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새 여학생 기숙사에서 태극기를 준비했다. 천이 마땅치 않아서 커튼을 찢어 박음질하고 미술 시간에 쓰던 물감으로 태극을 그리고 권곤 감리를 쳤다.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은 가슴이 뜨거웠다. 지역 어르신들보다 훨씬 뜨거웠다.
태극기를 다 그리고 난 후 내일 어디로 가서 만세를 부를지 정하였다. 장터에 나가기로 하고 앞장은 내가 서기로 했다. 제자들은 약지를 칼로 살짝 베어 피를 내어 혈서도 썼다. ‘죽을 때까지 뜻을 지키고 서로 배반하지 않는다.’ 어디서 이런 피맺힌 결심이 나오는지 눈물이 흘렀다. 교사로서 앞장서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만이 나를 채웠다.
혹시 앞장서서 경찰에 잡히게 되면 감옥에 가게 될까? 아니다. 감옥에 갈 각오는 이미 했다. 다만 부모님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집에는 얘기도 하지 못했다. 얌전하게 고등여학교 교사나 하고 있을 줄 알 텐데. 너무 죄송한 마음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 학생들에게 항상 주장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지라도 오백 년을 이어온 조선의 역사는 결코 사라질 수 없으며 우리는 조선의 백성이다. 일본의 백성이 아니다라고. 내가 한 말을 제자들 앞에서 지켜야 한다.
드디어 아침 해가 밝았다. 밤새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만세를 나가기로 한 학생들은 벌써 서로를 깨우고 검은 치마 흰 저고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태극기를 챙겨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학생들이 모여들었는데 만세단 학생 30여 명은 한데 뭉쳐 치마 뒤에 숨겼던 태극기를 앞으로 꺼내 들었다. 다들 긴장되고 결연한 표정들이었다. 나는 밥을 먹는 학생들 앞으로 나서 크게 외쳤다.
“오늘 경성에서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외치는 만세를 부릅네다. 여 함흥에서도 아니 부를 수 없디요.”
만세단 학생들이 태극기를 앞으로 내며 ‘옳소! 옳소!’하고 외쳤다. 밥 먹던 여학생들이 일제히 쳐다보았다. 다들 놀라면서도 응원하는 얼굴들이었다.
“내레 앞장을 서 만세를 부를끼니 내를 따르기요!”
순식간에 식당 안 분위기는 웅성웅성해졌다. 이때 식당 앞문에서 ‘노우!’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흰 얼굴, 파란 눈에 금발 머리를 묶어 올린 중년의 여성 교장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양팔을 벌려 문을 막았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여러분! 여서 나가면 아니됨둥! 여러분은 공부하는 학생임네다.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하지비요”
교장은 어설픈 함경도 사투리로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전날 낮부터 학교에서 술렁거리는 분위기를 교장도 아마 눈치챘을 것이다. 서양인 교장 선생님이 걱정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조선인이 아니다. 교장 앞에 가 섰다.
“비켜 주시라요.”
“일 없슴둥. 네버. 여러분이 여서 나가면 일본 경찰한테 다칩네다. 던츠 고우 아웃!”
“조선의 일은 조선 백성이 합네다.”
“서경 쌤님은 교사로 아들을 일케 선동하면 아니 됨메.”
“내레 거룩한 애국의 길로 인도하는 겁네다. 비켜 주시라요.”
식당에 있던 제자들에게 돌아서 나가자고 말하자 그들이 우르르 내 뒤에 와 서서 교장을 쳐다보았다. 불꽃이 튀는 눈빛으로. 할 수 없이 교장이 문을 막아선 한 팔을 내렸다. 감사의 뜻으로 교장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문으로 나갔다. 학생들이 뒤따라 나왔다. 우리는 태극기를 들고 나란히 서서 만세를 외치며 장터 중심부로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날 일이 정말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삼월 일일은 좋은 날이었다. 수원 의료원에서 쫓겨나고 나서 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전에 환자로 돌봐드렸던 분이 집에까지 찾아와서 경성 조선 총독부 의료원에서 간호사를 찾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간호해 드렸을 때 너무나 고마웠다고. 조선 총독부라면 지금 조선 최고의 병원 아닌가?
병원에 찾아가서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 날자를 잡았다. 일부러 어머니가 깨끗하게 빨아주신 하얀 간호복을 차려입고 다시 조선 총독부를 찾았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릴 때부터 경성 시내 분위기는 술렁거렸다.
그러나 너무나 중대한 일을 앞둔 터라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았다. 면접장의 들어가니 세명의 의사가 앉아 있었다. 명판에 ‘외과’ ‘내과’ ‘이비인후과’로 적혀있다.
“水原医療院で働いていましたね。(수원 의료원에서 일하셨네요.)”
인상이 험한 외과 의사가 물었다.
“はい (네.)”
“経験が豊富ですね (경험이 많으시군요).”
나이가 많이 보이는 이비인후과 의사였다.
“はい。私は力が強くて患者たちをよく扱います。(네. 제가 힘이 좋아서 환자들을 잘 다룹니다.)”
의사 셋은 무슨 말이냐는 듯 일제히 바라보았다.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덧붙였다.
“患者が乱暴を働いた時、片手で制圧することができます. (환자가 난동을 부릴 때 한 손으로 제압할 수 있습니다.)”
