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vs. 얼음공장
6월에 써둔 글을 발행하는 걸 깜빡했다. 올 여름은 생각보다 덥지가 않아서 걱정인데, 더우면 얼음이 잘 팔려서 좋고, 안 더우면 내가 편해서 좋다고 생각해야겠다. 부채 장수와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지치는 더위와 길어진 여름에도 기뻐할 이유가 생겼는데, 아빠가 얼음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얼음 일은 극단적으로 날씨와 계절을 타는지라 이번 6월처럼 갑자기 날씨가 더워지는 때면 일손이 급히 필요한 때가 생기고, 비실비실한 나라도 가끔 아빠의 SOS에 불려나가 힘을 써야 할 때가 있다.
며칠 전에는 냉동 탑차를 끌고 강원도에 얼음 배달을 갔는데, 배달량이 많아서 아빠가 나를 보조로 데려갔다. 얼음을 가득 싣고 구불구불한 화천 산골짝 길을 둘러둘러 가는 트럭은 조수석에 앉아만 있어도 느낌이 다르다. 엑셀을 힘껏 밟아도 차가 앞으로 안 나가고, 커브를 돌 때면 쓰러질까 위태위태한 그 느낌에도 익숙해질 무렵 읍내의 어떤 마트에 도착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얼음이 든 박스들을 마트의 냉동 창고에 집어넣는 일이었다.
여기서 질문 하나. 마트에 도착한 물건을 창고에 집어넣는 것은 마트 직원의 일일까, 물건을 가져온 배송기사의 일일까? 단순히 마트 내부의 일이니 마트 직원이 처리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일상 속의 사소한 권력관계를 한번 생각해보자. 돈을 내고 물건을 사 주는 쪽이 마트고, 따라서 여기서 마트는 '손님'인 셈이다. 만약 이런 일로 실랑이가 붙어 마트에서 물건을 사 주지 않기로 한다면? 배송기사는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러니 기사님들이 보통 물건을 내려 창고에 쌓아주신다고 한다.
처음 찾아간 그 마트의 직원은 자신의 위치를 십분 활용해,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내리며 물건을 창고에 집어넣도록 했다. 심지어 일을 왜 그렇게 답답하게 하냐며 화를 내기까지 했다. 자신은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그나마 아빠는 기사가 아닌 사장이었기에 마트 안에 물건을 진열해 달라는 요구는 거절할 수 있었지만, 아주 기분나쁜 경험이었다. 이것이 갑질이구나. 지위가 높고 강한 힘을 가진 사람만 갑질을 하는 게 아니었다. 이런 사소하고 일시적인 권력관계에서도 갑질은 일어날 수 있었다.
아빠는 다음 목적지로 향하면서, 만약 우리를 맞은 사람이 직원이 아닌 마트 주인이라면 그렇게 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직원이 저 정도인데 주인은 오히려 더하지 않을까 했지만, 다음으로 도착한 동네에서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화천읍의 그 작은 마트는 사실 우리를 꽤나 번거롭게 했다. 물건을 2층으로 올려야 했는데, 이게 작동하나 싶은 허술한 완강기에는 얼음을 많이 실을 수 없어서 서너 번에 나눠서 일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주인 아저씨가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고 물건 옮기는 일을 같이 도와주어서, 별로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일이 끝나고는 시원한 음료수를 한 병씩 건네주셨다(아빠는 이것까지 미리 예언했다!).
아빠는 주인이 되는 사람과 직원이 되는 사람의 차이를 이야기했다. 남들에게 저런 식으로 대하면서 사니까 그 나이에도 마트 알바나 하면서 산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지, 사람이 자리를 찾아가는 것인지 좀 헷갈렸다. 어떤 면에서 직원은 사장보다 마음 편한 자리다. 어떻게든 하루를 넘기면 돈을 벌고, 주어진 일만 처리하면 된다. 내 일도 귀찮고 바쁜데, 굳이 떠넘길 수 있는 일을 나서서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장의 일은 더욱 복잡하다. 거래하는 사람들과 나쁜 관계를 형성해서 좋을 게 없고, 관계가 틀어져 얼음 공급이 끊어지면 마트 사장 역시 난처하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사실 간단한 일이다. 누구의 일인지 애매할 때는, 같이 도와가며 하면 되는 것 아닐까. 누군가가 낑낑대며 짐을 옮기고 있다면, 가서 좀 도와주는 데 무슨 권력관계나 지위가 필요할까. 그런 마음가짐의 차이가 각자의 삶의 궤적에 차이를 만들 것이다. '주인의식'이란 말이 꼰대들의 단어로 격하된 요즘이지만, 주인이 아닌데 무슨 주인의식을 가지냐는 비아냥은 어쩌면 너무 얕은 생각이 아닌가 돌아보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