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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김선자 Mar 09. 2024

인도여행

5.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사실들



인도에서 여행을 하는 동안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불편한 것들이 있다. 호객행위를 비롯한 흥정과 바가지요금. 그리고 쓰레기다.

언제나 흥정해서 값을 치르고도 뒤가 개운치 않은 건 모든 것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는 택시나 릭샤는 물론이고 시장에서 바나나 한 꾸러미를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로 인해 쌓이는 에너지 소모와 불쾌감은 여행을 한껏 지치도록 했다. 차마 그들의 속을 모르니 속기도 쉽고, 반면 실망도 컸다. 차라리 알고 속던지, 속고도 모르는 척하는 게 때때로 마음은 편했다.

인도상인들의 밝고 빠른 장삿속과 그 감각적 기술은 그들의 순박하고 선한 표정과는 매우 대치된 이면의 모습이었다.


택시나 릭샤를 부르는 것보다 큰길까지 내려가면서 걷고 싶었다. 내리막 길이라 힘들지도 않을뿐더러, 어저께 택시 안에서 받았던 좋은 기분을 걸으면서 느끼고 싶었다.

두 팔을 가볍게 흔들면서 상쾌한 발걸음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절반쯤 내려갔을 때, 빈 릭샤한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선다. 우리를 태우기 위해서 왔던 것이다. 이 구역은 호텔 경비원을 거치는 오르막길이므로 호출 없이 우연이란 거의 불가능한 곳이다. 이 급작스러운 상황이 어이없었으나 단박에 자르기도 미안해서 그냥 타기로 했다. 어차피 대로에서 타려고 했던 것이니까. 그럼에도 어떻게 때마침 나타났는지 궁금했다. 곰곰이 추측컨대 방금 호텔방을 나올 때 인사를 나눴던 호텔 직원이 알렸지 않았을까 생각됐다. 우리를 배려한 차원인지, 택시기사가 그의 친구인지 알 수는 없어도 이 또한 인도문화라 생각했다.


그다음 날 또다시 같은 릭샤가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별안간 나타났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허무맹랑 어처구니없었지만 매정하게 자를 수가 없어 타기로 했다. 솔직이 우리가 외출을 할지 안 할지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판국에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이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만큼 절박함에 대한 의지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애잔한 마음이 없지도 않았다.

달리 생각하면, 온종일 기름까지 소모하며 달려도 벌이가 크지 못하는 것보다야 외국여행객 한 명 잘 만나 여유롭게 한나절 인도하면, 거기다 바가지요금에 팁까지 얹은 수입이 더 나았을 것이다. 물론 모험적이긴 하지만 이런 비수기에 시도해 봄직한, 그의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릭샤기사는 판다이 궁전문 앞에서 우리가 나올 때까지 또 기다리겠단다.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우리는 관람이 끝나면 자유롭게 시내를 걸으면서 미낙시 사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눈치 없게 마치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자꾸만 귀찮게 군다. 슬그머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친절이 아니라 민폐에 불과함이다. 더군다나 바가지요금까지 푹 덮어씌우면서 호객행위를 했잖은가.

사실 바가지요금과 호객행위는 이 릭샤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곳에서, 특히나 외국여행객에게 공공연히 행해지는 실사다. 유독 마두라이 시에서 더 심했을 뿐이었다.

호텔로 돌아갈 때도 흥정에 흥정을 반복해야 했었고, 미터기가 있어도 작동은 아예 불가했으며, 고의인지 아니지, 원해도 소용없었다. 사실상 릭샤의 태반이 미터기가 없다. 아니 거의 없다.

만약 가당치도 않은 흥정을 거절한 채 돌아서면 계속 새 제안을 내놓으면서 몇 미터 전방까지 성가시게 따라붙는다. 아주 치근댄다. 몹시 추잡스럽다. 끝내 그들의 요구가 성립되지 않을 때는 거침없이 야유를 마다하지 않는다. 불쾌감이 가중됨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게 중에 소박하고 친절한 기사가 없지도 않다. 우리 또한 그들을 만날 때마다 아낌없이 호주머니를 열었다. 이 뜻밖의 수입에 순박한 미소와 함께 크게 열린 눈동자가 '감사하다' 말할 때는 앞에서 받았던 불유쾌했던 마음까지 씻어준다. 한잔의 따뜻한 인도짜이처럼, 덕분에 여행은 계속된다.

앞서 나는 인도여행에 남편의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었다. 그 이유가 바로 이 호객행위와 바가지요금으로 생긴 그의 피로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많은 것들이 변했어도 예나 지금이나 그 행위만큼은 사라지지도 바뀌지도 않았던 것이다.

