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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Dec 22. 2020

평범하지만 평균은 아닙니다. #07

부부평등

3년 정도 연애를 하고 결혼한 남편은 내가 아니었다면 결혼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신혼 때야 기분 좋은 소리였으나, 살아보니 그리 감흥이 있는 멘트는 아니다. 어쨌든 이 남자는 나와 만나면서부터 결혼할 운명이라 믿었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크고 아름다운' 나의 자태였다고.


이제껏 나의 컴플랙스였던 큰(?) 외모가 이 남자가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라고 하니 과연 득인가 실인가 다시 한번 고민해본다. 결혼할 당시만 해도 마냥 좋았다.

거꾸로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다정하고 재치 있는 말투였다. 싸울 일도 드물었지만 다툼 끝에도 어찌나 웃기던지 웃음이 터져버리고 만다. 6년을 함께 살면서 못 볼꼴을 다 봐도 여전히 웃기는 거 보면 이건 ‘찐’이다.

사랑해서 인지 진짜 그의 입담이 재미있는 것인지 더 크고 아름다워진 나를 놀릴 때도 전혀 밉지가 않다. 아마 사랑이 한 티스푼 정도 많지 않나 싶다.


임신이 되자마자 체중이 무섭게 불어갔다. 신혼이라고 매일 밤 만두와 피자와 맥주로 파티를 열던 일상을 후회하며 의사 선생님의 지도하에 적당히 찌우는 게 목표였다. 출산까지 살이 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출산을 위한 몸만들기를 위해 먹는 것을 조절해야 한다. 임당 검사, 임신중독증, 고관절 통증 등 출산은 정말 여자에게 큰 산이다. 게다가 변해가는 몸을 보고 있자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

몸무게가 계속 느는데 남편은 걱정하기는커녕 놀리는 재미에 빠졌다.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 않고 같이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혼은 신혼 었나 보다.

“자기야, 자기 99kg 되면 내가 구구콘 사줄게,”

“뭐래!! 절대 그런 일 없을 거거든??”

“자기야, 그리고 109kg이 되면 백구포도를 먹는 거지.”

어디 말도 안 되는 아재 개그에 둘 다 깔깔대며 웃어댔다.


남편과 밤 산책을 즐겼는데 캄캄한 놀이터에서 아이들 그네나 시소를 타는 재미가 쏠쏠했다. 경비아저씨가 봤으면 고장 난 다고 한소리 하셨을 것이다. 그중에 가장 재미있던 것이 시소 타기였다. 내가 남편의 몸무게와 비슷해지자

“자기야, 우리 시소한 번 타보자 누가 더 많이 나가나.”

나는 거부도 하지 않고

“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덜 나가지”

사실 비슷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창피하니까 말은 그렇게 했다.

역시나 세상 수평을 이룬 시소에 눈물을 쏙 빼고 ‘깔깔깔’ 웃어댔다. 뭔가 슬픈데 웃겨서 참을 수 없었다.

“역시 우리 부부는 평등하다. 부부평등을 실현한 부부가 많지 않다니까?”

자존심이 상했지만 뱃속의 아기도 나도 웃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뱃속의 아이가 벌써 다섯 살이다. 아이와 놀이터에 가면 꼭 하는 일이 시소를 타는 것인데 그 이유는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노래와 찰떡이기 때문이다. 아이 아빠도 함께 나온 어느 날 아이에게 내려보라며 자리를 뺏더니

“자, 오랜만에 부부평등이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해 볼까?”

조금 식은땀이 흘렀지만 임신 때 찐 살을 모두 뺏기에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 평등은 깨진 지 오래여!”

(당황해서 사투리가 나왔다.) 내 기대와는 달리 우리 부부의 평등지수는 여전했다. 만두와 피자와 맥주로 찌운 살을 아직 못 빼기도 했고 코로나로 확 찐자가 된 것이 크게 기여한 모양이다.


집안일의 평등, 육아의 평등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하지만 체중의 평등만은 유지되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중의 평등이 가져온 웃음으로 행복이 유지되고 있다는 행복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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