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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숙 Dec 06. 2021

[화장품-바세린] Balm! Balm! 전부 발라버려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유니레버 바세린(Vaseline)에 대해서

형님들 안녕하세요 여덟번째 글로 인사드리는

마케터 ‘김동숙, 김프로’ 입니다.


겨울이 되서 그런가 제 몸속에 내제되어 있던

게으름이란 녀석이 또 슬그머니 나오게 되는

요즘입니다.

(지난주 업로드 하려 했으나 미뤄진거에 대한

핑계거리를 찾는 중임)


저는 겨울이 오는 신호를 기상청 예보보다

제 입술을 보고 먼저 알아차리는 편입니다


저는 입술이 남들보다 조금? 두툼합니다.

어렸을 때는 유달리 두툼한 입술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었는데요

성인이 된 지금은 두툼한 입술이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적용될 때가 많네요ㅎㅎㅎ

(제 얼굴 대칭 상 입술이 얇았다면 더 이상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겨울만 되면

입술이 엄청 틉니다.

그래서 제 주머니, 사무실 책상, 제 방안에는

각각 다른 브랜드의 립밤이 자리잡곤 하죠.


그 중에서 제가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

입술에 바르기도 하고

눈썹 정리할 때도 바르고

팔꿈치, 발꿈치가 텄을 때도 바르기도 하는

겨울철 제가 제일 신뢰하고 사랑하는 브랜드.


오늘은 미국에서 탄생한

약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는 ‘마법의 젤리’ 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 유니레버의 ‘바세린(Vaseline)’ 에 대한

브랜드 이야기와 마케팅에 대한 썰로

‘아는 척’ 하는 시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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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유달리 두툼했던 입술 때문에

어렸을 적 우리집에는 ‘바세린’이 곧곧에 있었다.

입술 뿐 아니라 샤워 후에 살이 튼 곳이 있다면

어머니는 나를 일으켜 세워 내 몸 곳곳에

발라주시곤 했었다.


바세린은 나에게 있어 보습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제품이었다.

(바세린을 바르고 있는 지금도 어머니가

발라주시던 그 때 그 모습이 오버랩 되곤 한다.)

로버트 체스브로 (출처 : 구글_


바세린은 영국태생의 미국 화학자 ‘로버트 체스브로’

가 발명했다.

(로버트는 뉴욕대학교의 화학과를 졸업한 수재다.)


로버트가 대학을 졸업 후, 일을 하던 시기인 1850년대

는 아직 석유유전이 개발되기 전으로

전등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향유고래’를 잡아

‘고래기름’ 을 별도로 받아 연료로 사용해야만 했다.

(향유고래 1마리 당, 드럼통으로 약 50통의 기름이

나온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향유고래 (출처 : 게티이미지)


로버트는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향유고래의 고래기름을 공업/상업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정제하는 회사의 엔지니어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 때 배우고 익혔던 정제기술이 향후 바세린을

개발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석유 라는 새로운 에너지원 에

대한 열망과 기대감으로 곳곳에서

석유유전 탐사가 이뤄지고 있었고


1859년 8월, 에드윈 드레이크 란 사람이

굴착기로 파내던 구멍에서 첫 석유가 뿜어져 나온

이후로 1860년 12월 까지 미국에서는

석유 유전이 약 75개나 더 나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 펜실베니아로 몰리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석유유전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이게 그 유명한 ‘펜실베이나 오일러쉬’ 의 시작이다.

펜실베니아 오일러쉬 당시 이미지 (출처 : pixel.com)


그 무렵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발맞춰

로버트 도 ‘고래기름’ 에서 ‘석유’로 에너지원이

옮겨짐을 느끼고 있었고 

석유기름을 연구하기 위해 펜실베니아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작업장에서 우연히 작업자들의

짜증섞인 대화를 듣게 되는데…


‘까맣고 끈적한 ‘로드왁스’ 때문에 시추기계가

계속 멈춰서 작업시간이 길어진단 말야!’


‘근데 그거 알았어? 그 로드왁스가 상처난

부위에 떨어져서 몇일동안 안씻고

놔뒀는데 희한하게 상처가 낫더라고!!’


