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를 끝내고 나는 ‘재일 조선 유학생 선언서’를 품 안에 잘 넣고 강당으로 나왔다. 김 마리아, 나와 필용을 빼고는 회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강단으로 올라갔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내가 필용과 함께 구석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갈 때 강단 위에서는 조선인 유학생 대표가 선언서를 읽고 있었다.
‘한일병합조약의 폐기와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 민족 대회의 소집을 요구하며, 만국평화회의에 민족 대표를 파견할 것이며, 이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영원한 혈전을 벌일 것을 선언한다’
아마 그렇게 들린 것 같다. 그러자 팽팽한 긴장으로 강당 안을 채우고 있던 100여 명의 남녀 학생들이 일제히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두 손을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앞쪽 문이 팍 열리며 총칼을 든 경찰들이 밀려 들어와 몽둥이를 들고 학생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퍽퍽. 아비규환이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지시받을 대로 아수라장 사이를 헤집고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작은 옆 문으로 나갔다. 필용은 경찰의 눈에 띄지 않도록 내 몸을 감싸며 보호해 주었다. 뒤에서는 몽둥이에 맞은 학생들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쏟아졌다.
이게 대체 뭐라고 이들은 공부하는 것과 아무 관계도 없는 일에 나서서 몽둥이찜질을 받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스치듯 들었지만 지금은 내가 맡은 임무를 하는 게 더 중요했다. 회관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밤이 더 깊어 있었다. 회관 주변을 둘러쌓던 경찰들은 대부분 강당 안으로 들어가 있었지만 그중 몇몇이 문 앞을 지키며 경계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경계하며 어둠 속을 뚫고 발을 재촉해 일반집들이 늘어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대한 독립 만세’와 퍽퍽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누가 우리를 본 모양이었다. ‘저 놈 잡아라!’하는 다급한 외침과 함께 호루라기를 불며 경찰이 쫓아왔다. 두 명인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숨이 확 막히는 것 같았다.
가던 길을 바꿔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다. 뒤에서 쫓아오는 발소리가 심장 소리만큼 크게 들려왔다. 불빛이 전혀 없는 어둑한 골목이어서 들어간 길이었는데 끝이 막혀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귀에서 쿵쿵거리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휙 돌아서 뒤에서 오는 필용을 잡아 벽에 확 붙였다. 순간 ‘내가 지금껏 배운 법도를 무너뜨리고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머뭇했다. 하지만 나는 보통 신분이 아니다. 임무를 잘해 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의 목에 팔을 감고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붙였다. 당황하는 그의 기운이 나에게도 느껴졌지만 내가 막은 입 때문에 말이 새어 나오진 못했다.
뒤에서는 경찰의 발소리가 멈추고 말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거! 연애하는 거야?’ 나는 필용의 입술을 대담하게 빨아 열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자 당황한 기운이 느껴지더니 경찰이 뒤돌아 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잠깐 돌아보자 경찰이 돌아 나가고 있었다. 나는 얼른 입술을 떼었다. 필용의 얼굴은 빨개져 있었다.
“계속하지요!”
열기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너무 덥혀 놨나 본다. 나는 밀려 올라간 블라우스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가슴속에 숨긴 선언서가 잘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한 발짝 떨어져서는 말해 주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나는 어두운 골목을 돌아 나갔다. 뒤에서 황당해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경첩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좀 거칠하고 야윈 것 같다. 거친 얼굴을 가리려고 분첩을 두드려 분을 발랐다. 그리고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다듬은 후 붉은 입술연지를 꼼꼼하게 발랐다. 겨우 향수원 최고 기생다운 얼굴이 살아나는 것 같다.
옆에서는 개성 난봉가에 맞춰 개사한 서란 언니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아무리 곤고할지라도 조선인 불효자식에게는 술을 따라도 절대 일본 순사 나부랭이 한테는 술 안 따르니...”
다른 기생들이 장안을 맞춘다. ‘얼쑤! 좋다!’
언니는 애국정신이 투철한 이런 노래 잘 부른다. 밤 술자리에 나가기 전 모여서 화장하는 자리에서 꼭 이런 노래를 불러야 하나? 게다가 다른 동무들은 왜 또 거기에 맞춰 장단을 맞출까? 동무 기생들의 장단에 흥이 났는지 서란 언니가 화장하던 손을 멈추고 말을 꺼냈다.
