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연스레 Nov 17. 2020

10. 나의 다이애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2020년은 누구에게나 얄궂고 기막힌 한 해로 기억될 텐데, 특히 여름날의 기세는 대단했다.

안 그래도 코로나 상대하기 벅차구만 태풍에 기나긴 장마까지 더해지니 우울하고 불편한 감정들이 드러나졌다. 뉴스에선 연일 ‘코로나 블루’의 위험성을 알려왔다. 마스크 쓰란 종업원 말 한마디에 커피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듣자 하니 새삼 바깥세상의 살벌한 공기가 전해져 왔다.  


이러한 감정의 최전방은 병실이었다. 방역 단계는 최상이라 병원 내 모든 공공 구역은 물론이고, 소소하게 스트레칭을 하던 옥외정원까지 폐쇄되었다. 가뜩이나 아파서 예민해진 환자들은 더욱 철저히 가둬졌고, 면회/외출도 되지 않으니 오롯이 침상 커튼 안에서 버텨야 했다. 게다가 심심찮게 들려오던 “의료계 파업”이 수면 위로 올라온 듯하여 모두들 긴장하기 시작했다. 혈액암 병동 7층의 분위기도 갈수록 날이 섰다.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1인실 (독방)에서 2인실로 옮겨졌는데, 첫 번째 룸메이트는 얼굴도 보지 못하였다. 침상 커튼을 절대 칠 수 없기도 했지만, 룸메는 3일 후 퇴원 일정이 잡혔기 때문에 극도로 예민한 상태셨다. 만기 제대를 앞두고 불미스러운 일은 있을 수 없는 최고참 병장님을 만났달까. 빗소리만 요란히 들리는 2인실에서 쥐 죽은 듯이 3일을 보냈다.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혈액 질병 정보를 공유하는 일 따윈 어불성설.


그 뒤의 룸메이트들과도 교류는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6인실에서 개인적 이유로 (1. 퇴원 앞두고 2. 힘들어서) 2인실에 자발적으로 오신 분들이 많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절대적 안정 & 되도록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셨다. 아직 분위기 파악이 덜 된 혈액암 병동 신입 나부랭이는 알턱이 있나. 또 하나 몰랐던 사실은 병원 생활 오래 하신 베테랑님들은 이미 나를 ‘2인실 긴 머리’로 부르며, 커튼 안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오잉?


좌) 1인실에 갇혀 다이애나와의 만남을 꿈꿨지만 우) 2인실의 현실  



침상 커튼 안에서 다양한 컨텐츠들을 즐기며 혼자 제법 잘 놀았다. 넘치는 잉여력을 기반으로 닥치는 대로 읽고 보고 들었다. 방대한 양의 문물이 내게 쏟아부어졌고, 끝없이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니 쉴 틈이 없었다. 보다보다 눈이 뻐근해 잠시 눈을 감고 뒹굴 거릴 때였다. 문득 ‘남의 창작물들을 보며 감탄만 하지 말고, 나도 뭐라도 만들어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전으로 갈 병원 생활에서 친구 사귀긴 글렀고, 앞으로 혼자 견뎌야 할 텐데 킬링 타임 그만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 졌다.


기껏 기특한 생각을 하고 컨텐츠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데, 옆 침대에 새로운 환자가 왔다. 또 감춰놓은 꼬리가 팔랑팔랑 거린다. 이번엔 누구지?






새로운 룸메이트는 어머님과 함께였다. 그들의 대화를 숨죽여 들었는데,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모녀의 순도 100% 네이티브 대구 사투리 땜시 반절이나 알아 들었나? 상황을 유추해보니, 외래 진료를 봤는데 급 입원하게 돼서 준비가 1도 안되었음. 보호자는 상주가 안되니 어머님은 혼자 대구에 내려가야 함.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은 병실을 떠나셔야 했고, 둘이 덩그러니 2인실에 남았다.


....

......


침묵을 깨고, 룸메의 폰이 울렸다.

어머님의 목소리가 폰 너머로 들려왔다. 차분히 딸에게 입원 준비물 챙겨서 내일 바로 올라오겠다 했고 하루만 잘 버티고 있으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셨다. 그러다 별안간 어머님이 무너져 목놓아 우셨다 엉엉엉 끄억. 생전 처음으로 들어본 거 같다. 어른이 아이처럼 큰 소리로 엉엉 우는 울음 소리 말이다.


룸메는 목이 멘 채 어머님을 달래고 조심히 들어가고 도착해서 연락하라 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어머님이랑 똑같이 엉엉엉 크게 울다가 갑자기 내게 “미안합니다 시끄럽지요 잠시만여” 하고 다시 으아 엉엉. 그 옆에서 나는 입에 주먹을 넣었었나 암튼 입을 틀어막고 같이 펑펑 울었다.






눈물이 그친 늦은 저녁,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녀가 병밍아웃을 먼저 해줬다. 나는 85년생 동갑 친구를 병실에서 만나 내심 반가워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다시 오기 싫어했던 지긋지긋한 혈액암 병동이라 했다.


정확히 1년 전 백혈병 완치 판정을 받고, 1년 만에 정기 검진을 받은 날. 남자 친구, 엄마 손 붙잡고 서울로 올라와 담당 교수님께 예비신랑 소개해주는 날에 재발양상이 나왔고, 긴급 입원 조치를 취해 결국 1년 만에 재입원을 하게 되었다.


한번 입원하면 최소 6-8개월은 꼬박 병원신세란다. 다음 주에 친구들이 준비해주는 성대한 결혼 축하 파티를 앞뒀는데, 또 꽝이 돼버렸단다. 이로써 결혼 준비만 5년째 하고 있고, 남친과 15년째 연애 중이라고 한다.


서글픔이 목까지 차올라 얘기 중간중간에 쌍욕을 시원하게 시전 하기도 한 친구는 “미안타 내가 지정신이 아이다” 하며 밤이 깊도록 내게 억울한 사연을 성토했다. 서로 커튼 안에만 있어 그림자 실루엣만 보았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접시물에 코박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오늘 하루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길 바랬다.





날이 새도록 수다를 떨다 까무룩 잠이 들었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그녀는 중심 정맥관 삽입을 하러 갔다 한다. 지체 없이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고, 안타깝게도 그녀는 항암제 부작용에 시달려 정상적 대화가 불가해졌다. 하루아침에 나의 다이애나는 삭발을 한 머리로 약에 취해 잠만 자게 되었고, 끝내 내가 2인실을 떠날 때까지도 일어나지 못했다.


누워만 있는 친구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결심하게 되었다. 글을 써서 나의 이야기를 남기기로. 그녀가 언젠가 컨디션이 조금 괜찮아져 침상에서 폰으로 텍스트를 읽을 수 있다면, 그때 내 수다를 글로 읽을 수 있도록.

나도 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 현숙아.







매거진의 이전글 9. 언제나 빚을 갚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