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심리
아이의 원에서 오미크론 환자가 발생했다. 갑자스럽게 자가격리가 되어 아이와 생활하게 되었는데 감염의 여부도 걱정이었지만 아이와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걱정이 더 컸다.
와중에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아이가 밖에 나가는 것을 매우, 진심으로 싫어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밖에 나가고 싶다며 울기 시작했다.
불과 하루 이틀 전에도
“나가서 한 바퀴 돌까? 아니면 마트에라도 갈까?”
“싫~~ 어. 안나~~ 가.”
나름 음률까지 넣어 뺀돌 거리던 녀석. 덕분에 오동토동 살이 올라 자혜로운 얼굴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꼭 집에 있어야 할 일이 생기자 본인은 답답해서 살 수가 없다며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자가격리 자. 가. 격. 리. 밖에 나가면 안돼서 이렇게 있는 거야.”
“안돼~~~~. 나는 나갈 거야~~”
이런 대화가 몇 번쯤 오갔을까? 현실을 직시할 만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우리 나가려면 코로나 검사하고 나가야 해. 너 얼마나 아팠어. 한번 더 할 수 있겠어?”
“응, 엄마 나는 용기를 낼 거야. 밖에 나갈 수만 있다면 용기를 낼 거라고!”
그렇다 아이는 뒤통수가 뚫릴 만큼 고통스러운 검사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간절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격리 해제 5일 전에 한번 검사를 하고 해제 전 마지막 검사를 해야 해서 두 번이나 남아있었다. 올타쿠나 싶어.
“그럼 우리 15일 날 검사하러 나갈까? 그때 검사하러 밖에 나갈 수 있어.”
아이는 그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두 번째 검사를 하는 날 밖으로 나왔다.
“엄마. 너무 행복해요.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검사를 하러 가는 길이라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였지만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조용히 조근 거리는 녀석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던 첫날과 달리 대기자가 없어 바로 검사를 했다. 아이는 힘들어했지만 용기 있게 검사를 마쳤다. 집에 가는 길에 마트도 식당도 가고 싶다고 했지만 어떤 소원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곧장 들어갔다.
자가격리 중 바깥 경험은 자기 전까지 이어졌고 마치 세상을 처음 경험한 것처럼 또 나가고 싶다고 재잘댔다.
대망의 마지막 검사날, 검사대기 줄에 서 있을 때까지만 해도 바깥공기에 심취해 있었는데 보호자 먼저 검사하라는 말을 듣더니 엄마가 의자에 앉자마자 검사소를 탈출해 주차장 쪽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겨우 잡아다 앉혀놓고 선생님 두 분과 함께 아이를 포박하고 검사기를 코에 넣으려는 순간
“잠깐만요! 한 마디만 할게요!”
다들 ‘그래 바로는 못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들어준다고 했더니
“신비 아파트 시즌 포오~, 어둠의 마법사 오늘 밤 방송됩니다.”
다들 웃음을 참아가며 이제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알았다고 하더니 다시 마지막이라고 진짜 마지막이라며 애원을 해대는 통에 진짜 마지막이라며 주머니에서 꼬물거리더니 손하트를 살며시 꺼낸다. 잘 봐달란 의미였을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아무 말이나 하는 아이를 꽉 안아 마지막 말을 네 번이나 듣고서야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아이는 잠자리에 누워
“엄마, 오늘 너무 좋았어요. 이제 우리 자가격리 끝나요?”
우리는 다음날 자가격리 해제가 되고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자진해서 밖에 나가진 않았다.
막상 자유라고 하니 스스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펜을 손에 쥐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녀석이다. 여느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나 한글 써보기 시간에 눞거나 못한다고 하기 일수인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어린이 프로를 보다 조용히 써서 보여준다.
“내가 원하는 거예요.”
한글을 썼다는 기특함 보다는 헛웃음이 나왔던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