리에 일회용 우산이 있는데.. 가져다줄까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십 년쯤 같이 일하면 부부만큼 한마음이 되는 걸까?
그래, ㄱ팀장아.
홍상수 감독이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이런 메시지를 외쳤었지.
우리 사람되기는 어려워도 괴물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