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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eon May 30. 2022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논쟁의 방식


지구상 척추동물의 생물다양성을 평가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는 Living Planet Index (LPI) 이다.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을 기점으로 LPI는 무려 68%나 감소했고, 여러 매체들이 '우리는 1970년 이래로 지구 생물의 68%를 잃었다'고 보도했다.


2020년 11월, 세계적인 학술지인 『Nature』에 논문 한 편이 올라왔다.


「Clustered versus catastrophic global vertebrate decline」


Brian Leung 등이 발표한, 조금 난해한 제목의 이 논문은 LPI의 감소에 대한 이러한 직관적인 해석이 부적절함을 보인다. LPI의 단순한 수치에서 읽혀지는 것은 재앙적이고 전방위적인 생물다양성의 감소 (catastrophic global decline) 이지만, 데이터를 뜯어보면 실제로 일어난 일은 특정 종들의 극적인 감소 (clustered decline) 라는 것이다. 이는 LPI가 기하평균으로 계산되기 때문인데, 간단한 예로 생물종 A와 B 각각 100마리씩으로 구성된 생태계를 생각해보자. a와 b의 기하평균은 a*b의 제곱근이기 때문에 이 초기상태의 LPI는 루트(100*100) = 100이다. 이제 A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B는 증가하여 A의 개체수가 10마리, B는 190마리가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이 상태의 LPI는 루트(10*190) = 44가 된다. 즉 생태계의 총 개체수는 변하지 않았지만 LPI는 무려 56%가 감소한 것이다.


실제 LPI는 훨씬 다양한 종들의 데이터를 통해 계산되고, 기하평균의 특성상 일부 종들의 극적인 감소에 의해 전체 지수가 크게 감소할 수 있다. Leung 등에 의하면, LPI에서 추적하는 척추동물 개체군 중 극적인 감소를 나타낸 1%, 극적인 증가를 나타낸 0.4%를 제외한 98.6%의 개체군들은 유의미한 증감의 경향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들은 이와 더불어 LPI에 대한 추가적인 여러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생물다양성에 닥친 위기의 심각성은 여러 지역과 생물종마다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지구 전체의 생물다양성이 68%나 손실되었다는, 단순하면서도 절망적인 수치를 계속하여 내보내기보다 어떤 지역과 생물종에 더 큰 관심이 필요하고, 어떤 곳에서는 인간의 보전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며 이 논문이 마무리된다.


Leung 등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LPI의 계산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A 10마리와 B 190마리가 존재하는 생태계보다는 A 100마리와 B 100마리가 존재하는 생태계가 더 높은 생물다양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고, 그래서 LPI는 (예시의 두 생태계가 똑같다고 평가하는) 산술평균이 아닌 기하평균을 통해 계산된다. 다만 이를 통해 계산되는 LPI의 몇 퍼센트 감소라는 수치는 그 자체가 어떤 실질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언론 보도들이 암시하는 것처럼 실제로 1970년 이후 지구상 척추동물의 총 개체수가 68% 감소한 것이 아니며, 68%의 종이 멸종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실제로 68%만큼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LPI는 상징적인 '요약 지표'일 뿐이다. 사실 고도로 복잡한 지구의 생물다양성을 하나의 수치로 정확하게 나타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Leung 등은 논문의 말미에서 생산적인 보전 활동을 위해서는 과학자들과 언론이 모두 이 복잡한 현실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해야 하고, 단순한 요약 지표로만 상황을 설명하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적은 학계로부터 다양한 반향을 불러일으켜, 2022년 1월 『Nature』의 'Matters Arising' 란에 이와 관련한 네 건의 투고와 각각에 대한 답변이 게재되기에 이른다. 이 중 세 편의 투고는 원 논문에 대한 비판이며, 그 중 가장 자극적인 제목은 다음과 같다.


「Do not downplay biodiversity loss」

여기서 제기된 Michel Loreau 등의 비판은 상당히 강하고 과격하다.

"다른 과학자들이 생물다양성 위기를 과장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Leung 등에게 있다"

"생물다양성의 손실을 축소(혹은 경시)하지 말라"

"희망은 생물다양성 손실을 축소하는 데 있지 않으며... 현재 위기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한 후에야 찾아올 것이다"


Leung 등도 이에 대한 강경한 반박을 내어놓는다.


