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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Apr 02. 2024

3월의 휴가

신학기 적응으로 정신없을 3, 4월이야말로 휴가를 가기에 제일 좋다. 뭐든 남들 다 안 할 때 해야 여유롭게 '가성비 있는' 휴가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도, 한국과 일본의 최고 휴양지 괌도 최저가에 갈 수 있고 그나마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는다. 


겨울 내 얼어붙어 있었던 몸과 마음도 남태평양의 강렬한 태양에 녹는다. 미세먼지로 뻑뻑했던 눈이 맑은 공기와 파랗고 푸른 바다에 정화된다. 다양한 채도를 가진 아름다운 파란 바다가 눈이 부신다. 그 맑은 자연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이 맑고 밝게 빛난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연에서 뛰놀게 키우고 싶어요'라는 말은 어찌 보면 가장 비싼 육아 방식이다. 그나마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면서 자연이 있는 제주에서 한 달 살기,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있는 곳으로의 장기간의 여행이 가장 비싸고 귀하다. 


이 귀한 남태평양 자연을 두고, 어쩔 수 없는 도시 아이들은 호텔 수영장을 떠나고 싶지 않아 했다. 헤엄치는 색색깔의 물고기들이 훤히 보이는 저 맑고 깨끗한 바다와 곱디고운 모래를 두고, 뿌연 호텔 수영장의 미끄럼틀과 놀이시설이 아이들에겐 가장 편안했던 것이다. 모래를 만지는 것 자체는 좋아했지만 모래가 들어간 신발은 참을 수 없어했고, 바다에서 튜브를 타면서 산호에 약간만 긁혀도 무슨 대형사고가 난 것 마냥 호들갑을 떨었다. 


자연이 주는 불편함을 넘어서서, 자연에 동화되어 감탄하게 되기까지는 얼마가 걸릴까? 해변가에서 긴팔 긴바지를 입고 아쿠아슈즈, 햇빛 가리개 모자로 무장한 사람들은 한국인들 뿐이다. 자연을 만나는 태도가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이곳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일주일 정도의 휴가가 잔인하리만큼 아쉽다.  


호텔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던 리티디안 비치는 괌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현지인들도 피크닉을 오는 곳이다. 자연에 던져져서 바지만 입고 수영을 하는 현지인 아이들과 서비스 직종의 노곤함을 자연에서 풀고 있는 어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도 생각해 본다. 사교육보단 자연에서 뛰놀고, 호텔 서비스업이나 식당, 택시운전 등으로 제한된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도 '평범하게' 다 같이 전력질주해야 하는 한국인들보다 마음 편하고 여유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국에 돌아와, 테트리스처럼 맞춰야 하는 아이들 학원스케줄을 짜다가 열여섯에 결혼해 아이가 다섯이라던 내가 묵었던 호텔의 메이드를 생각한다. 그녀의 아이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하교 후엔 바다에 잠시 나갔다가 무엇을 할까 궁금하다. 아직 공부보단 예체능에 맞춰져 있긴 하지만, 내가 사교육을 시키는 의미란 무엇인가? 라이드를 하고, 그 앞에서 기다리고, 항상 조급하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희망이었다. 꾸준히, 전문가의 지도를 받고 노력하면 어느새 음악이, 미적 감각이, 운동신경이 아이들에게 장착될 거라는 엄마의 희망. 어떤 분야던 자신의 한계를 계속해서 넘다 보면, 그 감각이 다른 일을 할 때도 근육처럼 단단하게 받쳐 줄 거라는 희망.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바다에서 자연을 즐겼으면 좋겠는데, 호텔 수영장을 제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짜증이 났던 건, 아이들에 대한 기대가 '자연을 즐길 줄 아는 능력'에까지 확장되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국에 잠시 지내면서 유복하게 지낸 아이들일수록 자연에 대한 감각이 탁월하다는 걸 알고 놀란 적이 있다. 하이킹, 수영, 스키, 산악자전거, 요트, 승마 등등. 자전거도 못 타고 스키와 수영도 배운 적 없던 나는 친구들이 노는데 깍두기처럼 끼어서 대단히 곤란했던 기억이 있다. 나아가 대학교 시험을 치르고 입학을 하기 전 휴식기 같은, 이른바 '갭이어'에는 상류층 자제라면 아프리카로 캠프를 다녀오는 것이 관례일 정도다. 자연을 누리는 것도 배우는 거구나. 어쩌면 가장 비싼 교육. 그것까지 내가 욕심이 났던 거구 나를 깨달으며 인정했다.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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