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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스레 Sep 05. 2020

4. 우리 아프지말고 오래보아요.

계속될 인연


Passing care  패씽 케어: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 최고의 돌봄 자세


혈소판이 3천까지 떨어지고, 백혈구 수치가 무너져 ‘절대 안정 단계’로 돌입했다. 면역력 저하로 저균식 식사 (모든 음식이 익혀 나옴)가 나오고, 화장실 외에는 침상에 누워있어야 했다. 배터리 절약 모드로 전환되어 하루에 절반을 까무룩 잠만 잤다. 눈이 떠져도 이내 감아 버리며 도피했다.


커튼 속 세상에 갇혀 잠에 취해 수혈받고 있을 때 옆자리에 새로운 분이 왔다고 들었다.



커튼 좀 쳐도 될까요?



새로 오신 옆자리 그녀는 답답한 건 질색이라며 잠깐 커튼을 쳐도 되냐고 정중히 양해를 구하시곤 박력 넘치게 걷어버렸다. 그러곤 잔기침을 콜록콜록하시는데 (um.. 이 시국에??) 내심 당황스럽긴 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 표정을 읽으셨는지 코로나 19 검사 결과 문제없었고 폐가 안 좋아서 기침이 나오는 거라 안심해도 된다 하셨다. 커튼이 열리고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곰방 언니, 동생 하게 되었다. 오잉?? 마성의 그녀다ㅎㅎ.  


병원에선 이름, 나이, 직업, 사는 곳 소개보다 ‘병밍아웃’을 먼저 한다. “저는 XXX 병에 걸렸고, 언제부터 걸려 현재 병원 생활을 얼마 동안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소개를 한다. 여기선 촌스럽게 속세의 프로필 따위 따지지 않는다. 병 앞에선 만민 평등이랬다ㅎㅎ


언니의 병밍아웃은 이랬다.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큰 병원 가보라 해서 왔고, 입원하여 여러 검사를 했더니 폐&간까지 전이가 돼버린 대장암 4기로 판정을 받았다. 종양이 많이 퍼져 버린 폐는 곧 절제술이 진행될 예정이고, 이 모든 일들이 입원하고 열흘만에 벌어졌다. 여기까지 너무나 담백한 톤으로 간결히 말해줘서 대장암이 10기까지 있는 건가?? 했다. 실제로도 4기가 말기인지 몰랐던 무식자는 혼자 몰래 검색해보다 손 덜덜 떨며 눈물 폭주 ㅠㅠ 나중에 물어봤다. 어째 이리도 의연하게 버티는지. 언니 왈


글쎄 아이 셋 엄마라서??
그리고 고상한 생각할 새가 어딨어!? ㅎㅎ


하긴, 옆에서 보면 언닌 폼 잡고 슬퍼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7살 막내 따님은 매일 수도 없이 영통을 걸어와 엄마를 찾는다. 이유는 다양하고 한결같이 사랑스러웠다ㅎ. 카메라 앞에서 피아노를 띵가띵가 치고, 머리띠 골라달라며 하나하나 바꿔껴보고, 잘 본 시험지만 골라서 보여줘야 하고, 자기 전 엄마의 굿나잇 뽀뽀도 받아야 한다. 한창 물오른 귀여움으로 기세 좋게 엄마 광대를 들어 올리더니 뽀짝 거리며 엄마를 사르르 녹인다. 역시 귀여운 게 최고야!!  반면 위로 두 아드님들은 이미 엄마품 벗어나셔서 친구들이랑 노느라 한창 바쁘단다. 큰 아드님 (연하 남편분)만이 언니 손길을 몹시 필요로 하셨다. 막내딸 애교는 아빠 유전이었어! ㅋㅋ

언니는 보통의 엄마로 바라건대 더도 말고 막내딸 고등학교 졸업식까지만 잘 버티고 싶다 했다. 암요, 갑니다.



참고로, 언니의 대장암은 이렇게 찾아왔다.

(기꺼이 공유해주심)

1) 아이 셋을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 속에 늘상 변비가 있었음.
2) 심한 변비 끝에 종종 혈변을 보기도 함.
3) 몸살 기운이 갑자기 오래가기 시작, 잔기침이 심해짐(입원 직전 증상).
4) 45살까지 살면서 한 번도 대장 내시경을 해본 적 없음. 이래서 구체적 검진이 중요하다.(1편과 일맥상통, 밑줄 쫙)
대장암 치료 잘한다는 병원이라니 믿어봐야지. 언니야 잘 버텨보자!




옆사람과 언택트로 모른척하며 지내기가 어찌 보면 훨씬 편하다. 요즘 정서랄까? 어설픈 관계 형성되서 불편하고 괜히 신경쓰이고, 인사치레 귀찮고 등등 뻔히 잘안다. 그럼에도 마음이 한창 쭈굴거릴 때 비슷한 처지의 언니를 만나 서로의 슬픔을 보듬고 토닥였다. 정서적 유대감은 대체불가니까. 언니가 “빠바가서 커피 한잔 할래?”라고 말걸어 올때마다 꼬리를 마구 흔들흔들ㅋㅋ


거창한 위로보다 같이 얼굴 보고 병원밥 먹고 커피 한잔 마시니 댓츠 오케이였다. 커튼이 잘못했네!! 걷어줘서 고마웠어요 :) 사람이 고팠나 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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