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 현상 그 징표

텃밭의 기이한 현상까지

by 다나 김선자



가뭄, 이상 기온, 기후 변화, 환경오염, 지구 온난화 현상... 이 민감한 주제는 온갖 심각한 뉴스들과 함께 연일 들려온다.

올 가을 기온이 예년에 비해 적어도 5도가량이 높다. 강수량도 적어 습하지 않으니 체감온도는 그 이상이다. 이러한 날씨는 하루 이틀 반짝 기록이 아니라 봄부터 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까지 계속되고 있다. 서기가 시작된 이래, 다시 말해서 2000년 만에 처음 보는 경우란다.

이 심상치 않은 징후에 개선책이 시급하다는 환경주의자들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남쪽 지방에서는 가뭄으로 농업 종사자들의 고충과 불만 섞인 하소연도 터져 나온다.

사실 이대로 지구의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생태계 변화와 함께 작물의 지형도가 멀지 않아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농산지의 불균형으로 현재의 지역 특산물은 그 자리에서 소멸될 뿐 아니라 그 종류나 위치가 바뀌어 남쪽의 많은 땅들이 사막화되어 갈 것도 뻔한 이치다. 그때는 쌀농사나 질 좋은 포도주 생산이 북쪽 지방으로 옮겨지는 것일까? 그러면 프랑스 남쪽 지방의 포도주 생산에 직격탄을 맞는 것도 분명하지 않은가?. 이 얼마나 엄청난 혼란이 따를 것인가. 완전히 풍광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쩜 그 시작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작은 예가 올해 우리 텃밭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다. 11월, 지금까지도 우리는 텃밭에서 금방 따온 가지와 고추, 피망, 토마토를 매일같이 밥상에 올리고 있다. 예년에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 수확의 시기가 작년과 비교해 훨씬 길어졌다는 것이다. 평년 이맘때 즈음이면 나쁜 기상 탓에 텃밭 작물들은 썩고 녹아내려 누렇게 줄기만 맥없이 비틀어져 있거나, 무기력하게 서 있던지, 혹은 수확 끝에 정리된 모습의 썰렁한 빈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팔팔한 생기를 보라. 어찌 늦가을에 들어선 텃밭이라 여기겠는가. 이처럼 우리 텃밭은 남쪽의 부진한 작황과는 반대로 미소 짓는 특별한 해가 되었다.

작년, 우리는 10월 19일에 마지막 토마토를 수확했다. 그 앞의 2020년보다 며칠이 더 길어진 날짜다. 올해는 작년보다 무려 한 달 가까이가 늘어난 11월 그러고도 중순. 참으로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토마토가 여전히 줄기에 매달린 채 텃밭에서 붉게 익어가고 있다. 당연히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이토록 몇 년째 거듭 긴 재배 기간의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가지와 고추, 피망이 가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보는 이를 즐겁게 함은 물론이고 계속해서 꽃을 피운다. 열매로 커 갈지는 이 철에 경험한 바 없으니 그 또한 미지수이나 작고 하얀 고추꽃이 별사탕을 닮아서 보는 것만도 사랑스럽다.

해마다 여름 밥상에나 올릴 정도만 내어주던 작물들이 풍작은 물론, 아직도 신선하게 밥상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에 어찌 기이하지 않겠는가. 이 현상이 참 어이없고 아이러니할지라도, 내가 텃밭을 일군 이래 처음 겪는 일이기에 한편은 기특하고 즐겁다. 그만큼 기온이 따뜻하다는 뜻이다.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느끼는 살만한 가을 날씨다.


이런 현상은 비단 텃밭뿐만이 아니라 정원에서도 마찬가지다. 2월에 피는 홍매화의 붉은 꽃봉오리가 방긋이 입을 벌리고, 멕시코 오렌지 나무는 하얀 봄철 꽃이 만발하여 봄의 향기만큼은 아닐지언정 그 곁을 스칠 때 풍겨내는 은은함이 기분 좋게 한다. 또 지난여름 끝자락에 심은 패랭이꽃도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장미꽃들은 고운 빛깔을 잃지 않고 있다.

도대체 봄인지 가을인지 분간을 못하고 꽃부터 피웠다. 착각 속에 제대로 빠졌다. 지난 9월에 일주일간 예년 기온으로 살짝 내려갔다 다시 올라갔더니 이 포근함에 모두 화들짝 놀라 뛰쳐나온 것이다. 하물며 10월까지 반팔 입은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지 않았던가. 방금 산책길에 들은 새들의 노랫소리도 청명한 봄의 목청이었다. 밝고 포근한 햇살을 맞아 때 아니게 둥지를 털고 나온 것이다.

올 가을은 그만큼 쓸쓸하고 우울하지 않다. 잿빛 하늘을 끌어안고 움츠려 지내지 않아서 좋다. 밝은 날이 자주 찾아와 줘서 고맙다. 다만 샤슬라(chasselas, 투명한 옅은 노란색을 띤 포도) 빛 나뭇잎들이 가지에서 얼핏 얼핏 노년의 머리숱처럼 그 틈을 천천히 내어주고 있을 뿐. 생동함은 미미하나 그 활동은 분명 어느 방향이던 멈추지를 않았다. 포근하고 아름다운 가을이다.





