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린더를 꽤 열심히 쓰는 편이다. 캘린더의 1차적인 목적은 미래의 일정을 잊지 않고 제때 챙기기 위함이다. 과격하게 말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랄까. 정신없이 바쁘게는 살았는데 정확히 뭘 하며 살았는지 머리 위에 물음표가 둥둥 떠오를 때도 나는 캘린더를 본다. 친구와의 약속과 지인들의 결혼식 같은 약속부터 '주민세 납부하기'와 같은 꼭 필요한 일들까지 해낸 나를 보며 안심해하고 잘 살고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오랜만에 캘린더를 보니 PT를 끊은 지 딱 세 달이 됐다. 처음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학교 다닐 때 체육대회가 가장 싫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늘 헬스클럽에 결제만 하고 정작 가지는 않아 기부천사로 불렸던 내가 운동에 빠지게 될 거라는 걸.
운동은 신기하다. 살다 보면 노력해도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은데, 운동은 한 만큼 결과가 오롯이 나온다. 죽었다 생각하고 무식하게 몇 달 열심히 했더니 굽었던 어깨가 펴지고, 없던 쇄골이 생기고, 0에 수렴하던 체력이 이제 일반인의 그것과 가까워졌다.
더 신기한 건 몸의 근육만큼 마음의 근육까지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분명히 나는 예민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인간이었는데, 운동을 한 뒤부터 점점 잡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요즘 화가 나면 유산소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걸으면 어느 순간 분노는 증발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은 늘 별개라고 생각했다. 몸은 운동으로 바꿀 수 있어도 마음은 타고난 거라고. 좀 늦게 깨닫기는 했지만 이제야 알겠다. 몸의 근육을 키우면 마음의 근육도 커진다는 것을.
서른셋의 가을, 나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