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저 여자들은 누구야?

by 김로운

사람이 오가지 않는 향수원 뒤뜰 구석에서 거지를 만났다. 얼굴은 더럽고 군데군데 헤어지기까지 한 농부복을 입고 구멍이 난 망태를 어깨에 메고 벙거지 모자까지 쓴 상태였다.


“잘 어울리십니다.”


벙거지 모자를 벗지 않았더라면 김한인 줄 몰랐을 것이다. 모자를 벗자 그의 형형한 눈빛이 잘 보였다. 그러나 김한은 거지 차림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가 생겼어요.”


“네?”


“교회에서 만세 운동을 하다 목사님이 경찰에 잡혀 가셨어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예상 못했던 일이다. 아니 이런 일을 예상 못하다니 내가 바보다.


“뭐라고요? 그럼 나 잡힐 수 있어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김한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쥐꼬리만 한 돈 벌다가 경찰에 잡힌다고요?”


김한이 쥐구멍에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일단 여기를 그만두세요. 세미 양은 너무 얼굴이 알려진 기생이라 빨리 떠나셔야 해요.”

황당했다.


“진짜...”


“경성에 제 동무 집이 있어요. 거기 가서 당분간 지낼 수 있습니다.”


김한이 제안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종희 언니가 경성 병원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갈 결심을 하고 있었다. 단호하게 얘기했다.


“이 기회에 경성 가죠. 종로에 있는 태화관에 가야겠다. 큰 물 가서 큰돈 벌어야겠어요.”


내 말을 듣고 김한이 잠시 머뭇했지만 금세 이해한다는 얼굴이 되었다.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다정하게 말했다.


“오늘 밤 바로 떠나시고 조심하세요.”

“걱정은 접어 두세요. 다신 얼굴 보는 일 없었으면 해요”


나는 치마 자락을 팽 틀어 쥐고 돌아섰다. 아마 그는 다시 벙거지 모자를 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기방으로 돌아가지는 않고 그 길로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 짐을 쌌다. 한복을 벗고 양장으로 갈아입고 돈과 비싼 패물을 챙겼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방을 나와 시끌벅적하게 불이 환한 기방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평소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향수원 뒷문으로 갔다. 살금살금 어둠 속을 걸어 뒷문을 열었다. 순간 번쩍! 경찰의 총이 보였다.


“꼼짝 마라!”


심장이 쿵 떨어졌다. 불빛이 활짝 비치며 눈이 부셨는데 다시 보자 경찰 두 명이 나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불온 문서 전달죄로 강세미를 체포한다”


내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2357번 들어가!”


간수가 나를 옥사 안으로 집어넣더니 문을 닫았다. 머뭇거리며 안을 둘러보자 좁은 옥사 안에 대략 20명쯤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허름한 죄수복을 입고는.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미야!”


너무 반가운 소리였다. 여죄수들 사이에서 벌떡 일어나 나오는 이는 종희 언니였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경성 좋은 병원에 취직한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보다니.


“종희 언니!”


우리는 두 손을 맞잡고 좋아서 방방 뛰었다.


“여기서 볼 줄은 꿈에도 몰랐어.”


감옥인 것도 잊고 우리가 소리지르자 옆에 빼곡히 앉아 있던 죄수복을 입은 여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차 조용히 하시라요. 여가 뭔 학교 교실임둥? 다른 사람들 생각은 아니함메?”


단발머리에 안경을 쓰고 학교 선생 같은 얼굴을 한 여자가 함경도 사투리로 야단을 쳤다. 20여 명의 여죄수들이 일제히 우리는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18살 앳된 소녀의 얼굴도 있었고 구불거리는 긴 신식 머리를 한 여자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멈춰 섰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데 좀 반가워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는 함경도 여자를 노려 보았고 우리는 잠시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이곳은 감옥이었다. 기쁨도 잠시, 우리는 숨을 죽여야 했다. 종희 언니가 얼른 내 손을 잡고 구석진 자리로 조용히 들어갔다.


