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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Dec 18. 2024

35화. 람야이는 내 여자친구예요.

이때 음악이 좀 더 시끄러워지고 동바이가 소리쳤다.     


“พวกนาย! แดนซ์ไทม์! (얘들아! 댄스 타임이다!)”     


‘야호!’ 소리를 지르며 태국 친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댄스 플로어로 나갔다. 드디어 자리가 다 비어 람야이 옆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맞은편에는 아농낫이 그대로 남아 있어 눈치가 보였다. 너무 음악 소리가 커서 람야이에게 소리치듯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낮에 점심시간에 말한 거 집품장과 포장장을 바로 잇는 거...”     


“뭐라고요?”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람야이가 다시 물었는데 그때 아농낫이 경계의 눈초리로 노려 보다가 소리쳤다.     

“석훈 매니저님이 여긴 웬일이세요?”     


음악 소리에 섞이긴 했지만 그렇게 들렸다. 대답을 하려는데 클럽 직원이 와서 맥주와 안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어쩔 수 없이 대답을 못 했다.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하다. 아농낫이 맥주병을 들어 내 앞에 있는 잔에 맥주를 부어 주었다.     


람야이

너무 시끄러워 정신도 없었고 내 양쪽으로 석훈과 아농낫이 앉아 있어 더 정신이 없었다. 석훈이 맥주를 마시려 맥주잔을 드는데 오른쪽 팔 소매가 올라갔다. 이때 팔뚝에 흉한 상처가 뚜렷하게 보였다. 10센티쯤 피부가 얽혀 있는 상처 말이다. 화상 입었을 때 나는 상처이다.      


그때 기억이 났다. 방콕에서 같이 밥 먹을 때도 봤었다. 상처를 가리키며 물어보았다.      


“이거 뭐예요? 전에도 봤는데...”     


그런데 석훈은 얼른 윗 소매를 내리며 답했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 갑자기 시끄러운 음악이 뚝 끊기더니 댄스 플로어 앞 무대 위에 사회자가 나와 태국어로 소리쳤다. 

    

“우리가 모두 기다려온 슈퍼 스타! 태국에서 바로 오신 빛나는 별 얌 추티마가 나오겠습니다!”     


그러자 댄스 플로어에 가득 찬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다. 얌 추티마가 노래를 부르자 태국 관객들이 ‘와!’ 탄성을 지르며 흥분했다. 모두 손을 들고 흔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들 고향의 냄새를 느끼며 따뜻함을 즐기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입구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돌아보자 경찰이었다. 출입구 쪽으로 돌아보자 중무장한 경찰 20명쯤이 손에 곤봉을 들고 무리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가수가 노래를 멈추었고 마음은 얼음처럼 얼어붙었다.     


곧이어 ‘으악!’ ‘뭐야!’ ‘경찰이닷!’하는 고통스러운 외침이 댄스 플로어 위에서, 각각의 테이블에 있던 태국인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곤 일제히 일어나 반대편 비상구 쪽으로 달려 나간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하자 부딪혀 넘어지는 사람들이 생기고 경찰이 이들을 잡고 도망치는 사람도 곤봉으로 때리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으악!’ ‘살려 주세요!’ 소리가 터져 나오며 전쟁 같은 상황이었다.      

“เกิดอะไรขึ้น! ทำยังไงดี! (무슨 일이야! 어떡해!)”     


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지만 좌우 통로에 도망치는 사람들로 가득 차 나갈 수가 없었다. 동바이는 앞 쪽 댄스 플로어에 태국 친구들이랑 있었는데 그냥 서 있었다. 경찰이 다가 가자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 주었다.     


옆에 선 아농낫이 말했다.      


“กำลังจับผู้อพยพผิดกฎหมายอยู่ค่ะ. (불법 체류자 잡고 있네요.)”      


많이 들어 본 상황이었다. 이때 경찰 하나가 우리 테이블에 다가와 물었다.      


“신분증 보여 주세요.”     


나는 가져온 가방에서 여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한국 출입국 사무국 사람들이 언제 어디에서 불법 체류 단속을 할 줄 몰라 우리는 항상 여권을 들고 다닌다.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가 여권이다. 경찰이 여권을 확인하더니 그냥 돌아 나갔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 있던 태국인 남자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통로를 뛰쳐나갔다. 나가던 경찰이 그를 곤봉으로 들어 쳤다. 퍽! ‘으악!’하는 소리와 함께 태국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경찰이 쓰러진 남자의 몸을 발로 밟으며 양쪽 팔을 뒤로 젖혔다. ‘악!’ 다시 태국 남자가 아파서 소리쳤다.    