실제로 몇몇의 작업자들이 로드왁스를

모았다가 상처가 나거나 화상을 입었을 때

치료제 식으로 바르곤 했고 실제로 회복

까지 되었다.

석유 찌꺼기 - 로드왁스 (출처 : 구글)


로버트는 이 때부터 로드왁스를 수집해

정제시도를 약 5년에 걸쳐서 하게된다.


1865년, 그는 결국 로드왁스에서

‘페트롤리움 젤리’ 라는 밝은 색 젤이 남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후 약 5년동안

추가로 더 실험 하였다.


1870년, 마침내 그는 밝은 색 젤을 로드왁스에서

완전하게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이 젤이 훗날 ‘바세린’ 으로 불리우는 제품의

원료가 된다.


* 여기서 아주 신기한 포인트!

1870년, 최초로 바세린과 2021년, 현재의 바세린은

모두 100% ‘페트롤라툼’(=페트롤리움 젤리)

단일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의학기술의 급격한 발달에도 불구하고

1870년, 첫 출시 당시의 형태 그대로 현재까지도

판매된다는 점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그만큼 해당 성분이 좋은 성분이며

초기개발부터 완벽한 제품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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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세린 로고 (출처 : 유니레버)


‘바세린(Vaseline)’ 의 뜻은

‘물’ 을 뜻하는 독일어인 ‘Wasser’ 와

기름(올리브오일)’  뜻하는 ‘Elaian’  조합한 

합성어다.


(단어 그대로 풀어쓰면 ‘물기름’ 이라는 뜻인데

당시만해도 석유가 물 에서 탄소와 수소사이의 화학적

작용이 발생해서 석유가 만들어 졌을 것이라는

석유 생성이론이 지배적 이었으므로

로버트도 이를 착안해서 ‘바세린’ 이라는 합성어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1870년, 로버트는 미국 브루클린에

바세린 제조를 위한 공장을 세우게 된다.

‘체스브로 메뉴팩처링 컴퍼니’

체스브로 메뉴팩처링 컴퍼니 초기 공장사진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이후, 1872년에는 바세린을 제조하는 방법으로

특허를 받게 되면서 바세린의 양산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바세린 초창기 노란색 패키지 디자인 (출처 : 구글)


첫 바세린 제품은 작은 유리병에 코르크 마개에

봉해져 노란색 종이상자로 포장되어서 판매되었다.

(그시절 미국에서는 약은 병+코르크 마개포장이

대세 였던것 같다. 코카콜라도 첫 양산은

병+코르크 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품만 있다고 사람들이 써보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터..


로버트는 바세린에 대한 품질적인 믿음과 자신이

있었기에 제품홍보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좌)바세린을 싣고 다니던 마차 / 우)바세린 초기 패키지 (출처 : 바세린 홈페이지)


1. 컨셉 : 바세린은 화상이나 상처 치료제 입니다.

2. 프로모션 수단 : 샘플링과 시연행사

* 참고로, 로버트는 미국 최초로 샘플을 만들어

자신의 제품을 사용할 타겟에게 샘플을 무료로

만들어서 프로모션을 한 최초의 사례이다.


(당시,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약 6개월 동안

의사들과 주부들에게 바세린 샘플을 무료로

뿌린 양이 약 50만개 이상이라고 하니

실로 대단한 사람이다.)


샘플링에 이어 또다른 프로모션으로

‘시연행사’를 길거리에서 직접 하기도 하였다.


이는 가히 엽기적인 시연이었는데

로버트는 바세린의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화상을 입혀 상처난

부위에 바세린을 발라 효능을 입증하였으며

칼로 팔과 다리에 상처를 내 그 부위에

바세린을 발라서 ‘바세린=상처치유제’

혹은 ‘바세린=피부보습제’

라는 인식을 명확하게 심어주었다.


이런 엽기적인 자해마케팅은 요즘말로

어그로를 끌기에 적합했고 그 이후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바세린이 자주 오르곤 했다고 한다.

