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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Jul 28. 2021

제발 우울증 환자에게 "힘내"라고 하지마시길..

나도 살고 싶다고!

*프롤로그

그동안 우연한 기회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

 다양한 장르의 글을 통해  독자분들께 많은 정보와, 

저만의  특유의 B개그감으 사회생활에 지친 분들께 즐거움과 유익한 정보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제 건겅상태를 더 이상은 속일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소 경직된 글이라 하더라도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상황과 병이 우리 모두 앞으로 걸리거나 당할수 있는 일이기에 최대한 객관성을 가지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글을 다시 쓰는데까지  9개월의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병으로 인해 난독증까지  생겨 예전처럼 일필휘지하진 못하지만 열심히 치료해 앞으로 더 재밌고 유익한 글을 분야별로 올리는 티처러니가 되겠습니다.



슬픈 크리스마스


2013년 겨울.

1학년  9반 담임이었던 내게 교사로서는 결코 겪어서는 않될 일을 겪어야만했다.


전혀 메리(merry)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이른 새벽.

즐거운 캐롤송 대신 계속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며 전화를 받았다.


흐느끼는 한 여성분의 목소리와 함께 내게 비보 날라왔다.


우리반  수가 (고인에 대한  명을 사용함을 양해부탁드립니다.)  어제 저녁 고층  아파트 자택에서 창문을 열고 부모님이 보는 가운데  뛰어 내려 자살했다는 것이다.


잠결에 멍했던 정신 상태가  꿈인지 현실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엄청난 충격과 혼란이 내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 것 같았다.


인수의 자살


충격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지만  일단 흐느끼고  있는   어머님을   위로해드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지내는 성탄절 바로 그 날.  나와 우리반 아이들 모두는  수의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나만 장례식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학교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한 후 곧바로 장례식으로 달려갔다.


사람이 죽었는데 장례식에 먼저 달려가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지  학교에서 비상 회의라니..슬픔과 분노심에 학교에 반발하고 싶었지만 별수 없이 나도 "거대 조직체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 이 부분에 대해선 다음에 자세히 언급하겠다. 생각만해도 학교의 대처에  지금도 분노가  치민다!)


장례식장에서 본 인수의 영정 사진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인수의 영정 사진은 학교 명함 사진이었기에 교복을 입고 있는 인수의 모습은 며칠 뒤면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나올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인수는 며칠 뒤 한줌의 재가 되어 하늘나라로 떠나  이제는 영원히 만날수 없게 되었다.


인수 어머니는 인수의 시신이 화장되는 동안에도 내게   인수가 하늘 나라로 잘 가고 있다고 그동안 감사하다는 말씀의  문자를  여러차례 보내 주셨다. 

 그 말에 난 마음이 더 미어졌다.


 날 난 학교 수업을 어떻게 냈는지 기억도 안난다.

학교에서는 그 일을 최대한 소문 나지 않도록 조치를 했기에 인수의 죽음은 학교에서 허무히 잊혀져갔다.


.....


난 아직도 수의 학급 명함  사진을 가지고 있다.

지금  살아있었더라면 그 아이도 우리반이었던  학생들처럼 건장한 20대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


인수 죽기전 날


그 아이가 죽기 전날.

우연히 같은 교내 식당에서 인수와  석식을 함께 먹었다. 나와 웃으며 저녁을 먹었고, 그동안 내게 자주 부정적인 행동을 보여서 때론 나를 지치고 힘들게 했던  수는 그날 따라 유난히 밝게  웃으며 내년엔 친구들도 적극적으로 사귀고 야간자율학습도 신청하며, 공부도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수를 기특하다며 칭찬했고 인수와 즐겁게, 그리고  맛있게 석식을  먹었다.


그리고...인수와  나와 석식을 먹은지 24시간도 되지 않은채 , 그 착한 아이는 다음날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하늘의 별이 되었다.

꿈속에서 종종 인수는 날 보러 온다..,.



남은자들의 슬픔


나와  우리반 아이들은 모두들, 각자 혹시 본인들 인수에게  무언가 실수를 해서 그 아이가 극단적 선택을 한게 아닌가 생각을 했고,    동안 후회와 미련, 그리고 살아  남은 자들의 죄책감 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학급에서 왕따나 특별한 사건은 전혀 없었지만 나와 아이들 모두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어야만 했다.)



우울증 환자였던 인수


입학 당시부터 수는 누가봐도 심각한 우울증 환자였다.

매사 자존감이 없었, 부정적이었으며 그 어떤 제안과 도움의  손길도 피했다. 친구들도 사귀려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엔 늘상 머리가 아프다며 엎드려있었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도 않았다.


에너지가 넘쳤던 나는 인수에게 교내 복도를 마주칠때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과자를 인수 손에 몰래 쥐어 주곤했다. 그리고 "힘내"라고 그 아이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그 당시 언제나 힘이 넘쳤던 난 내 에너지가 그 아이에게 전달되길 바랬던것 같다. )


                                               .....