내과 의사가 피식 웃었다. 깨끗하고 지적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른 의사들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의사들은 자기들끼리 쳐다보며 작은 일본어로 빠르게 속닥거렸다.
“変な女だね。(이상한 여자네.)”
“朝鮮人看護師を信じてもいいの?(조선인 간호사 믿어도 되는 거야?)”
“私が一緒に働きます。(제가 함께 일하겠습니다.)”
내과 의사가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다른 의사들이 아무 말하지 않자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いいですね。来週から出勤してください。(좋습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해 주세요.)”
이럴 수가! 바로 출근 확정이라니! 벌떡 일어나서 허리 숙여 인사를 여러 번 했다. 수원 의료원 의사 개새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늘을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발걸음도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종로에 위치한 의료원 정문을 나서는데 깜짝 놀랐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흰색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거센 물결이었다. 흰 옷을 입은 남녀노소가 손에 태극기를 들고 흔들며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가는 길 여기저기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만세 소리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다들 목청 터지게 총독부 지붕이 날아가라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다만 여기저기 제복을 입은 일본 경찰들이 총과 칼을 차고 지켜보았다. 특히 종로 경찰서 앞은 경비가 삼엄했다.
길거리로 나서니 물결을 거스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물결에 휩쓸려 가는데 옆에 쪽머리에 비녀를 꽂고 허름한 한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간호복을 입고 가는 내게 소리쳤다.
“처자! 만세 안 불러?”
아주머니는 들고 있던 태극기도 내게 건네주었다. ‘이걸 내가 받아도 되나? 만세를 불러도 되나? 위험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만세 소리가 심장을 울렸고 나도 이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극기를 들어 만세를 불렀다.
함께 부르고 가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조선 독립을 길거리에서 외치다니. 금방 독립이 될 것 같고 감동이 마음속에서 차 올라왔다. 병원에 합격도 했겠다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만세를 외쳤다. 다만 종로 경찰서 앞을 지나갈 때 지켜보는 구레나룻 경찰 한 명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만세 소리는 정말 하늘을 여는 것 같았다.
삼월 일일 향수원은 텅텅 비었다. 저녁 술자리를 준비하는 기방에는 나밖에 없었다. 좀 소외된 느낌이었다. 향수원 바깥 멀리 장터에서 ‘만세’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서란 언니와 동무 기생들이 모두 거기로 갔다. 어차피 오늘 같은 날 저녁 술자리에 올 양반은 없다.
화장을 하다 말고 장터로 나갔다. 사람들이 많이 안 보이고 오히려 잠잠했다. 그런데 장터 길 입구에 있는 ‘수원 헌병대’ 앞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몰려 있었다. 심지어 나무 위에도 사람들이 올라가 있었다. 그들의 눈이 다들 수원 헌병대 안마당을 향하고 있었다.
빼곡하게 선 사람들 사이를 겨우 뚫고 안마당을 들여다보자 서란 언니와 동무 기생들이 보였다. 드디어 사단을 벌였다. 나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매일 뭔가 숙덕거리더니 헌병 앞마당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이구! 이 간뎅이 부은 여자들!
서란 언니가 앞장서고 동무 기생 10여 명이 수수한 한복 차림으로 뒤에 서 있는데 눈에서는 불이 뿜어 나오는 듯했다. 그러나 살벌하게 무서웠다. 헌병 20여 명이 총을 들고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헌병대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새파래진 얼굴로 아무 말도 못 하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금방이라도 총알이 나갈 듯 무섭도록 팽팽한 공기가 흘렀다. 침묵을 깨고 서란 언니가 소리쳤다.
“오후 4시까지만 만세를 부르고 자진 해산할 테니 총을 쏘지 마라”
소리가 총소리 같이 팽팽한 공기를 가로질렀다. 심장이 조이고 목에서 침이 꼴깍 넘어갔다. 무슨 배포로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총을 겨누던 일본 헌병들이 머뭇했다. 권총을 겨누던 헌병 대장이 물었다.
“믿을 수 있나?”
서란 언니가 대답했다.
“우리는 수원 기생이다. 약조는 반드시 지킨다”
아마 목숨을 건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눈물이 나왔다.
“銃を下ろして!(총 내려!)”
일본 장교가 외쳤다. 그러자 헌병들이 일제히 올린 총을 내렸다. 그러자마자 서란 언니가 팔을 들고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언니 뒤에 서 있던 동무 기생들도 일제히 두 팔을 위로 쳐들며 ‘만세’를 외쳤다. ‘만세’ 소리는 순식간에 모두에게 퍼져나갔다. 헌병대 울타리가 넘어질 듯 붙어 있던 사람들도, 나무 위에 올라 가 있던 사람들도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모두 한 사람인 것처럼 환희에 찬 얼굴들이었다. 어떤 양반은 쓰고 있던 갓를 위로 던져 만세 부르는 사람들 위에 꽃다발처럼 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겁이 났다. 헌병들은 총을 든 채 아직도 지켜보고 있다.
나무 위에서도 ‘만세’ 소리가 팡파르처럼 울려 퍼지는 순간 총소리가 났다. ‘탕’ 새가 푸드덕 날아가고 나뭇잎이 떨어졌고 순식간에 만세 소리가 멈췄다. 헌병 장교가 하늘을 향해 권총을 쏘았다. 동시에 외쳤다.
“妓生を逮捕しろ!(기생년들을 체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