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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양 Oct 22. 2022

산티아고에는 00이 없다

오늘은 여기까지 걸을게요 

삼 년 전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의 나는 엉엉 울었다. 슬퍼서 운건 아니고 감격의 눈물도 아니었다. 여권을 잃어버렸는데 경찰서에 전화를 해야 하는데 어쩔 줄 몰라 혼자서 울어버린 것이다. 여권을 잃어버린 상황과 마음 놓고 즐기지 못한 내 좁은 마음의 간극은 꽤 컸다.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시간이 늦어 전화 연결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주말은 주말이라는 이유로, 대낮엔 시에스타라고, 공무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 같은 그들은 타들어가는 내 속을 모르겠지.... 나는 할 수 없이 눈물을 닦으며 밖으로 나갔다. 대성당을 보기 위해서였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대성당을 목아프게 바라봤다. 놀랍게도 그곳은 그대로였다. 환호하고 기뻐하는 사람들. 서로를 부둥켜 안고, 어깨동무를 한 채 빙그르르 한 바퀴 도는 사람들.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찍어줄 사람을 찾는 사람들. 다시 찾은 산티아고 대성당은 당연한 소리지만 어디 하나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고 나는 얕은 감상에 젖어들었다. 


순례자가 약 한 달을 걸어서 도착하는 산티아고 대성당 앞. 그곳에 도착한 기분을 굳이 말로 표현한다면 십 년 전 사진을 꺼내 보는 느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재회한 것과 비슷한 감정이 든다. 이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신기하고 어색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동적이라거나 벅차오르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한 마디로 별거 없었다. 스페인에 성당이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성당 중에 좀 큰 성당일뿐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정확히 이십팔일이 걸렸는데 중요한 건 산티아고가 아니라 그동안 '걸었던 나'다. 여기까지 온 '나'다. 피레네에 오른 첫 날과 가장 힘들었던 나헤라 마을과 작은 계곡을 끼고 있는 마을 몰리나세카, 트리아카스텔라의 안개낀 풍경, 어딘가에서 걷고 있을 순례자 친구들 그리고 히프코 할아버지가 오래된 무성영화처럼 스쳐지나갔다. 


내가 산티아고를 다시 찾은 이유는 식상하지만 '자유스러움'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일에서 관계에서 지독하고 습한 생활로의 도피. 하지만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느낀 자유와 행복은 일시적인 상태일까. 잠깐에의 행복일까. 내가 여기서 걷는동안 한국에서 나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을 남자친구 주연철은 먼 곳으로 떠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길을 걸을거라면 한국에서 걸어도 되지 않냐고 반문하는 주연철은 나의 마음을 모르고 나도 그의 의중을 알 수 없다. 이해받지 못하지만 나는 기어이 이곳으로 왔다. 지독한 생활을 산 대가로 받은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고 여행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돈으로 자유를 산 것인가. 요즘은 돈으로 못하는 게 없다던데. 



이십팔 일 동안 나는 충분히 자유로웠고 스페인의 자연을 느꼈다. 사람은 결코 환경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체감했고 내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작은 것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나 자신의 요구와 나 자신의 목소리와 나 자신과의 대화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 무엇을 잃을 때 불행한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나 자신의 발견은 산티아고를 걷는 과정 속에서 내게 쌓인 것들이다. 



성당 앞에서 나는 몰리나세카에서 만났던 프랑스 아저씨를 만났다. 마른 체구에 흰색 뿔테 안경을 쓴 프랭크 아저씨. 나는 반갑게 그와 인사를 했다. 프랭크 아저씨는 아침 일찍 도착을 해 순례증도 받았다고 했다. 몰리나세카에서 프랭크 아저씨와 함께 밥을 먹었던 파리 출신 아주머니도 계셨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걸음이 늦어 아마 한창 뒤에서 걷고 있을거라고 그가 말했다. 우린 성당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서있다가 기념촬영을 하고 헤어졌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프랭크 아저씨가 사진을 찍자고 했던 말이다.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자니. 이 순간을.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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