서대문 형무소 여감사 안에는 죄수가 너무 많았다. 그 많은 옥사가 죄수들로 넘쳐 났다. 만세 운동 탓이었다. 옥사 안에서 제대로 발 뻗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밤에 몸을 겹쳐 칼잠을 잤다.


“언니는 경성 병원에 있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여기 왔어?”


운동 시간에 여죄수들과 줄지어 형무소 안을 걸어서 돌며 종희 언니에게 물었다.

“병원 면접 본 날이 하필 만세 운동 날이잖니? 종로에 기차 타러 가다가 사람들한테 휩쓸렸어. 그날 면접 보느라 간호복을 입었는데 눈에 잘 띄었나 봐. 나중에 병원에 감기 걸려서 온 구레나룻 일본 형사한테 걸려서 붙잡혀 왔어. 이름을 딱 기억해 뒀지. 하시모토.”


“이럴 수가. 언니는 만세 운동이랑 친하지 않은데.”


“향수원에서 너 여기 온 거 알아?”


“향수원은 그만뒀어.”


그때 뒤에서 함경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향수원? 수원에 있는 유명한 기생집 아님메?”


돌아보자 교사 출신 여죄수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구불거리는 긴 머리 여자가 붙어 서 있었다.


“기생집? 그럼 이 아녀자는 기생이냐?”


긴 머리 여자가 나를 가리키며 얼굴을 찌푸렸다. 옆에 선 함경도 여자의 얼굴에도 경멸하는 빛이 떴다. 속에서 발끈하는 기운이 솟았다.

“네. 그래요. 어쩌라구요?”


나도 눈에서 도깨비 불을 쏘아 주었다. 우리 사이에 불이 활활 타고 있는 듯했다. 종희 언니가 말리지 않았다면 머리채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하자!”


종희 언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누군지 궁금했다.


“대체 저 여자들은 누구야?”


“함경도 여자는 서경이고 머리 긴 여자는 화강이야. 화강은 가끔 이상한 말투를 써. 마치 왕실에서 자란 사람처럼.”


같은 방에 있는 앳된 소녀 얼굴인 관순은 나이도 어리면서 여기 옥사에서 제일 강경했다. 우리 중 고문도 제일 많이 받아 온몸이 만신창이였지만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회만 나면 만세를 부르고 싶어 했다.


그날도 관순은 만세를 부르자고 벽을 손으로 툭툭치고 있었다. 옆 방에 소통하는 것이다. 옥사 문 앞에서 서경이 붙어 서서 간수들이 오는지 살피고 있었다. 우리는 걱정하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문 밖에서 하는 간수의 말소리가 들렸다. 순간 문 앞에 선 서경이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땅을 치고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관순이 재빨리 벽에서 떨어지는데 옥사 문이 확 열렸다.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서경을 보더니 간수가 소리쳤다.


“멈춰!”


옥사로 들어온 간수가 허리에 찬 몽둥이를 들어 서경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퍽퍽! 으악! 서경이 고통에 차서 소리 질렀다. 뒤이어 다른 간수 둘이 더 들어왔다. 그들도 몽둥이를 꺼내 들더니 서경을 향해 내리치기 시작했다.


세 대의 몽둥이가 서경을 향해 쏟아부어졌다. 퍽! 퍽! 퍽! 퍽! 서경은 맞으면서도 괴성을 지르고 웃기까지 했다. 사람이라면 이럴 수 없다. 나는 벌떡 일어나 서경의 몸 위로 내 몸을 덮었다. 이유는 없었다. 순간적으로 서경을 지켜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둥이가 내 몸 위로 쏟아졌다.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수원 경찰서에서도 그랬다. 나를 몽둥이로 때리며 독립 선언서를 준 사람의 이름을 물었지만 이를 악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참을 만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 맞아서인지 몽둥이질에 단련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퍽! 퍽! 몸을 움찔이면서도 참아 냈다. 밑에 깔린 서경의 안경이 떨어져 앞에서 구르고 있었다. 간수 발에 밟힐 것 같아 손을 뻗어 안경을 잡아 손안에 품었다. 서경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 눈이 붉게 울컥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