 

“신분증 내놔!”     


그러자 바닥에 쓰러진 남자가 한국말로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너 불법 체류자지?”     


경찰이 소리치며 태국 남자의 뒤로 젖혀진 양쪽 팔을 잡아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순식간에 전개되는 그 장면에 나는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앞 쪽 댄스 플로어에서도 경찰이 곤봉으로 태국 사람들을 쳐서 넘어뜨리고 수갑을 채워 여기저기 고통스러운 신음이 나왔다. 마치 지옥 같았다.    

  

그런데 옆에서 석훈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돌아보자 석훈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마저 하얘져 굳어 있었다.      


“왜 그래요?”     


댄스 플로어에서 많은 태국인들이 곤봉에 맞은 채 ‘으악!’ ‘살려 주세요!’하고 소리치는 걸 석훈이 보고 있었다. 대답도 못 하고 석훈은 한 손으로 가슴을 잡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너무 위험해 보여 그의 한 손을 잡고 진정시켜야 했다.      


“우리 나가요!!”     


나는 석훈의 손을 잡고 천천히 테이블을 나와 사람들을 피해 통로를 헤쳐 나갔다. 계속 여기저기에서 경찰이 여전히 곤봉으로 퍽 때리고 ‘으악!’ 고통스러운 소리가 나는 가운데 출입구를 찾아 나갔다. 뒤에서 아농낫이 따라왔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나이트클럽을 나오자 윙윙 소리를 내며 경찰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10여 명의 무장 경찰이 서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한국 사람들이 둘러싸 무슨 일인지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졸아 들어 무서웠지만 석훈에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석훈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며 정신이 없는 눈빛이었다.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 진정시켜야 했다.      


다행히 그는 내가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따라 나왔다. 나는 구경하는 사람들을 헤치고 밖으로 나갔다. 클럽에서 멀어지자 주변이 점점 조용해졌다. 석훈은 내 손을 꼭 잡고 따라왔다.      


한참을 걷자 멀리 바닷가 파도 소리가 들리는 작은 놀이터가 나왔다. 미끄럼틀 하나 시소 하나 정도가 있는 작고 허름한 놀이터였다. 나는 그를 이끌어 모래 바닥인 놀이터 안으로 들어가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희미한 가로등 빛이 우리를 비춰 주었다.      


멀리 서는 경찰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데 석훈은 여전히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나는 힘을 주어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석훈! 무슨 일이에요?”     


“저 저런 거 어릴 때 봤어요.”  

   

대답하는 석훈의 목소리는 떨렸다. 놀라서 물었다.     


“네?”     


“어 어릴 때 미국에서 봤어요.”   

 

그날도 오늘처럼 미국 경찰이 곤봉을 들고 도망치는 한국인들을 때려잡았단다.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그들의 부모도 오늘 태국인들처럼 도망치다가 바닥에 쓰러졌었다.     


석훈이 다섯 살 때 25년 전 일이다. 그날 부모는 석훈을 데리고 이웃 한국인의 회갑 잔치에 참석해 있었다. 한인 커뮤니티 가운데 있던 한인 식당에서였다. ‘회갑을 축하드립니다’ 플래카드가 걸린 홀에서 갈비탕 등 한국 음식을 가득 차린 테이블을 앞에 두고 서로 인사하며 반가운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에게는 일주일간 힘든 청소일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오랜만에 가지는 휴식의 시간이었다. 물론 석훈은 그런 것도 모른 채 가져간 종이 그림책을 색연필로 칠하고 있었다. 부모는 주변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식당의 출입문이 요란하게 열리더니 오늘처럼 무장한 미국 경찰이 들이닥쳤다. ‘(영어) 불법 체류자 잡어!’하고 소리치며. 순식간에 경찰이 들이닥쳐 곤봉으로 사람들을 때려 아수라장이 되었단다. 석훈과 부모는 밀려드는 경찰과 넘어지는 사람들을 피해 창문을 깨고 겨우 식당을 나왔다. 석훈은 너무 무서워 계속 울었다고 했다.      


오늘 나이트클럽 안처럼 전쟁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섯 살 아이처럼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나는 그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러면서 보니 그의 오른쪽 팔뚝에 화상 흉터가 눈에 또 들어왔다.      


