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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Feb 22. 2021

평범하지만 평균은 아닙니다.#13

그때의 나는

찬란했던 학창 시절을 응원해주는 선생님은 상상 속에나 존재하고 그저 직업으로, 월급의 대가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엄마가 학교에 인사라도 오신다고 하면(운동회, 소풍, 졸업식까지) 일절 거부했다. 소중한 우리 엄마가 저런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꼴을 볼 수가 없었으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이다. 하교 후 친구 집 마당에 모여 줄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돌아가며 서로 줄을 잡아줬는데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일기를 써 내려갔다. 아이들을 힐끔거리며 마루에 앉아 연필로 써 내려가던 모습이 기억인지 상상인지 언제나 같은 모습이다.

-      나는 지금 00 이와 줄넘기를 하고 있다. 00 이는 잘난 체를 잘한다. 밉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좋은 척 잘 놀고 있다. 그렇지만 00 이가 싫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친구에게 샘이 났던 모양이다.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이 며칠 지나면 또 친하게 지낼 것이고 이 사건이 없었다면 이 일도 수많은 일상 중 하루였을 것이다. 수시로 바뀌는 기분과 마음은 일기장의 추억 속으로 남았어야 했다. 순간의 기분이 사라질까 빠르게 적어 내렸던 속마음은 선생님의 입을 통해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수치스럽고 창피하고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뒤섞여 끔찍한 기억이 되어버렸다. 친구와 노는 와중에 글로 친구가 싫다고 쓰는 아이라니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혼낼 요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매번 밉상인 친구는 있지 않은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00는 오늘도 밉상이군. 다음엔 00 온다고 하면 안 가야지.’

라고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제까지 내가 왜 혼나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맴도는 교실의 풍경에 갇혀 무기력하게 훌쩍이고 있었으니까. 나의 일기는 사건과 상상을 연결해 쓰는 일기가 주를 이루었다. 뉴스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남녀의 일화를 쓰며 둘이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는 뒷이야기를 한 줄이라도 썼었다. 친구가 밉다고 썼던 그날은 어떤 상상을 했던 것일까? 언젠가는 이 친구를 이기고 말겠다는 상상이었을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그 글을 썼을 수도 있고 아빠 책장에서 읽었던 문체를 흉내 냈을지도 모른다. 이 일로 제출용 일기에 순간의 감정을 남기는 순수한 아이는 사라져 버렸다. 이 사건이 선생님들을 불신하게 만든 이유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상처, 배신, 불신의 기억임에는 틀림없다.


친구를 만나 이 일화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선생님이 너무 했다는 말과 함께 장난스레 한 마디 했다.

“선생님에게 밑 보인 적 있니?”

선생님이 날 미워할 만한 일을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었는데 한편으로는 이쁜 구석이 없는 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조금 더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눈치 없이 해맑고 강하게 보낸 초등학교 생활이 제일 좋았던 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성함을 쭉 나열하다 6학년 담임선생님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담임 선생님 성함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아무런 기억이 없다니. 어쩜… 간혹 혼나던 장면이나 과목 선생님은 기억나지만 담임선생님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도통 나지 않았다.


‘하루에 대한 나의 감상을 어째서 선생님들께 공유해야 하는가. 나의 내밀한 마음을 들여다볼 자격이 과연 그들에게 있는가.’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 중 “일기검사”의 시작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기를 통해 아이의 빛을 보는 선생님이 존재하리라는 희망이나 바람을 놓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이 이야기에는 부러울 만큼 멋진 선생님과의 일화가 있었다.



스승님과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분위기에 있을 나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스승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나에게 선생님이란 한 번도 마음을 움직이는 존재였던 적이 없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순수한 마음으로 온기를 느끼는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꼼지락거릴 숙제가 많은 가정 시간을 참 좋아했다. 수예 같은 숙제는 언제나 열심이었다. 언젠가 교무실에 들른 나에게 가정선생님은 자신의 자수실 통을 수줍게 자랑하신 적이 있다. 선생님의 마음을 모른 체한 건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4월부터 아이들과 재능 나눔 수업을 할 예정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가장 따뜻하고 다정한 말로 격려해 줄 것이다. 그들이 어떤 길을 가던 그늘이 지지 않길 바라며.


꽃이 피었대도 나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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