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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뭇별중한별 Feb 20. 2022

자화상 수업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나름의 각색이 추가되었다. 이야기를 전한 분과 글을 읽어줄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교단에서 그림을 가르쳐 온 선생님이 있었다. 그는 이미 한 번의 암투병을 겪었고 완치의 기쁨을 맛보았으나, 다시 재발되어 이제는 호스티스 병동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의사는 그에게 6개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고, 선생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무척이나 담담했다고 한다.


첫 암투병 당시 그는 매일 눈물로 기도하며 병 치유를 간구하였다. 그리고 병이 완치되자 그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완치 후의 삶은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자식들은 얼마 안 되는 선생의 재산을 두고 다투다가 의절하였고, 오랜 선생의 병수발로 심신이 지쳤던 아내는 병을 얻어 죽을 고비를 넘기었다. ‘이러려고 살아났나’ 한탄하던 선생은 암투병 때처럼 기도로써 상황이 역전되리라 믿었지만 선생이 바라던 응답은 이뤄지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선생은 기도에 대한 열정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부인이 병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생을 마감하게 되자 선생은 모든 의욕과 희망을 잃고 말았는데 때마침 암 재발로 시한부 판정까지 받자 이제는 그것을 덤덤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선생은 이제 전처럼 자신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기도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계속 기도응답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한계수명을 거슬러 천년만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선생은 했다고 한다. 선생은 이제 기도의 내용을 바꾸었다. 남은 6개월 만이라도 내가 어떻게 뜻있게 살 수 있을지 알려달라고.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호스티스 병동에서의 매일은 그야말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무력한 하루하루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간호사가 선생의 경력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다른 환자들을 위한 그림 수업을 부탁해왔다. 선생은 병환도 심하고 만사가 귀찮아 그 제안이 탐탁지 않았으나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들의 기분전환을 위해서라도 딱 한 달만 해달라는 간청에 못 이겨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의 새로운 제자들은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모두가 직선도 똑바로 그을 줄 모르는 그림 문외한들이었다는 점이었다. 며칠을 견디던 선생이 더욱 무력해져 모든 것을 그만두려고 했을 때 한 할머니 학생이 그에게 부탁을 해왔다.


“선생님, 나는 내 얼굴을 그리고 싶어요.”

“왜 자기 얼굴을 그리고 싶으세요?”

“애들이 영정사진으로 쓸 것들을 골라왔는데, 아무것도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요.”


선생은 다음 날부터 수업을 <자화상 그리기>로 바꾸었다.


선생은 오랜 미술교육의 경험으로 사람들은 얼굴초상을 그릴 때 자기도 모르게 자신과 닮은 것을 그려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자유롭게 수업을 진행했다. 데생의 기초 같은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환자들이 거울을 마주하여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고 눈, 코, 입을 표현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 후에는 그들의 마음대로였다. 주름 하나하나를 정성껏 그리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현재 자신의 모습과는 관계없이 원하는 대로 아주 젊거나 어린 인물로 자신을 표현하는 환자도 있었다. 여백을 텅 빈 채로 남겨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색색의 만발한 꽃으로 자기 얼굴을 둘러싸는 사람도 있었다.


각자의 그림들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갈 때쯤, 한 환자가 수업 후에 선생을 찾아와 울음을 터트렸다.

“선생님, 붓을 들면 왜 이렇게 옛날 생각들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환자는 한참을 울다가 돌아가면서 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감사해요. 제 삶을 돌아볼 기회를 주시고 감사할 것, 용서할 것들이 아직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요.”

선생은 병실로 돌아와 밤새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또 한 번 자신의 기도에, 뜻있게 살도록 길을 알려달라는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선생의 새로운 환자 제자들은 하나 둘 병원을 떠나 예정되어 있던 길을 갔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영정사진 대신 자신이 그린 자화상을 장례식장에 걸었다고 했다. 18세 순이를 그린 어머니의 자화상을 본 어느 상주가 흰색의 근조화환을 치우고 그림 속에서 활짝 피었던 붉은 동백꽃으로 장례식장을 장식했다는 이야기는 선생을 매우 기쁘게 했다. 기쁜 일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장례 이후 고인을 보낸 유족들의 편지와 선물들을 선생은 매우 소중하게 간직하고 어떤 것들은 액자로 만들어 병실을 장식해 두었다고 한다. 선생은 병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70 평생의 그 어떤 날들보다 지난 몇 개월이 더 가치 있다 말하며 몇 년간 잊었던 웃음을 환하게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 역시 예정되어 있던 길을 피하지 못하였다. 선생의 마지막은 여느 암환자와 같이 매우 큰 고통과 함께였으며 그의 모습은 그를 아끼던 이들의 가슴을 찢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선생의 장례식만큼은 여느것과 달랐다고 한다. 참석자 중 한 명은 마치 전시회가 개막되는 화랑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였다고 그 장례식을 회상했다.

우선, 영정에 걸린 선생의 그림은 단순한 자화상이 아니라 선생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어울려 하늘로 날아오르는 온갖 색깔의 나비를 나비를 바라보는 그림이었다고 하고, 장례식장 입구부터 내부까지 선생의 제자들이 그린 자화상 수십 점이 늘어서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선생에게 감사 편지를 써 보냈던 자화상 수업 제자들의 유족들이 저마다 상주를 자청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선생의 부고 소식을 듣고 생전에 선생이 알지 못하던 이들까지 조문을 오는 통에 선생의 장례식은 시끌벅적 북적였다고 한다.

어느 참석자는 이렇게 그 광경을 이렇게 전하였다.


“그야말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온갖 색깔 나비들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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