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에 대한 글을 한 매체에 기고했다.
글을 쓰다 보니, ’우리 회사는 어쩌다 이런 조직문화를 갖게 되었지?’,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조직문화를 만들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회사에서 HRD와 조직문화를 담당하면서 업무에 회의감이 든 적이 있었다. 각종 캠페인과 행사를 위해 자르고 붙이고 풍선 불고.. 그때는 '조직문화 담당자 = 이벤트 행사 기획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일하기 싫은 회사가 되고 있다.”고 셀프디스하며, 내년에는 가장 안 하고 싶은 일 1순위로 조직문화 업무를 꼽았었다.
이후 경험한 회사들, 그리고 주변에서 바라봤던 회사들 대부분 조직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조직문화를 잘 만들고 운영하기 위한 고민들을 저마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이벤트하는 조직문화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트라우마(?)를 씻어내려고 노력했다.
스타트업, 특히 얼리 스테이지에 있는 회사로 오면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셋팅하며 잡아가야 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조직문화도 당연 중요한 아젠다이다.
링크드인에서 발간한 2022 글로벌 인재 트렌드에서도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또한 대기업/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입사/퇴사를 고민하는 요소 중 조직문화가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조직문화를 주제로 한 연구와 도서들도 꽤 많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조직문화는 어떻게 하면 잘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조직문화 ≠ 이벤트'라는 것이다.
이벤트는 일회성이고 순간적인 붐업은 가능하겠지만 이벤트 몇 번 했다고 그것이 곧 조직문화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에드거 샤인은 조직문화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조직문화는 한 집단이 외부환경에 적응하고 내부를 통합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집단이 학습하여 공유된 기본 가정(shared basic assumptions)으로 정의될 수 있다."
김성준, <조직문화 통찰> 중에서
조직문화는 결국 회사가 사업을 영위하면서 구성원들에게 학습되어 공유된 기본 가정이다. 따라서 조직문화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실제 일을 하는 과정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작동하는 조직문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조직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CEO이다. CEO의 마인드와 가치관, 스타일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은 달라지게 된다.
조직문화를 설계함에 있어 가장 먼저 CEO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보통 회사에는 미션과 비전이 설정되어 있을 것이다. 미션/비전과 연계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펼쳐나가고 싶은지, 어떤 사람들과 어떤 분위기로 회사를 만들어가고 싶은지 등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
회사는 일을 하려고 모인 곳이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은 대부분 일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만들고 싶은 문화의 모습을 생각하기 전에, 실제 우리 회사에서는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파악해 봐야 한다.
우리 조직에서는 구성원들 간의 대화는 주로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나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새로운 아이디어나 아젠다는 주로 누가 어떤 프로세스로 제기하는지, 새로운 의견이 나왔을 때 어떤 반응들을 보이는지 등에 대해 관찰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파악해본다. 앞으로 만들어갈 조직문화는 모두 구성원들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직접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실제 일하는 현장과 동떨어진 조직문화는 만들수도, 제대로 작동할 수도 없다.
CEO의 생각, 실제 구성원들이 일하는 방식을 파악했다면 우리 회사 조직문화의 방향성을 정하는 단계이다. 이제부터는 현실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지켜야 하는) 것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만든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비즈니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회사마다 산업군이나 비즈니스의 속성에 따라 효과적인 방법은 달라질 것이다. 어떤 문화나 일하는 방식이 우리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우리 조직에 맞는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 문화의 대략 60%는 창업자, 나머지 40%는 초기 멤버로 결정된다.”
신수정, <일의 격> 중에서
지향점이 정해졌으면, 이제 그에 맞는 실행을 하는 단계이다. 조직문화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렇게 일하는 것이다. 일관성이 핵심이다. CEO와 구성원의 실제 생각과 모습들을 바탕으로 우리 회사에 맞는 조직문화 방향성을 잘 정했다면, 일관된 운영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직문화의 실행은 채용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문화에 잘 맞는 구성원을 채용해야 한다. 문화는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을 통해 계속 학습되면서 형성되고 굳어지기 때문이다. 경력직을 주로 채용하다 보면, 문화 적합성과 직무 전문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컬처핏 면접 등을 통해 우리 조직문화에 잘 맞는 사람, 또는 우리가 지향하는 문화에 동의하며 같은 방향성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것부터가 실행의 시작이다.
조직문화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 같은 일종의 인공물(Artifact)은 가장 마지막으로 고민해야 하는 요소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Why’이다. 어떤 제도나 프로그램을 도입해도 그것이 어떤 취지이며, 우리가 일을 더 잘하게 하는 것과 그래서 비즈니스 성과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반드시 알려주어야 한다. 앞서 에드거 샤인은 조직문화가 ‘공유된 기본 가정'이라고 했다. 우리 회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제도와 프로그램에는 어떤 생각들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지가 함께 공유되고 인식되어야 실제 업무 현장에서 조직문화가 작동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조직문화에 정답은 없다.
회사마다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가정, 추구하는 가치, 비즈니스의 종류, 방향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아 보이는 남의 것을 보고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보는 남의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실험들을 거쳐 만들어진 인공물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는 우리 구성원, 우리 사업, 우리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과 연관되어야 한다.
그래야 실제로 작동하는 조직문화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