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사태가 변했다. 헌병들이 허리춤에 찬 몽둥이를 들더니 기생들에게 달려들어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퍽! 퍽!’ 동무들이 순식간에 ‘으악! 으악!’ 비명을 지르며 쓰려졌다. 허리가 굽어지고 무릎이 꺾이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흰 소복 치마가 흙에 더럽혀지고 얼굴이 터져 피가 흘러내리고 저고리 소매에는 피가 배어 나왔다.
동무 하나가 몽둥이를 피해 도망가자 헌병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비녀를 꽂아 묶여있던 머리가 흩뜨려지자 헌병이 긴 머리채를 잡고 당겼다. 동무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서란 언니가 바닥에 쓰러지자 헌병 장교가 무자비하게 몽둥이를 내려쳤다. 주위에서는 ‘하지 마라!’는 소리가 포효하듯 울려 퍼지는데 나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바닥에 단단한 돌멩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얼른 하나를 집어 들고 주먹을 쥐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서란 언니를 때리는 헌병 장교가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다. 맞추기 딱 좋은 위치에 있었다. 얼굴을 조준하기 딱 좋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돌멩이를 들어 헌병 대장의 눈에 조준했다. 앞에 선 사람들 때문에 조금 가려지기는 했지만 헌병 대장의 얼굴이 내 시야에 정확히 들어오는 순간 돌멩이를 힘껏 던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돌멩이를 던져 동네 남자애들을 물리친 전력이 있다. 각도도 정확하고 힘 조절도 잘한다. 돌멩이가 슛 날아가 정확히 헌병 대장의 눈에 맞았다. ‘퍽!’ 헌병 대장이 ‘으악!’ 소리를 지르더니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다른 헌병들은 기생들을 체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에 있던 헌병 하나가 얼른 대장에게 달려가 살피다가 내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자리를 벗어 나오고 있었다. 그게 실수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눈에 띄는 외모이기는 하다. 사람들 무리에서 벗어 나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숙이고 향수원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저년 잡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자 장교 옆에 있던 헌병이 나를 지목하며 달려 나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방향을 바꿔 장터 중앙길 뒤쪽 인가들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헌병은 달려 나오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속도가 느렸다. 치마 자락을 잡고 골목길을 뛰다시피 걸어 나갔다.
달려오는 헌병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갈래길에서 방향을 휙 틀어 기와집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담이 높은 집 문이 확 열리더니 누군가 나를 확 낚아챘다. 엉겁결에 끌려 들어갔다. 나를 낚아챈 사람은 키가 큰 남자였다. 그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하더니 대문을 얼른 닫았다.
숨을 죽이고 대문 뒤에 몸을 붙이고 서 있는데 대문이 작아 남자가 내 옆에 꼭 붙었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대문 바깥 발소리가 다가오다가 ‘どこ行ったの!(어디 갔어!)’하더니 멀어져 갔다. 안도의 한숨이 헉 나왔다. 옆에 붙어 선 남자에게 떨어져 그를 보았다.
기방에서 한번 본 눈빛이 형형한 남자였다. 그날 비웃었던 남자라 선명히 기억이 났다. 그때처럼 낡은 양복차림이었다. 안을 살피자 다행히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긴 장터 사람들은 다 만세 시위에 나가 있었다.
“아까 돌 던지는 거 봤습니다”
이런! 얼굴이 굳어졌다. 고발을 할까?
“전 만세 안 불렀어요.”
방어 기제가 발동했다.
“하하. 아주 정확하던대요. 대단하시더라고요.”
웃는 그가 어이없어 살며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따라 나오며 물었다.
“향수원에서 봤는데 기억 안 나세요?”
물론 기억이 났다. 그러나 모르는 척했다.
“일본 유학생들과 함께 갔었지요. 동경 만세 운동 얘기를 했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러자 긴장해 있던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가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내 이름은 김한입니다.”
나는 내민 그의 커다랗고 하얀 손을 쳐다만 보았다. 그가 손을 거두고 말했다.
“저 좀 도와주십시오”
부탁을 해? 이제 겨우 이름만 아는 사람한테? 좀 기가 막혔다.
“제 이름은 아세요?”
그는 내 말을 들은 척 만척하더니 입고 있던 허름한 양복 재킷 주머니 안에서 둥글게 말려진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걸 원목리에 있는 교회에 전해 주세요.”
내민 종이를 열어 봤더니 소름이 쫙 끼쳤다.
“이거 독립 선언서잖아요?”
그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하면서 급히 주변을 돌아봤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조용히 해 주십시오.”
“위험한 거 아닌가요?”
내가 묻자 그는 굳어진 얼굴을 풀었다.
“그래요. 하지만 헌병 잡는 기개면 할 수 있습니다.”
종이를 그에게 돌려주며 단호하게 밝혔다.
“못 해요. 선생님이 직접 전달하면 되겠네요.”
그의 얼굴이 흐려지며 심각해졌다.
“나는 경찰에 쫓기는 신세라. 쫓아다니는 형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기생들은 봤다시피 전부 체포됐습니다.”
