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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eon Mar 28. 2021

사랑의 위태로움

사랑의 아름다움

언젠가 서로의 사랑이 식어갈 것이 두려웠던 커플이 영원한 사랑을 위해 임플랜트로 자신들의 감정을 고정한다. 결과적으로 서로의 사랑이 식어갈 것에 대한 불안을 영구히 뇌에 새기게 된다는 희극입니다...

한나 렌 -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 중


영원한 사랑은 약속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너와 내 마음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돌아선 연인에게 예전에 나눴던 사랑의 말들을 다시 외쳐도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다. 그때 했던 말들은 다 거짓말이니, 흔한 노래가사처럼. 그때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단지 그때와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 아닐 뿐이다.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를 자주 듣던 날들이 있었다. 처음엔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나중에는 화가 나서 따지고 싶었다. 왜 이런 가사를 썼냐고. 원래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을 들을 때 더 화가 나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왜 그 노래를 계속 들었는지, 맞는 말에 계속 두들겨 맞으면서, 기억을 곱씹으면서 사랑의 속성을 배웠다.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운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다음 번에는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하지는 말아야지. 사랑과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실패를 통해 조금씩 배우고 발전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사랑을 마스터할 수는 없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는데, 사랑에 있어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모르고 상대도 모른다. 같이 걸어가는 길은 아름다운 꽃이 만개한 지뢰밭 같은데, 어디를 밟으면 안 되는지는 절대 미리 알 수가 없다. 어떤 날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다가도, 전쟁 같은 어떤 날은 지나온 길이 마치 신기루였던 것처럼 느껴진다. 날 사랑하지 않는 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위태롭다.


엄마가 졸혼을 하자고 했다고 아빠가 내게 말했다. 나는 농담이었겠거니 하고 말을 받았지만, 아빠는 무척이나 섭섭해 보였다. 놀라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답하길 며칠 전에 농담으로 그런 얘기를 했다가 아빠가 한참을 삐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서운함이 풀리지 않아 나한테까지 넋두리를 한 거였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얘기를 들으면 겉으로는 웃어넘길테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섭섭해서 한참 마음에 담아둘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든다고 그런 농담을 다 웃어넘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사랑은 자연히 늙은 개처럼 편안한 것이 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게 사랑이란, 언제 날아가 버릴지 모르는, 아름답게 지저귀는 작은 새 같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불안으로부터 영원히 도망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불안한 마음이 너무 커지면 상대를 괴롭게 한다. 새가 날아갈까 두려워서 계속 새장에 잡아두려 한다. 그 마음이 결국 새를 달아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온전히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사랑의 본질적인 위태로움이 있는 한, '완전히 안정적인 상태'란 건 착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유로운 작은 새의 노래나, 곧 사라져버릴 벚꽃처럼, 사랑은 위태롭기 때문에 아름답다. 어색한 스텝으로 서로의 발을 자꾸 밟아도, 춤을 추는 그 장면이 아름다운 것이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브로콜리 너마저 - <춤>




사족.


안 그래도 사랑이란 게 이렇게 어려운데, 집이니 육아니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까지 겹쳐져 자발적 솔로라거나, 비혼주의자 선언이라거나 하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된다. 아마 이런 현상은 심화된 양성간의 갈등이나, 연애와 결혼을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문화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맥락이나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한 걸음 물러나서 본다면,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삶의 아름다운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 굳이 '선언'할 만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것은 이 사회고 세상인데, 사람들이 각자의 사랑을 포기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이 포기한 것이 그저 결혼이나 특정한 방식의 연애와 같은 사랑의 '형식'이길, 사랑 그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그래서 더더욱 사랑의 재평가가 절실하다. 사랑은 당연한 것이 아닌, 고통을 견디고 얻어내는 아름다운 무언가. 어떻게든 끝까지 손을 붙잡고 가시덤불을 헤쳐나갈 가치가 있는 무언가. 이 세상의 현명한 사람이라면 사랑을 일찌감찌 포기하기보다는 아픔을 견디고 사랑을 지켜내는 법을 아는, 그리고 거기서 아름다움을 찾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Just because it won't come easily,
Doesn't mean we shouldn't try.

Bruno Major - <Eas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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