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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양 Jun 01. 2022

세 번의 여름과 영하의 이르쿠츠크

국경없는 마취주사 


여행 나온지 33일차에 오른쪽 사랑니를 뺐다. 게다가 그날은 생리까지 겹친 최악의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아팠던 치통의 원인이 사랑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통 잠을 자지 못 했다. 이 치통이라는 것이 사람을 참 거슬리게 한단 말이지.... 그러다가 언제 아팠냐는 듯 통증이 사라졌다가 턱관절 부근에서 콩-콩 하며 맥박이 느껴졌다. 좁은 도미토리에 누워 몸을 뒤척이다 앞으로의 여행 일정에 대해 생각했다. '태국을 떠나면 당분간 몇 개월은 유럽에 있어야 하는데...' 물가 비싼 유럽의 병원에서 사랑니를 뺄 상상을 하니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순 있는건가 싶었다. 그리고 비싼 돈주고 여행와서 사랑니 때문에 하루종일 숙소에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아무도 없는 도미토리에서 나왔다. 바깥 공기는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사랑니를 빼려고 하는데 근처에 치과가 있는지 물었다. 머리를 양 쪽으로 땋아 올린 어려 보이는 학생이었다. 


"근처에 몇 군데 있는데 나는 치앙마이 대학교에서 사랑니 뺐었어"


"대학교에서?"


"응 거기 학생들"


"괜찮았어?"


"아니 몇 시간만에 뽑아서 얼굴 한쪽이 퉁퉁 부었었어"


소녀의 표정을 보니 치앙마이 대학생에서 이를 뽑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일단 치과를 찾아 나섰다. 숙소에서 나와 길을 건너면 창푸악 게이트가 나왔다. 낮은 썰렁하지만 밤에는 현지인과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창푸악 게이트 부근에 자주 가는 재즈바가 있었는데 역시나 영업 전이라 그냥 흔한 골목길의 한 풍경이었다. 랍벙커가 있는 길을 따라 걸으니 치과가 하나 나왔다. 간판에는 알 수 없는 태국어와 치아 모양의 캐릭터가 웃고 있었다. 약간은 허름해 보이지만 사랑니의 고수가 있을 수도 있으니 나는 살며시 안으로 들어갔다. 코쿤카, 인사를 했을 뿐인데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봤다. 이런 동네 치과에 왠 외국인? 쟤는 대체 무슨일로? 여기 식당 아닌데? 라고 그들의 얼굴에 씌여 있는 것 같았다. 아..아이 해브 어 위즈덤 티쓰.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더니 못 알아 듣는 것 같아 서둘러 구글 번역기를 돌렸다. 그는 오늘은 뽑을 수 없고 내일은 가능하다고 , 가격이 얼마라고 친절히 말해주었다. 



한 군데만 더 가보자. 길 옆에 또 다른 치과가 있었다. LDC 라고 큼직하게 쓰여 있는 그곳은 건물만 보면 한국이라해도 믿을 것 같았다. 흰 색 건물에다가 자동문까지 달려 있는 그곳은 들어가자마자 에어컨 바람이 쏴아아- 하고 쏟아졌다. 저만치 안쪽에서 나를 향해 반기는 직원이 셋. 사랑니를 뽑고 싶다고 하자 먼저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단다. 나는 얼떨결에 일단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그 직원이 안내해준 자리에 앉았다. 외관만큼이나 내부도 깔끔했고 쇼파는 푹신했고 땀이 식어 오히려 춥기까지 했다. 치통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조금 기다리자 의사 진료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말끔한 인상의 의사는 하얀 가운을 입고 내 이를 구석구석 들여다봤다. 그리고 엑스레이를 보여주면서 매복니가 아니니 금방 뺄 수 있을거라고 했다. 의사는 친절히 비용 설명을 해주었고 리도카인을 내 잇몸 어딘가에 주사했다. 정말이지 치과는 싫은데, 제일 아픈 것이  마취 주사다. 마취 주사는 한국이나 태국이나 똑같구나. 나는 눈을 감고 사랑니가 빠지길 체념하며 기다렸다. 의사가 몇 번 사랑니를 쥐고 흔들고 싸움을 하는 동안 잠깐 잠이 들었을까 눈을 살며시 뜨니 간호사가 내 입에 석션기를 넣고 있었다. 그리고 의사가 내 사랑니를 보여주었다. 


"가져갈래요?"


진통제와 항생제를 처방 받고 하루는 죽을 먹으라는 설명을 듣고 치과를 나왔다. 그리고 실밥은 일주일 후에 풀면 된다고 했다. 간호사는 약과 함께 작은 투명 비닐백에 사랑니를 넣어 주었다. 태국에서 그것도 치앙마이에서 사랑니를 빼다니. 나는 그 사랑니를 부적처럼 들고 다니며 앞으로 아픈 일 없게 해달라고 익명의 신에게 빌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이후 6개월을 여행하면서 아프거나 또 병원에 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저녁은 간호사의 말대로 죽을 먹기로 했다. 닭과 버섯이 들어간 죽이었다. 행여나 실밥에 이물질이 닿을까 조심스레 씹었다. 내일은 치앙마이 도서관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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