반면, 뭄바이 시에서는 대도시답게 택시에 미터기가 작동되어 오히려 편리했다. 미터기를 사용하다 보니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소도시보다 요금은 더 저렴했고, 피곤하게 흥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뭄바이 시내에서는 릭샤 운행이 일체 금지되어 택시만 운행 가능하다. 따라서 아비규한을 이룰 정도도 아니다. 간혹 공항 가는 택시가 흥정을 필요로 하지만 굳이 그런 택시를 타지 않아도 충분히 많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는 차량에 따라 정찰제로 지불한 후 차례대로 타면 된다. 아주 체계적이다. 에어컨 설치와 아닌 택시로 나뉘어 금액도 다르다. 당연히 에어컨이 설치된 택시가 비싸다. 거기다 약간의 팁을 얹어주면 그들의 수줍은 미소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판다이 궁전은 딱히 볼 것이 없었다. 한창 보수공사 중이었고 건축미도 돋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성가신 릭샤와 택시기사들을 뒤로하고 시내를 걸었다. 그런데 고작 백 미터도 못 가 혼비백산이 되고 말았다. 자동차, 오토바이, 릭샤, 인파들까지 그 소음과 혼잡함에 놀란 고슴도치처럼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걸을 수가 없었다. 얼른 골목길로 접어들고야 말았다.

사실상 도로 가장자리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보도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있으나마다였다. 허물어지고 끊어지고, 일부는 상점들이 점유해 버렸다. 더 재밌는 것은 손님들의 신발이 보도 위에 가지런히 또는 너부러져 있어 마치 상점의 현관이 된 꼴이었다. 상점에 들어가면서 벗어둔 것이다. 사유지화 된 공유지! 이 기득권층의 침탈을 보면서 인격이 무시된 계급사회가 은근슬쩍 보이는 것도 같았다.


조용한 골목길이 좋았다. 그런데 얼마가지 못해 경악을 금치 못할 진풍경이 목격되었다. 이처럼 인도라는 나라는 드라마틱하고 파란만장한 장면이 연출되는 곳이었다.

궁정 담벼락에 쌓여있는 쓰레기다. 이 역시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불청객 같은 것이었다. 길바닥은 당연하고 하천, 바다, 공터 심지어 박물관 터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더미를 이루던가 바닥에서 먼지와 함께 뒹굴고 있었다. 물론 개발도상국의 병폐이기도 하지만, 심각한 인도인들의 의식구조적 문제이기도 했다. 소도시일수록 그 강도와 범위가 더 심했다.

그들은 현대문명이 전파되기 이전 전통생활 방식을 현대문명에서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다. 그때의 관습이 오늘날 아주 불편한 상황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플라스틱 비닐봉지도 음식을 싸고 담았던 바나나 잎과 코코넛 잎사귀처럼 생각했다. 아무 데나 무심코 버리는 것이다.

진정 그들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줄을 모르는 것일까? 분명 위생 관념에 큰 구멍이 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들의 의식에서 청결문제만큼은 참 동떨어져 있었다.  

한 예로 뭄바이 시에서 한 시민이 자신의 자동차에다 커다란 쓰레기 봉지를 싣고 와서는 바다에다 몽땅 쏟아 버렸다는 것이다. 그 장면을 때마침 목격한 경찰이 그를 체포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났었다. 그 기사를 우리는 뭄바이의 호텔에서 읽었다. 이것이야말로 이기주의적 현대인의 본상이었다.  

바다뿐만 아니라 도심 곳곳의 도랑물은 썩어서 고여 있었고 맑게 흐르는 물을 보지 못했다.

여행객들은 당연히 생수를 마시는 것이 기본이었고, 매일 호텔에서 생수를 제공하고 있었다. 고아주의 콜라비치에서 머물었던 방갈로에서는 과일과 채소를 생수로 헹군다며 철저한 위생문제에 큰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생수값을 마련하기 어려운 하층민의 삶은 누가 보상하겠는가? 그들의 의식화에 시급함을 느꼈다.  


또 하나의 장면은 어느 골목에 서 있는 작은 손수레 안에서 곤히 낮잠을 자는 한 남루한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몸집이 야위고 왜소한 중년의 남성,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어쩌면 가난이 준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이 궁핍한 모습의 노동자에게서 내가 느낀 양면적 감정. 참 모순적이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잠을 청할 만큼 고된 삶이 삐죽 튀어나오기도 했었지만, 역으로 달콤하게 잠든 모습에서 가공하지도, 가식도, 형식도 없는 인간적인 참다운 모습 또한 엿보았다.

한평 남짓한 공간에서 잔뜩 웅크린 채 자고 있는 이 풍경은 가슴이 먹먹한, 측은지심, 연민과 더불어 겸허한 마음까지 들었던 것이다. 엄연히 자신의 영역이고 본인 소유의 공간인 손수레 안에서의 곤한 잠이었다. 그에게는 침대이고 방이며 집이었을 것이다. 그 곁에서 되레 내 발자국소리가 무례하게 들려 감히 숨죽이며 걸어야 했었다. 내가 오히려 방해꾼이 된 것 같았다.

어쩌면 손수레 도난을 방지하는 차원이었던지, 흙바닥보다는 나았던지, 미처 내가 이해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충동이 생길 만큼 아름다운, 흔치 않은 인간적 모습으로 비쳤었고 또 연민으로도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을 억누를 정도 숙연해지기도 했었다. 만감이 교차했던, 이율배반적인 순간이었다.         



탄자부르 박물관 안에서
왼쪽; 뭄바이 최대 명소 게이트 오브 인디아가 있는 바다 모습 / 오른쪽; 바다미 시의 주택가 길
고아주에서;  노천식당 옆의 쓰레기와 이끼가 덮인 오물
왼쪽; 릭샤에 미터기가 있어도 작동은 안 됨 / 오른쪽; 판다이 궁전 천장
판다이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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