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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현 Nov 10. 2019

쇼핑을 잠시만 한번 멈춰보자

나는 스마트폰 중독 엄마이다. 단체 채팅, 쇼핑, 유튜브 세 가지 이유로 스마트폰을 손에 붙고 있었다. 이번에는 최고 수준의 중독을 자랑하는 인터넷 쇼핑을 자.


나는 무한쇼핑의 굴레에 자주 빠지곤 했다.


연예인이 입은 옷이 예쁘면 그 스타일의 옷을 검색한다.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았다.

더 싼 곳이 분명 존재할 테니 최저가 검색을 한다. 더 싼 곳을 찾았다.

이 쇼핑몰이 옷을 싸게 파는구나 기뻐하며 그 쇼핑몰의 옷을 다 살펴본다.

또 마음에 드는 옷을 찾는다.

이 옷은 과연 최저가가 맞는지 살펴본다.

다른 쇼핑몰을 또 찾게 된다. 

또 마음에 드는 옷을 찾는다...


내가 옷 헌터인지, 쇼핑몰 헌터인지, 아니면 예쁜 쇼핑몰 모델 구경이 목표인 사람인지가 모호해진다. 무엇을 사려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잊고 무한 쇼핑타임에 빠져든다.


옷 이란 녀석은 묘하다.

며칠을 고민해서 장바구니에 담는다. 장바구니에 담아 둔 것들 중 고민을 거듭하며 살아남은 녀석들을 주문했다. 입어 보자마자 이건 아니라며 반품하는 옷도 있지만, 입어보니 잘 어울리고 제법 예쁜 것 같기도 하다. 쇼핑 행위를 만족해하며 옷장에 보관한다. 중요한 날이 왔다. 야심 차게 그 옷을 꺼낸다. 다시 보니 예쁘지 않다.

차라리 이 옷도 처음부터 잘 어울리지 않으면 반품이라도 했다. 분명 배송 온 첫날에는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갖고 있던 옷과의 코디도 마구 떠오른다. 옷 잘 입는 아줌마가 된 기분이다. 묘하게도 옷장에만 들어다 나오면 옷은 빛을 잃어버린다. 구질구질해진다.



옷은 왜 옷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예쁜 걸까. 옷의 요정이 환불도 못하도록 내 눈에 콩깍지를 씌우는 걸까. 자꾸 옷을 사게 하려고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출만 하려고 하면 가지고 있는 옷은 모조리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쇼퍼홀릭 누누 칼러 오늘부터 쇼핑 금지)라는 책을 통해 목화란 작물의 특징을 알게 되었다. 목화는 재배 자체가 쉽지 않다고 한다. 건조하고 뜨거운 기후에서 자라는 목화는 특정시기에 이르면 엄청난 양의 물을 필요로 한. 건조하고 뜨거운 지역이라 물이 부족한 지역이다. 목화가 먹어치울 물을 확보하느라 수로 방향을 틀고 댐에 물을 가뒀다. 그 결과 과거 지구 상에서 네 번째로 큰 내륙 호수인 아랄 해는 90프로가 말라버려 사막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살충제의 4분의 1 목화밭에 사용된다. 세계 보건기구에 따르면 목화밭에서 일하다 살충제 사고로 죽는 사람이 매년 2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놈의 목화는 까다로워서 물과 살충제를 어마어마하게 사용해서 재배되고 있었던 것이다.


2017년 살충제 성분이 달걀에서 검출되었다고 엄마들이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나도 지금까지 달걀만큼은 유기농 제품을 파는 곳에서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사먹고 있었다. 참으로 부질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살충제를 범벅해서 키운 목화로 만든 옷을 입히고 있었다. 살충제는 장기간 토양에 잔류한다는 것도 슬프다.

옷장에 묵혀있고, 그저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샀으며, 쉽게 사고 쉽게 버렸고, 사놓고 자주 입지도 않을 나의 옷들을 만드느라 쓰였을 살충제와 물을 생각하니 지구에 죄를 짓는 기분이다.

환경보호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는 못하더라도, 옷 사는 거 줄인다고 치명적으로 타격을 입는 것도 아닌데 지구를 오염시키는 직접적인 가해자가 될 수는 없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 반복하는 아까운 내 시간, 부족한 내 돈, 살충제와 물을 떠올리자.


잠시라도 쇼핑 끊을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쇼핑을 끊어내고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제 쇼핑의 기준을 바꾸려고 한다. 얼마나 예쁠까 보다 얼마나 자주 사용할까를 떠올리기로 했다.

하늘 아래 같은 스프라이트는 없다며 또 줄무늬 티를 사지 말고, 매일 입을 속 사는 것을 우위에 두기로 했다.


쇼핑을 끊고, 미용실도 매달 가려고 한다. 커트 비용은 2만 원 정도이다. 2만 원 원피스는 또 옷장에 분명 처박힐 테지만 쉽게 사곤 했다. 내 옷장은 이미 2만 원 옷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매일 나와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내 머리카락에 드는 2만 원은 이상하게 아깝다. ‘머리카락 금방 자라는데 돈 낭비야. 어차피 묶고 다닐 테야.’라고 생각했다.  내 몸에 쓰는 2만 원을 아까워하지 말자.


우리 집 베란다로 향하는 문이 덜컥거리고 잘 닫히지 않는다. 20만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길래 비싸다 싶어 몇 달째 수리를 미루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힘주며 문을 닫고 있다.

쇼핑을 줄였다면? 문은 수리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옷 입고 예뻐진 나를 상상하며, 고작 그 설렘을 위해 매일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수리를 안 하는 것이 참 어리석다.

나는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인간이다.


취미 발레에 필요한 레오타드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것이 부족하니, 계절이 바뀔 때 다른 옷들은 사지 않고 오직 레오타드만 사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사려면 나는 며칠을 핸드폰을 들고 뒤적거릴 것이 뻔했으므로 반드시 오프라인 샵에 가서 시착 후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루 날 잡아 서울 나들이하기로 했다. 그것이 내 소중한 시간과 반품비용까지 절약하는 길이다.


속지 말자. '꾸안꾸(꾸미지 않았으나 꾸민듯한)' 옷이란 없었다.  '꾸미지 않았다.'까지만 성공이었다. 꾸민듯한 예쁨은 나오지 않았다. '얼굴이 전지현'이거나, '몸매가 전지현'이거나 아니면,  '전지현'이어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토록 실패를 반복하고도  편하면서 나를 예쁘게 만들어줄 옷을 찾아 서성이지 말자.

옷장에 쌓여있는 내 옷부터 입어보자. 이 옷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과 살충제를 어마 무시하게 사용했을 테다.


옷 쇼핑을 완전히 끊은 지 5달 정도 되었다. 나의 스타일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자주 옷을 살 때도 입던 옷만 입었기 때문이다. 취미 발레를 시작하고 살이 빠지니 작아서 못 입었던 옷들도 꺼내 입을 수 있다. 유행에 둔감해지면서 옷에 조금 관심도 없어졌다. 매일 쇼핑몰 사이트를 들락거릴 때는 사고 싶은 것들이 수 십 가지다. 오히려 자주 안 보니 갖고 싶은 것이 줄고 있다.


 싼 것만 계속 서 쟁이던 나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여자의 옷장은 여자의 인생을 닮았다'는 책 제목을 기억하자. 내 옷장이 아니라 내 인생이다. 싸구려로 가득 채우지 말자. 남들 따라 사는 옷들이 아니라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으로 채우는 노력을 지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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