사실 가을, 겨울은 나에게 있어 아슬아슬한 계절이다. 왜냐하면 찌푸린 잿빛 하늘이 순식간 찾아와 하염없이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찬 습기를 잔뜩 머금고 위협하는 날씨, 매일같이 이 우중충한 회색빛 무거운 하늘을 이고 지낼걸 생각하면 두려움부터 앞섰다. 그렇게 우울증이 이라는 계절병으로 도진다.

그런데 올 가을은 아직 그 정도가 아니다.


파리의 평년 가을, 겨울 날씨는 남쪽의 지중해 연안 지방과는 천지 차이다. 10월이 접어들기가 바쁘게 고온 건조했던 여름날이 언제였던가 싶을 만큼 급변한다. 그런 후 다음 해 3월까지는 햇볕 보기가 묘연하면서 밤낮의 경계마저도 흐려질 정도다. 이런 상태가 몇 달간 지속되다 보면 멀쩡했던 사람도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 된다.

간혹 맑은 날이 찾아와도 햇살이 내게까지 닿기를 바랄 수도 없다. 내 겨울잠 탓이기도 하겠지만, 태양이 여름날처럼 하늘 높이 오래 떠 있지도 않을뿐더러, 늦장 피우다 잠시 나와 겨우 나뭇가지 끝에나 지붕 위에 매달려 있다가 금방 사라진다. 도시에서는 건물에 막혀 땅까지 내려 올 겨를조차도 없다. 이 또한 일주일에 하루 이틀 있을 둥 말 둥, 그나마 감사한 배려다. 따라서 북쪽에 사는 우리들은 주치의 처방에 따라 겨울 동안 비타민 D 복용도 필수 요건이 되었다.

그렇다고 서울의 겨울처럼 영하권은 아니다. 대부분 날들이 영상권을 유지하면서 춥다. 습기 때문에 살을 파듯 으스스한 추위다. 차라리 맑고 건조한 추위라면 덜 우울하겠다. 쌩쌩히 내리쬐는 빛이 있으니까. 또는 눈이라도 내리면 밝기라도 하지 않은가. 오직 흐림과 비, 그리고 비와 흐림.

낮 길이는 또 얼마나 짧은가. 매년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시행되는 겨울 시간부터 한 시간이 앞당겨지면 오후 4시가 되어 벌써 깜깜해진다. 비록 북유럽처럼 백야는 아닐지언정 밤이 순식간에 찾아온다. 나같이 늦잠 자는 경우는 그 느낌도 더 크게 와닿는다.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때 그리고는 일 없이 저녁이다. 사회활동도 둔화되어 마치 하루가 먹고 자기를 반복하는 애벌레나 겨울잠에 빠진 곰이 된 기분이다.


이렇듯 가을, 겨울이 지나는 동안에 몸과 마음은 무기력해지고,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그 고통도 더 심해진다. 따라서 파리를 비롯한 북쪽 지방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정년을 맞으면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이주를 한다. 번잡한 도시를 피해 따뜻하고 조용한 곳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다. 일 년의 절반이 악천후 같은 쾌적하지 못한 북쪽 날씨가 큰 요인이기도 하다. 햇볕과 온화한 기후를 찾아 떠나는 철새들처럼.


나 역시도 그 철새가 되려고도 했었다. 해마다 도지는 온갖 자잘한 고질병을 지병처럼 끌어안고 살 수는 없었다. 매년 봄이 오기도 전에 쇠잔해진 기력으로 앓아눕기가 일쑤였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유지하는 이 중요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의 빛, 따뜻한 태양볕을, 햇빛을 절절히 그리워하면서.

그래서 나는 겨울이면 어떻게든 이곳을 떠날 궁리를 한다. 앞서는 따뜻한 지방으로 이사를 갈까도 했었다. 여러 도시를 살펴 방문을 하기도, 이웃 나라까지 찾아 나서도 보았다. 그러나 번번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한국과 더욱 멀어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지금도 가끔 가진다. 어떤 여행지가 마음을 끌면 그때마다 관심을 두고 부동산 중개사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뿐이다.


추위가 올해처럼 늦게 시작된다면, 굳이 이사를 하지 않아도 겨울나기가 쉽지 않을까는 긍정적 생각도 해본다. 북쪽 지방 거주자들 삶에 약간의 편안함을 안겨준 해다.

아니나 다를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에너지 부족 현상과 인플레이션으로 겨울 난방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걱정하는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되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지구 온난화 현상에서 본다면 빨간불에 달리는 격이지만.


마지막 가지를 수확했다. 토마토와 고추는 여전히 텃밭을 지키고 있지만, 밤기온이 떨어져 가지와 토마토의 상처도 깊어진다. 가지에 배인 쓴맛을 보니 끝물 같다. 조만간 텃밭을 모두 정리해야겠다.

맞은편 집들이 아침 안갯속에 파묻혀 사라졌다. 올 들어 처음으로 뽀얗게 뒤덮인 안개다. 비 소식도 있다. 일주일간 기상예보에는 구름과 빗방울만 보인다. 전형적인 파리 날씨다. 겨울의 초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