우울증을 매우 심하게 앓던 인수는  집안 사정때문인지  병원  약물치료나 상담치료를 받지 못했다.


담임교사 입장에서 내가 인수 부모님께 인수 상태를 먼저 말씀드려도 부모님은 인수를 정신병자 취급하는것 처럼 받아들이셔서 인수 부모님께서 학교로 먼저 적극적인 치료및 케어에 대한 의사 표현을 하지 않는한

일개 담임으로서   인수  부모님께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학부모님들이 아이의 심리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면 방어적으로 나오거나  담임교사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는 부족한 담임이었다...


그럼에도 인수는 극심한 우울증을 으면서도 학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교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인수가 얼마나 죽을 노력으로 학교에 나왔는지 그때의 난 잘 몰랐다. 그저 인수에게 화이팅을 외치고 공부에 대한 조언과 상담을 해주는 부족하고 미숙한 담임이었다.


이미 최선을 다하다 못해 멘탈이 부셔져 버린 아이에게 힘을 내라고 응원하다니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었지만 난 어리석었다. 응원보다는 너대로 너무 잘하고 있다고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걸 지금은 너무도 후회한다.



나는 지금 인수와 같은 상황이다


지금 나는 인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다. (우울증 최고 단계)

그리고 중등도  공황발작까지 2단 콤보 세트로  작년  12월부터 나는 병원을 제외하곤 내 방에서 거의 나오질 못하고 있다.


 어두운 방에서 베란다에 나가  햇빛을 잠시  쬐는 것에만  꼬박 두 달이 넘게 걸렸다.

음식도 먹지 못했다.

배설도 못했다.

발작은 하루에도 몇번씩 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병원 치료와 상담치료도  하고  있었으나 "외부적 원인"(이유는 다음에 언급하겠다)때문에 상태는 더욱 악화만 되어갔다.


죽고 싶어 죽는게 아니라 발작의 고통이 괴로워 죽고 싶었다.

죽으면 모든 고통을  끝낼 있으니까.




음식은 먹어봐야 맛을  알고, 병은 앓아봐야 그 고통을 안다


내 상황은 학교에서 관리자급의 몇 분외엔  대다수의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학교 사람들은 내가 단순한 병으로 휴직하거나,  심지어  일을 하지 않기 위해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들 말했다.


내가 고민이 없어 행복에 겨워 작은 일에도 힘들어 한다고.


다른이는 내가 월요일과  금요일 위주로 아프다며(나는 전혀 그런적이 없다. 나는  다이어리에 모든 걸 적어두기 때문에 증거도 있다) 힐난했다.


혹자는 내게 정신력이 약하다며 더 정신차리라고 조언아닌 조언을 했다.


그들은 모른다.

나도 몰랐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질적으로 타고 나는 사람들도 간혹 있겠지만 나는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강철 멘탈이었고 강철 체력이었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엔 완벽하지 못하게 보일진 몰라도 모든 일에 노력했고,  스트레스 따위는 운동으로 풀어버렸다.


몰랐다.

나도 한낱 인간이라는 것을.

참는다고, 노력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결과 번아웃이  되다못해 정신병까지 걸려버린 신세가 되어버렸다.  


매일 아침  해가 뜨면 또 다시 고통스러운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러나 오늘 하루도 나는  나의 병과 사투를 벌였다. 내일도 그럴거다.

그러나 앞으로의 내 삶의  결과는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인수처럼 조용히 세상을 뜨지 않을거라는거다  . 인수몫까지 나는 최대한 살아낼거고  "부조리함과 문제점"에 대해 밝혀 낼거다.(문제점이란 추상적인?  말에 대해  쓴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하겠다)  




우울증 환자들은 남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평범한 일들도 죽을 힘을 다해야 겨우 해낼  수 있다.

그러니 제발 이미 최선을 다하다 못해 온 마음이 부서진 사람에게 힘을 내라는 말은  삼가해줬으면 한다.







※추신 :  1.정신과 약은 제때 꼭 복용해야한다. 정말 중요하다! (아니면 발작을하거나  순간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 

          

     2. 그리고 우리 아이가 정신적 문제가 있다면  주변을 의식하거나 체면 따윈 생각하지말고  적극적인  병원치료를 받아야한다.  우리 아이를 살리는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니까.


3. 상담치료는  너무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시간당 비용도 너무 비싸고 생각보다 상담사가 전문상담에 무지한 경우가 많아 실망하거나 더 상처를 받고 병이 악화될수도 있다.  내 경우가 그랬다...


4. 카페인과 술은 절대 마시면 안된다.

정신과 약과 충돌 되어 발작이 심해지거나 구토  및 기절 등 여러 신체 증상이 악화된다. 

나는 원래 술은  안 마시지만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한 유튜버가 커피 한 잔 정도는  괜찮다는 말에  커피를  마셨다가(나는 커피를 너무 좋아한다) , 또 조상님들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왔다.  (조상님들이 그만 좀 인사하러 오라신다 ^^;)

카페인,  술  절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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