(실제로, 현대에 들어서 바세린을 연구했더니

상처치료 효과는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는 상처 부위를 통한 감염으로 건강이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세린은 상처부위에 얇은 막을 형성해

추가 감염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1873년, 마침내 체스브로 맥뉴펙처링 컴퍼니는

콜게이트 앤 컴퍼니와 계약을 맺게 되고

미국 전역으로 바세린을 유통/공급하게 된다.


이후, 로버트는 바세린을 더욱 알리기 위해

각종 의학학회 및 국내외 박람회에 참가하였으며

초기 컨셉에 덧붙여

‘손과 입술의 갈라진 부분, 햇볕에 탔을 때,

모기에 물리거나 면도 후에 사용이 가능하다’ 등


바세린이 의학용품을 넘어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필수품 으로 포지셔닝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1875년엔 영국의 대행사를 통해 첫 해외판매를

시작하기도 하였으며

이 때, 최초 의학저널 중 하나인 ‘란셋(The lancet)’

에 바세린에 관한 글이 기재가 되었고

이로인해 영국과 유럽지역에 바세린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사랑을 받은 바세린. (출처 : 나무위키)


특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바세린을 좋아해

매일 바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더불어 들리면서

더욱더 유럽시장에서 바세린의 입지가 견고해

지기 시작했다.

(로버트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기사 작위까지 받음)


1905년, 그동안 병과 플라스틱에 판매되었던

바세린을 휴대성과 간편성을 살리기 위해

‘튜브’ 형태의 용기에 담아서 판매를 시작하였으며

이 제품은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 에서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좌) 튜브타입의 바세린 / 우)바세린 소독용 거즈 (출처 : 구글)


1917년,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선언하면서

미국 군수품에 ‘튜브 바세린’ 이 보급품으로 지급

되게 되었고 미군들이 상처가 난 부위나 보습을

위해 바세린을 수시로 바르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영국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되었다.


(당시, 영국군인들은 담배와 바세린을 맞바꿀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제 2차 세계대전’ 에서도 체스브로 메뉴팩처링

컴퍼니는 미군의 의료용품 공급처로 지정되었고

‘체스브로 메뉴팩처링’ 이라는 사명 대신에

‘바세린’ 이라는 이름으로 화상치료제, 소독용 거즈 등

을 공급했다.


바세린이 대박을 친 건 1945년 전쟁 중에 일어난

한 사건 때문이다.


당시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75명의 군인이

심각한 화상을 입었으나 ‘바세린’ 덕분에

회복했다는 것이다.

이 보도 후, 바세린은 ‘애국기업’ 이라는 이미지

까지 더해저 ‘국민 아이템’ 의 위치를 견고히 했다.


그 후, 체스브로 메뉴팩처링 컴퍼니는

바세린을 이용하여 다양한 의료제품을 확대해나갔다.

다양한 바세린을 광고하는 1911년 바세린 지면광고 일부 (출처 : period paper)


1. 캡시쿰 바세린 : 감기나 근육통, 류마티스 염에

   걸렸을 때 바르는 제품.

   (바세린에 ‘캡사이신’ 성분을 추가한 제품이다.)


2. 멘톨 레이티즈 바세린 : 두통이나 신경통이

    생겼을 때 바르는 제품.

    (바세린에 ‘멘톨’ 성분을 추가한 제품이다.)


3. 바세린 헤어토닉 : 탈모, 비듬, 두피관리를

    위한 헤어제품


이렇게 의약제품으로 시작해 매출과 시장확대를

위해 자연스럽게 화장품 산업으로 확장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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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체스브로 메뉴팩처링 컴퍼니는

당시 시장의 라이벌 이었던 ‘폰즈 엑스트렉트 컴퍼니’와

합병하면서 ‘체스브로 폰즈’ 사를 설립한다.


이를 계기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인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바세린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2차 도약기가 되었다.

바세린 헤어토닉 지면광고 일부 (출처 : 구글)


1968년 5월, ‘랄프왈드’ 라는 인물이

바세린의 CEO로 오게되면서 기존의 바세린 헤어토닉

제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헤어케어’ 용품 이미지 대신

보다 큰 ‘스킨케어’ 용품 으로 확장해 가길 원했다.


