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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Jun 24.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89)

- 마드리드에서의 휴식(3) -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다. 오전 8시 반을 조금 넘겨 아침 식사 겸 산책을 나선다. 오늘은 호텔 부근을 벗어나지 않을 생각이다. 특별하게 더 돌아다니고 싶은 곳도 없다. 조용한 동네이니 분위기에 맞게 시간을 보내야겠다.


 아침 식사는 산책 길 중에 있는 VIPS에 가서 간단하게 해결한다. 이 식당에는 아침 식사 메뉴가 있는데 양이 많다. 오렌지 주스도 생즙이다. 가성비가 좋다. 먹을 만하다.



 식사 후 식당에서 계속 멍 때릴 수가 없어 적당한 때 일어나 나온다. 호텔 뛰 쪽 길로 가면 공원이 나온다. 그쪽으로 산책하기로 한다. 가는 도중 길가 아파트 입구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잠깐 쉰다. 벤치에 앉아 있으니 아침 공기의 서늘함과 햇살의 따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상쾌하다. 이 거리의 아파트 구조를 보니 입구마다 이렇게 아파트 주민을 위한 조촐한 휴식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주민이 아니면서 이 공간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들락거리는데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공원은 커 보이지 않았다. 표지판을 보니 로마공원(Parque de Roma)이다. 그런데 이 공원은 작은 공간이 아니고 상당하게 크며 잘 관리되고 있다. 너무 편하고 기분 좋은 공간이다. 아침 햇살을 받아 공원의 잔디와 나뭇잎이 연초록빛을 품어내며 찬란하게 빛난다. 참고로 자료를 찾아보니 이 공원은 1960년에 조성되었는데 그 면적이 9 헥타이다. 그러니까 9만 평방미터 약 27,272 평이다.



 벤치에 앉아 많은 시간을 멍 때리고 있는데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아이들과 산책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공원에 유도화가 많이 보인다. 스페인의 도로에는 유도화가 많이 심어져 있다. 고속도로 길가에도 어김없이 유도화가 심어져 있다. 생명력이 강해서일까?



 돌아다니며 공원을 가늠해 보니 이 공간은 작은 동산 정도의 큰 언덕배기이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아파트들이 지어져 있다. 공원의 높은 곳에서 보니 아파트들이 아래쪽에 멀리 보인다. 이 부근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공원을 곁에 두고 사니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공원 아래쪽으로 대로가 보이고 이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가 있다. 구름다리 건너편에는 ‘Alcampo’라고 불리는 대형 슈퍼마켓이 입점한 쇼핑몰(Centro Comercial) 건물이 보인다.  



 남는 것이 시간이기 때문에 그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Alcampo 쇼핑몰에서 아내는 39개월 된 손자 팬티를 9개나 구입한다. 팬티가 예쁘다면서 보고 또 보고한다. 손자가 예쁘니 팬티도 예쁜 모양이다. 인지상정이다.


 다시 역순으로 걸어 호텔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가 아파트 입구에서 보는 분홍빛 수국이 아름답다. 스페인에서는 유도화와 수국이 많이 보인다. 특히 수국은 내가 좋아하는 꽃인데 북쪽으로 여행할 때 많이 보았다. 그때 본 수국은 주로 흰색과 보라색이었다. 오늘은 분홍색 수국을 본다.



 아파트 창가에 비친 공원의 풍경도 아름답다. 사진 프레임에 담아 둔다.



며칠 전부터 오른 쪽 아래 어금니에 경미한 통증이 있더니 점점 더 심해진다. 출국 전에 좋지 않아서 일단 치료를 받았는데 여행 마지막 일정에 불편함을 준다. 2-3일 전부터 타이레놀을 먹으며 통증을 달랬다. 그런데 오늘은 오후부터 통증이 조금 심해진다. 귀국하면 치과부터 찾아가야 한다. 일단 호텔에서 가까운 약국에 가서 상담하고 소염진통제와 치아 스프레이를 받아온다. 치아 스프레이도 어금니 통증 완화제라고 하는데 설명서를 읽어보니 부분 마취제인 것 같다.


 그러니까 3개월의 스페인 살이가 끝나가며 마음이 홀가분해졌는데 난데없이 복병이 나타나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것이다. 복병은 항상 잘 숨어있다가 상대방이 빈틈을 보이거나 약해질 때 공격을 한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항상 그랬다. '아~이제 편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반드시 어데선가 불편하고 불쾌한 것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런 표현을 잘 하지 않는데 내 마음에 그 생각이 자리를 잡았나 보다.


 하여튼 오늘이 '스페인 3개월 살이'의 '펜 울티모(Penultimo(끝에서 두번째)' 날인데 치아 통증으로 편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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