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향수원 기생들은 정기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수수한 흰 한복을 입고 향수원 동무 기생 열 명과 줄을 지어 수원 의료원으로 가는 길은 굴욕적이었다. 월례 행사처럼 장터 가운데 이 길을 가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다 쳐다보았다.
“이딴 식으로 강제 검사를 받아야 하니?”
“정말 치욕스러워서.”
“섬 것들한테 우리가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해?”
동료 기생들이 쏟아지는 눈길을 피하며 낮은 소리로 속삭이자 나도 한마디 했다.
“그러지 좀 맙시다. 성병 손님들한테 옮길까 봐 그런다는데 한 달에 한 번만 꾹 참으면 돼지.”
동무 기생들이 일제히 나를 째려보았고 서란 언니가 험한 얼굴로 대꾸했다.
“일본인들이 여기 오기 전에는 이런 거 없었다. 우리가 무슨 병균을 옮기는 벌레도 아니고.”
언니의 말에 다들 ‘맞아! 맞아!’하고 웅성거렸지만 여전히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쳐다보았고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양식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진 수원 의료원에서 우리가 가는 검사실은 기생들만 검사하는 곳이 아니었다. 일본인 의사가 한 명 있는데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조선인들에게 이런저런 검사를 한다.
커다란 진료실 안과 복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저고리가 짧아 배가 다 나온 어린아이부터 낡은 두루마리를 갖춰 입은 할아버지까지 진료실 바깥 복도에는 수십 명이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며 서서 혼잡스러웠다. 우리도 한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런데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종희 언니다.
언니와 나는 같은 시골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나보다 3살 위이지만 우리는 바로 옆집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친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는 홀어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었고 나는 부모가 있었지만 맨날 술이나 마시고 주먹질을 해대는 아버지와 자식들을 보호할 줄 모르는 어머니 때문에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네 집은 농사를 짓지 않고 양반들이 맡겨 논 말을 돌보며 생계를 이었다. 덕분에 항상 산에서 풀을 베어 무거운 지게에 이고 날라 힘이 셌다. 동네 남자애들이 나를 쫓아와 머리카락을 잡아당길 때면 언니가 지게막대기를 휘두르며 휘휘 쫓아 주었다.
가끔 사냥꾼이 말을 빌렸는데 그때 언니가 장총 다루는 걸 사냥꾼 어깨너머 눈여겨보곤 했다. 아버지의 때릴 때면 언니 집으로 자주 도망을 갔었다. 우리는 둘 다 자주 배를 곯으며 서로에게 기대였다.
종희 언니는 수원 의료원 간호사로 여기에서 근무했다. 힘든 경로를 거쳐 여기에 왔다. 내가 손을 흔들어 부르자 환히 웃으며 언니가 다가오다가 내 앞에 서서 얼굴이 흐려졌다.
“오늘 위생 검사구나.”
나도 얼굴이 흐려지며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 사이 어느덧 우리들은 의사 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진료실 안쪽 의자에 앉아 있던 의사가 우리를 보더니 소리 질렀다.
“기생들 다 옷 벗어!”
순간 진료실 안과 바깥 복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우리를 향하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들은 머뭇거리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聞いてないの?服全部脱げって!!(못 들었어? 옷 다 벗으라니까!!)”
의사가 다시 한번 일어로 소리를 쳤다. 그러자 복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뒷문 쪽으로 몰려들었다. 벽면으로는 커다란 창이 나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구경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신기한 동물이 되어 있었다.
“肌の奥まで脱がないといけませんか?(속곳까지 벗어야 해요?)”
반항하듯 서란 언니가 묻자 의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そうだ (그렇다!)”
그때 내 옆에 서 있던 종희 언니가 주먹을 꼭 쥐더니 의사 앞으로 나아갔다.
“妓生が何の犬豚ですか? 人々が皆見る前で何をしているんですか?(기생들이 무슨 개 돼지입니까?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뭐 하는 겁니까?)”
“看護婦のくせに医者の言うことにたてつくの? 朝鮮人のくせに?(감히 간호사 주제에 의사 말에 대들어? 조센징 주제에?)”
의사가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올려다보자 종희 언니 눈에서 불이 일더니 휙 돌았다. 그리고는 뒷문으로 가 몰려 있는 사람들을 몸으로 밀어냈다. 역시 힘이 좋아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 나갔다. 또 벽 쪽 창으로 가 커튼을 휙휙 쳐 사람들의 눈을 가로막았다.
“イ·ジョンヒ看護師! 何してるの?(박종희 간호사! 뭐 하는 거야?)”
“妓生は動物園の動物ではありません。(기생들이 동물원 동물 아닙니다.)”
종희 언니가 앞 문으로 가 그쪽에서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밀어내 문을 닫으며 의사에게 소리쳤다. 의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 질렀다.
“やめろって!(그만하라고!)”
우리들도 놀라는 눈으로 모두 쳐다보았지만 나는 종희 언니가 걱정되어 마음이 조였다. 일본인 의사는 더 소리를 높였다.
