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아일로(Gilles Aillaud) 전시를 보았다.
아주 오래간만의 외출이었다. 천고마비를 만난 듯 이토록 좋을 수가 없다.
그동안 집과 작업실에서만 맴돌았다.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이유와 춥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두문불출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무력감이 찾아왔다. 나가고 싶어졌다. 바깥세상이 그리웠다. 새로운 공간, 색다른 분위기에서 감정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운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날씨가 풀리면서 불그미미한 햇살이 차가운 아파트 건물을 수줍게 감싸 안은 포근한 날이다. 설마 조춘의 징조인가?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역에도, 전철에도, 거리에서도 달라진 건 없었다.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 같은 모습이다. 가끔 내가 밖으로 나올 때면 오늘처럼 드는 기분이 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참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돌연 전율하는 감정. 희비가 묘하게 엇갈린다. 차라리 세상의 차분한 관조자가 되자고 한다.
우리는 생-미셀 역에 내려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고, 가끔 이용하던 중국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은 후 천천히 걸어서 퐁피두 센터로 향했다. 남편도 오늘만큼은 서점을 거치지 않고 나를 위해 하루를 내어 준다. 우리는 곧바로 생-쟈크 거리를 걸었다. 센강의 까르디날-루스디제 작은 다리를 건너서 시테섬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종탑이 올라가는 모습(지난 화재로 인하여 대공사 중임)을 바라보며 시테 길을 걸었다. 엘리자베트 2세 여왕 꽃시장을 지나 다시 노트르-담 다리를 건너 생-마르탱 길을 걸어 퐁피두 광장에 닿았다.
연말연시가 지나고 여행의 비수 기라서인지 사람들로 붐비지 않아서 좋다. 출입구에 선 줄도 길지 않았다. 우리는 습관대로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걸음을 멈추어 파리시내를 바라다본다. 파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곳, 퐁피두 센터를 찾는 여행객들에게는 포토존이라고 해도 무관한 곳이다..
나는 매번 보아도 늘 다시 묻게 된다. 저 탑은? 저 청동 돔은? 그리고 저 건물은? 남편은 막힘없이 술술 알려준다. 생-튀스타슈 성당, 생-쉴피스, 쥐슈, 앙발리드, 아, 저건 루브르 박물관이구나, 국립도서관, 그리고 새 법원 건물까지...
파리는 언제 봐도 역시나 아름답다.
우리가 보려던 전시는 6층이 아니라 일층에서 열린단다.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잠깐 사진전을 보고 갈까? 우리는 어두침침한 공간으로 들어갔다. 제법 관람객도 많았다. <몸에서 몸>이라는 주제로 한 때 시대적 경향을 이끌었던 세계적인 사진가들의 작품이 한데 모인 사진전이다. 몇몇 관심을 끄는 작품도, 한 시절 내가 관심을 가졌던 작품도 보인다. 아네뜨 메사제 작품이다. 확대된 인체 일부의 흑백사진을 노끈에 매달아 벽 위에 중첩되게 설치한 작품. 그런데 이상하게도 낡은 일기장을 꺼내 보는 것만 같았다.
당시에 내가 소로본 파리 1 대학 조형예술학과를 다닐 때 박사준비과정에서 했었던 작업도, 논문도 그와 유사한 인체 부분을 확대, 변형한 사진작품이었다. 분명 나의 관심과 일치했던 부분. 그런데 오늘 여기서 다시 보니 이미 오래전 넘겼던 페이지를 들춰보는 듯하다.
일층(한국식 이층)으로 내려가 우리가 보려던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걸린 작품을 보고서는 "어 좋은데!" 예상밖의 관심이 갔다. 내가 전혀 모르던 작가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간결하고 매끈한 차가운 구도에서 <다비드 호크만>의 초기 작품인 수영장 시리즈를 상기시키기도, 검소하고 절제된 표현에서는 피에르 부하그리오를 연상케도 했다. 그러나 정말 다르다.
예술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서로가 일치하는 부분도 있게 마련인 법. 아무튼 좋다는 뜻이다.
6층의 사진전에서는 공격적인 느낌이었던 반면, 별안간 안정감이 찾아든다. 평화롭다.
그리고는 그림을 당장 그리고 싶게끔 만들었다.
Gilles Aillaud (쥘 아일로), 1928년 6월 5일 파리에서 태어나 2005년 3월 24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화가이면서, 작가, 그리고 무대 장식가로 활동했었다.
그의 작품은 추상화도 표현주의도 아닌, 사실에 가까운 명확성을 가진다. 그는 1950년대 새 구상주의와 60년대 서사적 형상 운동과 유사한, 동물원의 동물과 바닷가의 풍경을 편애적 테마로 실제처럼 표현했다. 또 그는 의도적으로 차가운 느낌과 원근법 및 테두리 안에다 적절히 배치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마치 관람자가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한다.
그는 젊은 시절 68년 운동 당시 벽걸이 포스터와 슬로건 제작에도 공헌했었고, 같은 해 베트남전 비판에도 동참하면서 <쌀 전투>에 서명하는 등, 이를 주제로 한 그림도 한점 보인다.
또한 동물원 쇠창살에 갇힌 동물들의 표현을 두고서는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작가 자신은 그런 의미 부여를 결단코 거절했다.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마감처리가 특징이며, 검소하고 소박하게 표현함으로써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많은 공간을 주면서 표면에 공기 덩어리가 분산되고 퍼지는 것처럼 불고 지우는 효과를 통해 그림의 흐름에 더 큰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수채화" 같은 느낌을 준다. 색상에 있어서도 매우 감각적이다.
그리고 그리스, 이집트, 케냐를 여행하면서 동물들을 관찰하여 그때부터는 아름다운 대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표현했다. 이때의 풍경은 숭고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초자연적" 느낌을 주는 동시에 자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나쿠루 호수의 새 떼, 1990>에서 하늘과 물, 무한히 겹쳐지는 플라밍고, 수평 시트처럼 아주 가벼운 공기의 진동 같은 느낌. 이 섬세함과 자유롭게 펼쳐지는 필력, 춤을 추는 듯한 제스처의 붓놀림은 마치 물 위에서 먹이를 찾던 플라밍고 떼들의 여린 긴 다리가 사뿐사뿐 살아서 움직이는 것만 같다. 가히 장관이다. 혹여 내가 작품에 가까이 접근했다가는 금방이라도 날갯짓하여 모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데생처럼 보이는, 마치 동물의 도상 연구를 위한 백과사전 같은, 백여 점의 흑백 리토그래픽 작품들이다. 어느 한 점도 구도가 중복 또는 중첩되어 구상된 것 없다. 각각이 걸작이다. 동물의 특징에 따라 또는 그들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 작가의 드로잉 기법은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어떤 것은 강한 이미지로 힘차게, 어떤 것은 유연하고 가늘게, 또 어떤 것에서는 보다 느낌을 반영하여... 어쨌든 한 점 한 점마다 그 나라를 상징하면서 그곳의 환경을 음미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점은 액자 속 그것들이 살아있다고 느껴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