"모든 연구가 기존의 연구에 의해 지지되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된다면, 과학은 계속하여 편향될 것이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일부 개체군들 외에도, 나머지 개체군들의 15%와 지구 생태계의 1/5이 심각한 감소 추세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경보를 울리는 일이지, '생물다양성 손실을 축소'하는 일이 아니다"


이들의 투고와 답변을 자세히 읽어보면 Loreau 등은 원 논문의 논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하였으며,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 식의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에 비하면, 다른 두 편의 비판은 조금 더 차분하고 과학적이다.


「Shifting baselines and biodiversity success stories」에서 Mehrabi 등은 생물다양성의 많은 부분이 1970년 이전에 손실되었음을 지적하며, 원 논문이 주장한 대로 (1970년을 기점으로 삼는) LPI에 따르면 98%의 개체군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생물다양성 보전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한다. 예를 들면, 현재 인도네시아의 우중 쿨론 국립공원에만 서식하는 자바코뿔소는 1970년에 이미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LPI만을 분석해서는 국립공원 내 자바코뿔소의 수가 소폭 증가했기 때문에 오히려 생물다양성이 잘 보전되고 있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바코뿔소(Rhinoceros sondaicus)는 현재 지구상에 유일하게 우중 쿨론 국립공원에만 70여 개체가 살고 있다.


한편, 또다른 투고인 「Emphasizing declining populations in the Living Planet Report」에서 Murali 등은 원 논문이 극적으로 감소한 개체군과 증가한 개체군을 대칭적으로 배제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분석 방법론에 따라 분석의 결과가 변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LPI의 기반이 되는 자료들이 대부분 보전 구역 내에서 수집된 데이터들이기 때문에 실제 야생의 개체군들이 과소대표되며, 보전이 성공적인 것처럼 편향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중요한 비판을 제기한다.


Leung 등은 이 두 편의 비판을 적절히 반박하면서도 동시에 주요한 지적들을 수용한다.

"우리는 Mehrabi 등이 제기한, 우리가 '위험에 처한 1%의 개체군을 제외하면, 생물다양성은 잘 보존되고 있다'는 오해를 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강하게 동의한다"

"Murali 등이 제기한, LPI가 비교적 덜 위협받는 종들에 편향되어 있다는 지적은 훌륭하며, 우리는 이를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기 위한 추가적인 분석을 지지한다"


앞의 자극적이고 날선 비판과 반박에 비하면, 이러한 논쟁은 훨씬 지루하고 지난해 보인다. 허나 무엇이 더 생산적인가 묻는다면 명백히 후자이다. Leung 등의 연구는 LPI로부터도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https://ourworldindata.org/living-planet-index-decline) 사람들에게 LPI의 이해를 돕는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많은 경우 전자에 더 가까운 듯 하다. Loreau 등의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다시 들여다보면, 이들은 원 논문의 저자들을 생물다양성에 닥친 위기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곳곳에서 마주한다. 훌륭한 가치들을 수호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특정한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을 자신이 옹호하는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단지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거나 과장된 수치를 바로잡으려는 이들을 악마화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이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의견, 그리고 가치 이 세 가지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이다. 이러한 오류에 빠지면 자신의 의견 중 일부에 대한 반박을 자신에 대한 부정이자 동시에 가치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여 상대를 악마로 여기고 공격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가치를 지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선의 해결책을 위해서는 문제의 정확한 정의와 다양한 관점의 대립이 필요하다. 사실 현대 과학은 여러 학문들 중 그러한 일을 가장 잘 해왔고, 그 전통에 힘입어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Mehrabi 등, 그리고 Murali 등이 원 논문의 저자들과 주고받은 논쟁은 문제의 정확한 정의를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LPI가 실제 생물다양성을 얼마나 대변할 수 있고, 어떤 부분을 놓치고 있는지를 지적함으로써 원 논문의 LPI에 대한 해석의 한계를 규정하였다. 결국 이와 같은 과학적 연구와 이어지는 토론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생물다양성 지수가 68% 감소하였다고 외치는 지점에서, 어떤 지역과 분류군의 생물들이 특히 더 위험에 처해 있고, 우리의 데이터가 어떻게 편향되어 있는지를 인지하는 지점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지구의 생태계에 닥친 위기를 부정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사실관계와 별개로, 문제를 어느정도 과장하고 자극적으로 포장해야 대중과 정치권의 관심을 끌고 실질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전략적 행동과 선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이런 재미없는 글을 끝까지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으며, 압박이 가해지지 않을 때 환경 문제, 혹은 다양한 소수의 문제들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정부와 정치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Loreau 등이 '생물다양성 위기를 축소하지 말라'고 비판한 것도, 사람들이 Leung 등의 결과를 '생각보다 생물다양성 위기가 심각하지 않다'고 받아들이고, 이러한 인식이 결국 환경 보전을 저해하리라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사소한 오류'를 은폐하고 위기를 과장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Loreau가 Leung에게 했듯, 좀 더 신중한 입장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목표와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을 공격하고 적대시하는 것도 과연 전략적으로 유익한 행동일지 의문이 든다.