“삼월 일일 경성에서 만세 운동을 하다고 해!”
다들 분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서련 언니에게 집중했다. 다들 놀라는 눈이었다. 갑자기 기홍이 나섰다.
“그럼 가만있으면 되겠어? 뭐라도 해야지.”
“우리도 만세 부르자!”
“하자! 하자!”
서란 언니가 맞받아치자 모두들 소리를 지르며 동조했다. 나만 빼고 말이다.
“왜 하는데?”
시끄러워서 나도 소리를 질렀다. 한심하다. 서란 언니는 너무 자기 생각을 못한다. 그러니 맨날 양보하고 손해 보며 살고 있다.
“망한 나라 위해서 뭐 하려고? 우리한테 밥을 줘? 돈을 줘? 겨우 감옥소 보내잖아”
서란 언니의 눈빛이 단호해졌다. 불을 뿜듯 말이 나왔다.
“우린 기개 있는 기생이야. 일본 놈들한테 무릎 조아리지 말아야지.”
이런! 그렇게 혼을 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불쌍한 년들이야. 나라 걱정하지 말고 자기 살 길은 자기가 찾아야지.”
다들 조용해졌다. 내 말이 옳은 거다. 그러나 서란 언니가 조용히 입을 다시 뗐다.
“너는 뭐 할 건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난 돈 벌 거야.”
내 말에 몇몇이 피식 웃었다.
“저 년이 최참판댁 도련님 집에 첩으로 못 들어가더니 화풀이를 엉뚱한 데 하네.”
잠시 마음에 칼날이 들어온 것 같았다. 상처가 다 아물지는 않았지만 그걸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내 자존심에 상처가 나는 말이다. 뻔뻔한 얼굴을 뒤집어썼다.
“난 돈 벌어서 향수원 같은 기생집 차릴 거야. 최참판집 씹어 먹게 떵떵거리고 살 거라고.”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말하자 서란 언니를 혀를 끌끌 차고 동료들은 낄낄거리며 비웃었다. 그리곤 멈추었던 분첩을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도 붉은 입술연지를 마무리했다. 술상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할 것 아닌가?
한 두개 있는 촛불마저 낮게 밝혀 둔 교회당 안에는 두루마리를 갖춰 입고 삿갓을 머리에 쓴 어른들 몇이 그림자처럼 의자에 앉아 있다. 함흥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경성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삼월 일일에 거사가 있을 거라고 경성에서 졸업한 고등 여학교 동무들 편지가 시끄럽던데 여기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래서 일개 시골 여학교 교사로 부임한 지 2년도 안 된 내가 학교가 소속한 교회 목사님에게 말씀드려 지역 유지들을 모았다. 다들 양반이라고 지역에서 한 목소리 하는 분들이었다. 완고한 어른들 앞에 여교사인 내가 나서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목사님께 부탁드렸다. 목사님도 교회 통신망을 통해 거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장터에서 만세 부르는 거 앞장 서실 분 아니 계십네까?”
구석 자리에 서서 둘러보았는데 어른들은 너무 조용했다. 침묵만이 어두운 교회당 안을 채우고 있었다. 겨우 한 어른이 입을 열었다.
“인차 위험한 일이지비요. 순사들이 불령 선인들 잡는다고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지 않슴메? 엊그제도 상해에서 활동한다는 애국지사가 최대감을 찾아와서는 군자금을 요구했다고 누가 헌병대에 신고해서리 난리가 났지비요.”
순간 두려움이 좌중 사이를 흘렀다. 조용히 뒤에 서 있었지만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경성에서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거사를 준비하는데 겨우 개인의 평안만을 걱정하다니.
“어르신들!”
앞으로 나서서 한마디를 하자 다들 나를 쳐다보았다.
“만세 운동하는 애국지사인들 어째 집안일이 없갔습네까? 어케 자기 생각만 하고 나라 생각은 아니 하심메?”
그러자 좌중에서 ‘으흠!’하고 비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못마땅하다는 표정들이었다. 유난히 삿갓을 꼿꼿이 세운 어르신이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가시나가 어데라고 나대니?”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서 팽 돌아서 나갔다. 그러자 다른 어른들도 일제히 일어서더니 그를 따라 나갔다. 다시 교회당 안은 더욱 조용해졌다. 목사님만 민망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꼭 쥐었다. 내일이 삼월 일일이다. 준비한 게 없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