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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balt Sep 04. 2024

사십 세, 크로스 핏 입문기

한국 나이로 사십에 크로스 핏에 입문한 지 반년이 지났다. 그리고 마흔이 된 지금, 나의 몸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20대보다, 정말로 현재의 몸과 정신 상태가 좋다.


크로스핏에 등록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평소 다니던 수영장에서 어르신들의 텃새에 지치기도 해서 운동뿐만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받을 만한 곳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놀이터에서 운동복을 입은 엄마의 뒤태를 보았는데 너무도 탄탄한 뒷모습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런데 얼굴을 돌리니 아들 친구의 엄마였다.


분명 마른 엄마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못본사가 뒷모습을 못 알아볼 정도의 탄탄한 근육이 장착되어 있었다. 단번에 “아니, 무슨 운동을 하셨어요...?”라고 물었고 대다수가 말함직한 요가, 필라테스, 수영, 등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복싱이요.” 선뜻 따라 하기 힘든 운동이었다. 그런데 그 체육관에서 크로스 핏 수업도 하고 있고 대다수의 회원이 ‘아이 있는 여성 회원’이라는 말에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버틸 뿐

그렇게 크로스 핏 체육관에 상담을 하러 갔다. 일부러 수업이 끝나기 전 즈음 가서 분위기를 봤다. 자신의 한계를 부딪쳐가며 역도를 들고, 버티고, 기합을 넣으며 다시 힘을 내는 여성들의 모습에 그야말로, 한눈에 반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진 과업을 끝내고, 다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찾고 더 힘을 끌어 모으는 여성들의 에너지에 나도 그저 묻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에너지를 방출하는 곳에 있기만 해도 에너지 레벨이 낮은 사람은 그 기운도 덩달아 받아서 좋은 에너지가  나에게도 올 것 같았다.


처음 등록을 하고는 매일매일의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내가 가진 한정적인 에너지를 하루에 잘 분배해서 최대한 다른 곳에 에너지를 ‘낭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내가 일상을 운용하는 방식이었는데, 나이가 들 수록 내가 가진 에너지원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거기에 크로스 핏이라는 강도 높은 운동을 집어넣으니, 다른 활동들에 쓸 에너지가 동이 났다.


아이들을 대하면서도 ‘왜 갑자기 짜증이 나지?’ 싶은 상황들이 많아졌고,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일상에서 써야 할 나의 에너지가 바닥났기 때문이었다.운동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느낌마저 들었다. 운동하고 좀비처럼 있다가 잘 때만을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졸음이 쏟아져 운동하고 와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얼마나 체력이 없었는지를 자각했다.


‘어제의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운동한 후의 피로가 감당이 안돼 오후 스케줄이 있는 날에도 빠지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최대한 아침운동을 습관화했다.


내가 가지 않아도, 내 습관이 나를 밀어붙일 때까지. 그 시간이 되면 운동을 해야 한다고 몸이 기억할 수 있게 그저 꾸준히 했다. 그랬더니 그저 그 시간만 되면 벌써 엉덩이가 들썩였다. 가야 하는 시간이라고 머리가 아닌 몸이 인식하게 만들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운동을 안 하는 날이 더 버티기 힘든 수준까지 도달했다. 몸은 뇌처럼 “쓰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쓰지 않으면 뭐든 퇴화하고, 쪼그라든다. 운동을 하지 않는 날이면 배출되지 않고 쌓인 노폐물들이 몸속에 남아 있는 느낌이 든다. 운동만이 줄 수 있는 신선함을 몸이 자각하기 시작했고 나의 일상을 더 활기차게 꾸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수영은 해 왔지만 크로스핏의 매력은 매일매일 체력적 한계를 절감하며 운동한다는 것이다. 옆 사람의 기합 소리를 들으며, 모두가 함께 자신의 한계와 부딪치는 현장에서는 나도 모르게 나의 한계가 은근슬쩍 넘어간다. 그 한계를 조금씩 밀어내는 경험은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맞닿드릴 수 있는 힘을 준다.


어릴 때부터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것이 자연스럽도록 배웠으면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았을 까, 왜 책상 앞에서 머리만 싸매고 살았을까, 지난 세월을 후회하기보다는 앞으로의 날을 기대하게 될 만큼의 에너지가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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