또한 더 중요한 사실은, 문제 자체를 잘못 정의하고 우리의 현 위치를 잘못 규정하면 잘못된 해결책을 내놓게 된다는 점이다. 환경 보전의 관점에서 하나의 예시를 소개하자면, 마이클 셸런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 따르면 콩고에는 근대적 에너지 시스템이 보급되지 않아 취사용 연료의 90%가 나무와 숯으로 충당된다고 한다. 나무는 에너지 밀도가 낮아 화석 연료보다 훨씬 비효율적인 연료이며, 그렇다고 콩고에 다른 대체 에너지가 보급되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결국 이로 인해 숲에서 막대한 산발적 벌목이 이루어지고 야생동물이 위협받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역설적이게도 석유 업체와 협력하여 콩고에 매장되어있는 석유를 채굴하는 일이다. 그러나 화석 연료를 파내는 일은 무엇이든 막으려는 환경 단체들의 반발로 인해 콩고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콩고인들에게 혜택을 가져다 줄 석유 채굴 사업은 한없이 표류하고 있다.


인간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편을 나누고 상대를 폄하하거나 악마화하는 일을 그만두었으면 한다. 보편적 가치 - 자유, 평등, 인권, 환경 등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우리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대전제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 대신 우리가 과학적 논의의 전통을 다양한 문제의 해결에 적용했으면 한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먼저 정확히 정의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가능한 대안들을 모두 제시해야 한다. 그 후 어떤 대안을 선택할지의 단계에서 본격적인 대립과 민주적 의사결정이 필요할 것이며, 각 단계의 논쟁에서 우리가 어떤 단계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명확히 한다면 훨신 더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할 것이다. <Nature> 지면에서 벌어진 LPI의 해석에 대한 논쟁은 문제의 정의에 대한 토론의 좋은 예와 나쁜 예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Loreau 등과 같이 상대를 문제를 축소하려는 방해자로 생각해서는 진전이 있을 수 없다. 반면 Mehrabi, Murali 등은 원 논문의 저자와 서로의 합리적 의견을 인정하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들은 LPI를 둘러싼 문제의 정의에 있어 실질적인 진보를 이뤄냈으며, 이들의 논의는 앞으로의 보전 계획 수립에 주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Leung 등은 Murali 등의 투고에 대한 답변을 아래와 같이 마무리한다.


"우리 논문의 목표는 Living Planet Report와 같은 노력에 훼방을 놓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LPI의 경향을 해석하는 데 추가적인 의미(뉘앙스)를 부여하는 것이다. 더하여, 우리는 우리의 분석이 새로이 관심을 가져야 할 척추동물군들을 밝혀냈다는 사실 역시 다시 강조하고 싶다... LPI 자료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Murali 등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수 있다."




참고문헌 :

Leung, Brian, et al. "Clustered versus catastrophic global vertebrate declines." Nature 588.7837 (2020): 267-271.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0-2920-6

링크를 통해 들어가면 본 논문에 달린 4건의 Matters Arising 투고를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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