“この看護師!黙っていないよ。(박 간호사! 가만히 두지 않겠어.)”
의사는 격분했지만 종희 언니는 할 일 다 했다는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언니가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나왔다. 동시에 무슨 일이 생길 텐데 하고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종희 언니는 그냥 웃어 주었다.
수원을 벗어나는 외곽 초입에 있는 종희 언니네 집을 마치 친정처럼 자주 드나들었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수수하게 차려입고 언니 집 앞에 도착하니 낮은 초가지붕 위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밥을 하고 계시는가 보다.
허름한 싸락 문을 열자 우물이 있는 작은 마당 한쪽에 다섯 살 희준이가 땅바닥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다. ‘희준아!’하고 부르자 애가 벌떡 일어나 내게 달려왔다.
“이모 안녕하세요?”
환하게 웃는 작은 얼굴이 개구지면서도 귀여웠다. 품 안에 아이를 와락 안아 주었다.
“우리 희준이 그 사이에 키가 많이 컸네.”
부엌문이 열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언니 어머니가 나오셨다.
“어이구! 세미 왔니? 어서 와라!”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주름진 얼굴로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어머니 때문에 이곳이 항상 친정 같다. 곧 방문이 열렸다.
“왔어?”
종희 언니 방으로 들어가니 벽에는 하얀 간호사 복이 깨끗하게 세탁되어 걸려 있었다.
“병원 그만뒀다며?”
언니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예상했었던 일이었다.
“응.”
언니가 문 쪽을 힐끗 보더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게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어머니하고 희준이한테는 얘기하지 마라.”
“그날 일 때문에?”
“뭔 의사 새끼가 개새끼냐? 조센징 여자는 인간도 아니야? 나는 개새끼 밑에서 일할 수 없다.”
언니는 평소 수더분한 성격이지만 가끔 너무나 강경하다.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어머니도 계시고 희준이도 있는데. 어떻게 먹고살려고?”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그깟 문제없다. 나 희준이 업고 희준이 아버지한테서 도망친 여자야. 그리고 간호조무사 학교도 마쳤다고. 이보다 힘든 일도 겪었는데. 너도 알잖아?”
그렇다. 나는 안다. 언니가 어떻게 시집을 갔고 어떻게 도망을 쳤는지. 시골 고향 마을에서 10리가 떨어진 동네에 16살 언니는 15살이나 나이가 많은, 기침을 홀짝대는 홀아비에게 시집을 갔다. 그건 시집이 아니라 홀아비에게 팔려 가는 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희준이를 낳고 1년 만에 남편은 오래 앓고 있던 병이 깊어져 결국 죽었다. 그대로 시집에서 언니는 노예처럼 살 수 없었다. 패물을 훔쳐 희준이를 업고 도망쳐 나왔다. 16살 나이에 술에 취한 아버지 손에 이끌려 향수원에 팔린 나에게 언니는 대단한 여장부로 보였다.
“그치. 나 걱정 안 해. 그래도 정 사정이 어려우면 나한테 얘기해. 곧 부잣집 도련님한테 시집가니까.”
나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큰 소리를 쳐 주었다.
“최참판댁 맏아드님?”
고개를 끄덕이자 언니의 얼굴은 곧 폭풍우가 칠 하늘처럼 흐려졌다.
“왜 갑자기 얼굴이 그래? 나 너무 행복해.”
“안 된다. 그 집이 수원에서 꼬라비 양반이라고 말끝마다 떵떵거리는 집안이야. 널 한겨울 쥐새끼처럼 구박할 거다.”
언니의 말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얼굴이 굳어졌다.
“나도 알아. 그래도 시집가고 싶어. 향수원을 떠날 수 있으니까.”
내 말에 종희 언니의 눈이 붉어진 것 같다. 입술을 깨물더니 내 손을 꼭 잡았다.
최참판댁은 수원 장내에서 제일 커다란 기와집이다. 대문도 크고 웅장하다. 다만 언제 어느 때고 꼭 닫혀 있다. 도련님이 벌써 일주일째 기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굳게 결심을 하고 이 집 앞에 섰다. 전에 도련님이 사 주었던 파란 원피스를 입고는.
꼭 다문 입처럼 굳게 닫힌 문을 보자 두려움이 잠시 차올랐다. 안쪽 구조가 보이지도 않는 높은 담벼락은 마치 나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장 소리가 쿵쿵 가슴에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오늘 여기 왔다. 마음을 굳게 먹고 손을 들어 두터운 문을 두드렸다. 문이 살짝 열리고 남자 종이 삐죽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 최자 기자 만자 도련님 안 계십니까?”
“최기만이 맞기는 한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도련님께 세미가 찾아왔다고 전해 주세요.”
상투를 틀어쥔 남자 종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종이 다시 나타났다.
“도련님이 그런 여자는 모른다는데?”
순간 머리에서 쿵 소리가 들렸다.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 리 없어요.”
나는 살짝 열린 사이로 손을 넣어 문을 확 열었다. 남자 종이 놀라 내 팔을 잡았지만 손길을 뿌리치고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오늘은 끝장을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