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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현 Nov 08. 2019

77 사이즈 비만 엄마, 성인 발레를 시작하다.

핸드폰을 많이 내려놓았으니 시간의 여유가 있는 오전에 뭐라도 해야 했다. 아이들이 유치원,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금쪽같은 자유 시간이 생긴다. 가만히 있다가는 분명 나는 잠시도 참지 못하고 허무하게 핸드폰을 들고 검색을 할 것이다.  한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 뻔하다.


나는 평소 무용하는 분들을 동경했다. 댄싱 9도 썸바디도 지금까지 수십 번 반복해서 보았다. 나는 77 사이즈의 무거운 여자이지만 훌쩍 나는 댄서들은 나와 정확히 정반대. 이 세상 존재가 아닌 듯한 아름다움이 느껴져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나의 영원한 영웅 김연아 선수도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캐나다 출신의 발레리나에게 발레 수업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에잇 모르겠다. 한번 사는 인생이다. 발레 한번 도전해보자’ 생각하고 발레학원에 등록을 했다.


이 몸매로 발레수업을 듣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시작은 힘들었으나, 최고로 재미있다. 


나는 요가 필라테스와 같은 차분한 운동은 늘 한 달도 채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곤 했다.


특히 근력운동을 하면서 선생님께서 “하나. 둘. 셋” 이렇게 숫자를 세는 것이 참 싫었다. 숫자를 세면 그 숫자가 지겨워지고, 몇 개 남았는지 더 의식되고, 더 참기 힘들어지는 느낌이라 참 싫었다. 


발레는 카운팅이 없었다. 단지 아름다운 음악 속 박자에 맞춰 동작을 할 뿐이다. 음악과 맞추는 동작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있었다.


솔직히 발레는 단순히 예쁜 척하며 힘을 풀고 부드럽게 손이나 다리 동작을 하는 것인 줄 알았다. 발레는 엄청나게 근력을 요하는 운동이다. 가장 힘든 운동은 미식축구이고, 두 번째 발레라고 한다. 다리 하나 들어 올리는 것도 온몸에 힘을 잔뜩 주어야 했다. 게다가 쿵 떨어지기는 쉬워도 가벼운 척 떨어지려면 배가 아플 만큼 힘을 주어야 한다. 어지간한 성인 여성 1명의 무게일 내 다리를 쿵 소리 나지 않고 가벼운 척 내리려면 배와 엉덩이에 잔뜩 힘을 주어야 했다.


예전에는 무용수들이 유연하기 때문에 다리를 높게 들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트레칭이 제법 늘어도 나의 다리는 더 높게 들리지 않았다. 스트레칭도 필요하겠지만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은 근력이었다.


재미있는 근력운동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재미있는 근력운동이라는 신세계가 바로 발레다. 


발레는 무엇보다 그동안 했던 어떤 운동들보다 내 콤플렉스인 상체 살들을 빼는 데 도움이 된다. 어깨를 계속 힘주어 내리 팔을 계속 들고 있으니 상체가 안 예뻐질 수가 없다.


내 팔뚝은 지방분해를 돕는 카복시 주사를 맞아도 굳건했다. 절대 빠지지 않고 내 곁에 붙어 있었다. 지금보다 15킬로 적게 나가던 결혼식 때도, 베일을 최대한 풍성한 것으로 골라서 팔뚝을 가리려고 노력했다.


평생을 함께한 나의 팔뚝 살이 발레를 배운 뒤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얏호!!  20대에도 못 입던 나시를 입고 다닌다.


팔자걸음이라 미운 내 걸음걸이가 의외로 턴아웃에 도움도 되었다.


발레복은 너무 부끄러워 몇 달을 티에 레깅스를 입고 수업에 참여하다가, 이젠 발레복인 레오타드도 입는다. 레오타드는 수영복과 비슷하지만 색깔도 디자인도 다양하고 예쁘다. 노출이 많다 보니 레오타드를 입고 거울 앞에서 발레수업을 듣고 나면 내 팔뚝이 꼴 보기 싫어서 밥맛이 뚝 떨어지는 효과도 있었다.


발레 수업을 끝마치고 나면  내가 0.1퍼센트 정도 예뻐진 듯한 느낌도 든다. 수업시간 내내 우아하게 웃는 표정으로 스트레칭하고 어깨 내리기를 연습해서 인가보다. 그 살짝 예뻐진 느낌이 되게 신난다. 발레를 접해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강수진 발레리나가 쓰신 책에서 발레는 기본적으로 자기애가 강한, 조금은 나르시시스트 narcissist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춤 동작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인식하고 느끼다 보면 자기 자신을 가꾸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발레수업 내내 스스로의 동작이 예뻐지도록 애를 쓴다. 처음에 선생님의 동작을 그저 따라 했을 때는 모르다가, 선생님이 알려 주신대로 조금 더 힘을 주고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정말 조금씩 동작이 예뻐졌다. 그러다 보면 뭔가 나 자신도 예뻐진 착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잠깐 보고도 내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어찌 그리 잘 아실까 궁금하다. 발레를 하는 내 몸짓은 마치 약분이 되어있지 않은 분수를 보는 느낌일까? 8분의 4 같이 약분이 되어있지 않아 막 지적하고 싶고 거슬리는 그런 느낌인가 보다. 아무튼 기똥차게도 선생님은 신발 속에 숨겨진 내 발끝까지 다 아시고 지적해 주셨다.


발레선생님은 당연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아름답다. 선생님 시범을 보고 있자면 너무 이뻐서 입이 헤벌쭉하다. 이대로 침만 흘리면 누가 딱 변태로 신고할듯하다.

 선생님의 아름다움에도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지만 신기하게 발레를 배우는 아줌마들도 다 예쁘다. 발레 수업에 처음 참여했을 때 '이 동네에서 예쁘고 날씬한 아줌마들을 다 모아놨나' 생각하기도 했다. 발레를 하면 정말 예뻐지나 보다.


외모에 자신감이 없는 나도 발레 수업 시간에는 공주라도 된 듯, 요정이라도 된 듯 표정을 짓고 동작을 해야 한다. 현실은 무거운 킹콩 같은 존재로 살고 있는데, 발레 수업에서만은 세상 가벼운 공주가 되는 느낌이다. 


무겁고 간헐적 단식은커녕, 주기적으로 폭식을 하며, 공복 없이 먹어대며 돼지런한 삶을 살고 있던 나도 사실은 공주가 되고 싶었다.

곧 40이 되어도, 엄마가 되어도 여자는 평생 공주가 되고 싶다. '공주 엄마' 말고 '공주'. 그래서 마음껏 예쁜 척하고 공주 되기를 배우는 발레 수업이 참 좋다.


발레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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