말하는 그의 눈빛은 절박했고 선언서를 잡은 그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내가 이걸 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그래도 못합니다.”
냉정하게 돌아서자 실망하는 그의 눈빛이 등 위에서 느껴졌다. 그대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서서 말했다.
“심부름값 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김한의 얼굴이 환해졌다.
다음날 선언서를 들고 원목리 교회를 향했다. 수수한 한복을 입고 돈 많은 양반에게서 선물 받은 옥으로 장식한 손가방을 들었다. 손가방 안에 선언서를 말아 넣었다.
만세 직후였지만 한낮 장터엔 사람들이 많았다. 쌀도 사고 고기도 사고 낫 같은 농기구도 팔고 사고. 어떤 일이 생기든 먹고사는 일은 계속되니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걸어가는데 아뿔싸! 평소 기방에 자주 오는 경찰 한 명이 맞은편에서 이리저리 살피며 오고 있었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장터를 피해서 가야 했는데.
“어이! 세미! 장안이 다 환해지는군!”
경찰이 능글능글한 얼굴로 말을 건네는 게 역겨웠지만 평소대로 상거래상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안녕하세요?”
“どこ行くの?香水院の芸者たちは みんな警察署にいるの. (어디가? 향수원 기생들은 다 경찰서에 있는데.)”
마음이 콩닥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침착해야 한다.
“田舎の親戚の家に行きま. (시골 친척집 갑니다.)”
그런데 이 놈이 갑자기 팔목을 확 잡았다. 여기는 기방이 아닌데 말이다.
“私の早く香水院に行って、うちのセミが注いでくれるお酒を飲まなければならないの. (내 빨리 향수원 가서 우리 세미가 따라주는 술을 마셔야 하는데.) 하하”
기분이 확 나빠졌다. 그래도 할 일이 있으니 참고 웃으며 팔목을 살며시 빼냈다.
“어서 오셔요. 호호”
순간 이 놈의 얼굴이 확 굳어지는 게 아닌가? 내 팔목을 잡으면서 팔목에 달려 있던 손가방을 봤다. 손가방에 뚜껑이 있는 게 아니라서 살짝 벌어진 입구 사이로 선언서 종이가 삐져나와 있었다. 심지어 투명한 한지라 ‘독립 선언서’라는 글자가 살짝 비쳐 보였다. 내 실수다. 얼굴이 화끈해졌다. 경찰이 의심에 찬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これは何?(이건 뭔가?)”
“何でもありませ.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당황해서 엉겁결에 종이를 빼서 윗저고리 사이 가슴팍에 끼워 넣었다.
“あれ、おかしいな? こっちにちょうだい. (어, 이상한대? 이리 줘봐)”
“何でもないんですっ.(아무 것도 아니라니까요.)”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 앙칼지게 소리를 지르자 경찰은 더 의심했다. 놈이 내 가슴팍에 손을 댔다.
“何でもないとは. (아무 것도 아니긴.)”
음흉하게 웃으며 가슴팍을 주물럭거리자 나는 소름이 끼쳐 몸을 뒤로 빼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지나가던 조선인들이 힐끗힐끗 쳐다봤다. 번뜩 도움을 청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대낮에 여자 가슴에 손대시는 겁니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농부 차림의 한 남자는 손에 낫을 들고 있었다. 다들 매서운 눈빛들이었다.
“저를 추행하십니까? 조선 년이라서요?”
모두 들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듯 외쳤다.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두루마리 차림의 선비는 ‘아녀자를 놓거라!’고 무서운 눈빛으로 호령했다. 농부가 낫에 든 손에 힘을 주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고 옆에 선 아이가 바닥에서 돌을 주어 들었다. 그러자 혼자 있던 경찰이 머뭇했다.
겁먹은 눈빛이 되더니 내 가슴에서 손을 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서 나갔다. 갑자기 맥이 확 풀렸다. 낡은 치마저고리 차림의 아줌마가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다음은 진짜 조심해서 갔다. 선언서는 가슴팍에 넣어 둔 채 주변을 경계하며 빠른 걸음으로 인적이 드문 시골길을 골라 걸어 교회에 도착했다. 수더분한 얼굴의 목사님에게 선언서를 넘기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7일이 지났다. 종희 언니가 경성 조선 총독부 의료원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너무 기뻤다. 그리고 서란 언니만 빼고 향수원 기생들이 모두 경찰서에서 나왔다. 동무 기생들은 서란 언니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행수 언니는 차갑게 영업을 다시 개시했다. 먹고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날따라 기방에 찾는 손님이 많았다. 오랜만에 다시 문을 열어서일 것이다. 춤을 추고 창을 하고 흥을 돋우고 돈 많은 양반의 잔에 술을 따랐다. 한참 일하는데 기방 집사가 밖으로 나오라고 살짝 불렀다.
“웬 거지가 보잰다.”
“뭐 거지? 일 없다.”
돌아서 다시 기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집사가 말했다.
“심부름값 준다는데?”
머리에 번쩍 번개가 치는 듯했다.
“심부름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