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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너구리 Sep 12. 2023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이장

3. 길명이 소문을 전해 주다

이 글에 등장하는 장소와 인물은 허구이며, 실제가 아닙니다.


새벽 4시 즈음이다. 이상용 씨는 속이 쓰려서 잠을 깼다. 밖은 아직도 캄캄한데 속을 닥닥닥 조가비로 긁는 듯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깰 수 밖에 없었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싶은데 일어나기가 귀찮다. 좀더 참아 보기로 한다. 그러나 조가비는 지속적으로 속을 긁고, 구토가 나올 듯이 울렁거리며, 갈증은 점점 더 심해져서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야 만 이상용 씨는 비틀비틀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서 주전자 채로 기울여 물을 가물논에 물대듯 벌컥벌컥 마셨다.

어제 저녁에는 길명이와 술을 한 잔 마셨는데 상당히 기분나쁜 소리를 들었다. 동네 주민들 중 몇 놈들이 작당해서 새로운 이장을 뽑으려고 한다는 이야기였다. 길명이가 어디서 그 소식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누가 들을까봐 살짝 이야기해 준 걸로 봐서 이건 사실이다. 길명이는 충청도 부여에서 함께 이사 온 먼 친척이다. 이상용 씨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동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세세하게 물어다 주는 실력도 좋은 믿을 만한 사람이다. 물론 길명이에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순전한 바람둥이다. 나이 78세가 되었는데도 그 바람끼는 절대 줄어들 지가 않았다. 어찌 생각하면 참, 대단한 실력이다. 길명이는 동네에서 홀로 된 여자들을 후려치는 능력이 뛰어나다. 몇 년 전 길명이가 상처하고 혼자 되었을 적에는 동네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길명이 부부가 금실이 어찌나 좋은지 하루가 멀다하고 밤마다 관계를 한다는 소문이 동네에 파다했다. 물론 이 소문은 길명이 부인이 마을회관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퍼트린 이야기다. 저녁만 되면 길명이가 잠자리 하자고 팬티만 입고 달라든다는 내용의 야시시한 내용이었는데 이상용 씨는 이 이야기를 마을회관에 다녀온 김은수 씨로 부터 들었다. 그 때는 이 말을 별로 시답지 않게 생각했다.

'키도 작고, 소심해서 자기 주장도 못하며, 말도 더듬는 못생긴 길명이가 밤일을 그리 잘 한다고?'

"여편네들이 할 일이 없으니까 쓸데없는 헛소문만 퍼트리고 다니는 구만.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고, 밥이나 차려." 하며 은근한 눈길을 보내는 김은수 씨를 모른 채 했다.

그런데 길명이 부인이 폐암에 걸려서 큰 병원을 몇 번이나 오락가락하다가 초등학교 자리에 세운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문이 들리기가 무섭게 죽어 버렸다. 이미 발견했을 때는 말기여서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하니 사람일은 참 모를 일이다. 엊그저께까지 밭에서 콩 뜯어가며 콩밥 해서 먹으라고 한 줌씩 건네주던 선한 사람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빨리 데려 갔냐며 김은수 씨는 서럽게 울었다.

"갈 사람은 가는 거지, 뭘 그리 슬피 울어, 제 어매여, 아배여, 누가 보믄 지 남편 초상난 줄 알겄네"

이상용 씨는 김은수 씨의 감정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이상용 씨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은 그 다음부터다. 부부관계가 그렇게 좋은 박길명 씨의 얼굴이 갈수록 펴면서 점점 더 젊어지는 거다. 이상한 샘물을 먹고 젊어졌다는 옛날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으나 부인이 죽고 점점 더 젊어진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이상용 씨는 그 부분이 의아했다.

"길명이가 자꾸 젊어지는 이유가 뭔지 안다요?"

" 뭔소리여 그것이"

"옆 집 세권이 각시가 밤마다 그 집으로 찾어간다드만"

"어쩌서 그런당가?"

"혼자 살기 힘들다고, 반찬 해 먹기 어렵다고, 반찬 한 가지씩 두 가지씩 날라다 주다가 그리 됐다는디?"

"아니, 반찬을 갖다 주면 갖다 줬지, 밤엔 왜 간댜?

"그걸 몰라서 물어? 그 냥반 거시기가 거시기 한 것을 동네 여자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있간디?"

" 하이고, 남사스럽게, 부끄런 줄도 모르고"

" 나이 80 넘은 노인이 부끄러울 건 또 뭐여. 혼자 자는 거보담 둘이 자는 게 낫지"

"이~~ 좋은 시상여, 예전 같으믄 조리돌림 당하고, 동네서 쫒겨났을터인디"

동네 여편네들의 숙덕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명이의 안방에는 밤마다 찾아오는 과부들이 날마다 달라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번호표를 타야된다는 말도 돌았다.

이상용 씨는 길명이의 재주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도 할 겸 막걸리 한 병을 사 들고 털레털레 길명이네 집을 찾았다.

그런데 길명이에게 들은 것은 이상용 씨가 궁금해하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이었다. 동네놈들이 이장을 바꿔보려고 작당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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