너무 아파 보여 흉터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이것도 그때 생긴 거구나.”     


“이건...”     


흉터는 그때 생긴 게 아니란다. 다섯 살 때 부모가 일하러 나가고 혼자 집에 있을 때 생긴 거라고 했다. 아직도 석훈은 그때의 무서움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새벽에 두 분 다 일하러 나갔다. 석훈이 잠들어 있을 때 나가셨지만 아침이 오면 석훈은 어김없이 잠을 깼고 무서워서 엉엉 울었다. 

     

나중에는 부모님을 못 나가게 하려도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엄마 손을 잡고 울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이렇게 해야 돈을 벌어 그를 학교에 보낼 수 있다고 안고 말해주었다. 그러면 아버지가 단호하게 그를 떼어 놓고는 문을 열고 나간 후 밖에서 문을 잠갔다.      


겨울날 아침, 부모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너무 추워 부엌에 있는 가스레인지 불을 켜면 따뜻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 켜는 건 엄마가 하는 걸 여러 번 봐서 할 수 있었다. 가스레인지 앞에 의자를 놓고 올라가 불을 켰다. 그런데 가스 불 위에는 된장국이 올려져 있었다.  

    

한참을 있으니 된장국이 끓어 올라 ‘삑! 삑!’ 소리가 나고 무서웠다. 그래서 의자를 놓고 올라가 불을 끄려다가 남비을 쳐 뜨거운 국물이 오른팔 위에 부어졌다. 너무 아프고 뜨거워 엉엉 울었지만 그래도 현관문을 두드리지는 않았다. 남들이 알면 경찰이 엄마 아빠를 잡아간다고 아버지가 절대 문을 두드리지 말라고 일러두었단다. 늦지 않게 부모가 들어 온 게 너무 다행이었다. 

    

“너무 아프고 무서웠겠어요.”     


나는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얽혀 있는 그의 팔뚝 상처에 손을 대고 어루만졌다. 그때 머리 위에서 그의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아픈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미국 있어요?”     


그가 젖은 목소리로 뱉었다.     


“돌아가셨어요. 5년 전에 교통사고로...”     


나는 와락 그를 안았다. 이렇게 불쌍한 사람이 있다니. 이 세상에 혼자 남아 있는 고아. 그가 흠칫 놀라는 것 같았지만 곧 나를 더 힘주어 안았다. 온몸 가득히 그리고 마음 가득히 따뜻함이 느껴졌다. 귀에 그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런 얘기 다른 사람한테 한 건 처음이에요.”     


젖은 목소리였다. 조금 놀라 그의 얼굴을 보려고 몸을 떼려고 하자 그가 오히려 꽉 나를 안았다. 그리고 귀에 속삭였다.      


“잠시만 이대로 있어요. 이렇게 안으니 힘들었던 게 다 녹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귓 가에 그의 속삭임이 계속 들렸다.     


“그거 알아요? 내가 람야이 생각을 아주 많이 한다는 거.”   

 

다시 몸을 떼어 석훈의 얼굴을 보려고 하는데 석훈이 더욱 꼭 안은 채 떨어지지 않는다. 석훈은 내 귀에 대고 계속 속삭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너무너무 생각을 많이 해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넓은 품 안에 안겨 있으면서도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것 같았다.   

   

“일할 때 멀리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요.”     


이럴 수가! 나는 몸을 떼고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석훈도 그래요? 나도 그래요.”     


그러자 그이 눈이 울컥한 거 같다. 곧 눈에서 불이 나는 것 같더니 내 입술에 그의 입술이 붙었다. 혀가 밀고 들어와 입을 열어주자 그의 혀가 내 입안을 헤집고 다녔다. 마치 사막에서 오랫동안 물을 마시는 낙타처럼 나를 갈구했다. 오래 참아온 사랑을 구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서로 붙은 입을 떼지 않고 숨결을 나누었다.       


그때 뒤에서 ‘적당히 해라!’하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몸을 뗐다. 뒤에 행인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 우리의 몸은 서로를 느끼고 얼굴은 열기로 붉어져 있었다. 좀 민망했다.     

 

석훈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내가 그를 보고 웃어 주었다. 그도 나를 보고 웃었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마주 보며 웃었다.      


“오늘부터 람야이는 내 여자친구예요.”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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