그는 과감히 잘팔리던 ‘바세린 헤어토닉’ 제품을

단종 시켜 버렸고 바세린의 초기 컨셉인

‘보습’ 을 살려 ‘바세린 인텐시브 케어 로션’ 과

‘핸드크림’, ‘립 테라피’, ‘데어도란트’ 등

스킨케어 라인업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의약제품에서

화장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핸드 앤 네일 포뮬러 (출처 : 유니레버)


1986년, ‘체스브로 폰즈’ 사는 다국적 기업인

‘유니레버’ 에 인수되게 되면서

‘바세린 크리미’, ‘바세린 핸드 엔 네일 포뮬라’ 등

보다 스킨케어 제품군이 크게 확대 되면서

지금까지도 세계인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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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수명주기를 면밀히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 수명주기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 필립코틀러


마케팅구루 필립코틀러가 한 말로 금일 브랜드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이번 ‘바세린’ 편은 개발자의 인사이트,

특히 제품 뿐 아니라 시장을 바라보는 인사이트에

감명을 받았다.


의료용품 시장에서의 바세린의 수명주기가

제한적일 것으로 미리 예측하여

화장품 시장으로 시선을 돌려 제품 카테고리를

확대해 가는 그 인사이트.


자료조사를 하는 내내 소름이 안돋을래야

안돋을 수 없었다.

1950-60년대 바세린 제품 (출처 : ehive)


또한, 1800년대에 바세린 모조품과 구별하기

위해 이제는 바세린의 심볼이 되어버린

‘파란색 씰’ 을 사용한 부분도 너무 소름돋았다.

(그 시절엔 브랜딩 개념도 없었을 그 시기일텐데)


바세린이 단순히 완제품으로 B2C 시장만

타깃팅 하면 오산이다.

바세린은 대부분의 화장품에 원료로 사용된다.

(과거엔 글리세린을 더 많이 사용했지만 부패의

이유로 현재는 바세린을 더 많이 사용함)


바세린은 전체 코스메틱 카테고리 중에서 7% 정도

원료로 사용되며

특히, 립스틱에는 15% / 베이비로션에는 40% 이상

사용된다고 하니 B2B 시장에서도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바세린을 사용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바로

‘녹는점’ 이었다.

사용하기 전에는 고체 타입이었다가

피부에 닿으면 사르르 녹아버리는 제형.

(그 이유는 바세린의 원료인 페트롤라툼의

녹는점이 체온과 가까워서 그렇다고 한다.)


앞으로 유니레버 에서의 ‘바세린’은 어떠한

브랜딩 전략으로 앞으로의 150년을 준비하고

있을까?


음.. 상품기획자/마케터 입장에서

앞으로의 바세린은 보다 더 넓은 시선으로

시장을 바라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나이키가 경쟁자를 동종업계가 아닌

게임업계(닌텐도)로 바라본 것 처럼


바세린도 이와 같은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바세린은 그동안 ‘보습제/상처치유제’ 라는

제품 특성의 컨셉으로 제품개발 및

마케팅/브랜딩을 해왔다.


바세린의 이러한 특성을 조금 더 깊게

들어간다면 ‘피부 위에 또 다른 얇은 피부막’

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내 피부위의 또 다른 얇은 피부막’


이렇게 생각한다면

1. 스포츠용 피부보호제

2. 콘돔 혹은 기타 피임도구

3. 방한용품

   (발열내의 에 바세린 성분이 들어가 온도

   뿐 아니라 피부미용까지 되는)


다양한 카테고리/산업군으로 확대해

나갈 가능성이 무궁무진 할 것 같다.


내일 아침 출근길도 영하의 날씨로 엄청

추울 거라고 하던데…

요즘 마스크 때문에 입술을 하루종일

가려야하지만 어김없이 트고 있는 내 입술을

촉촉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 전 바세린을 듬뿍 입술에 얹어서

수분 보충 좀 해줘야 겠다.


이상 마케터 김동숙, 김프로 였습니다.

편안한 한 주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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