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거리는 세모시 소매 자락이 팔랑 날리는 치마 자락을 스치자 손가락이 좀 아려 왔지만 웃음 지었다. 남자 손님들은 작은 한숨을 뱉어 내며 하늘거리는 내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꽃분홍 모시 치마를 내려다보던 고개를 들자 그들은 내 얼굴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춤을 멈추고 옆에서 고수가 치는 북소리에 맞춰 창을 했다.
‘박연 폭포가 제 아무리 깊다 해도 우리나 양인의 정만 못하리라 에헤라디여~’
이글거리는 눈빛을 숨기지 못하는 최참판댁 도련님이 소리를 쳤다.
“이제 그만하고 한 잔 따라 다오!”
그가 자기 곁을 가리키며 재촉했다. 창을 멈추고 웃어 주었다.
“네. 그만하지요.”
북소리가 멈추고 나는 사각거리는 치마 자락을 잡고 그의 곁에 앉았다. 얼굴이 발그래진 도련님은 대뜸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서 술을 따라야지.”
술병을 들어 잔에 따라주었다. 그의 뜨거운 입김이 귓가를 간지럽히자 나는 그와 한 약속을 떠올렸다. 다음날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양장점에 가기로 했다.
경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원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장터거리에 있는 비싼 양장점이었다. 내가 있는 향수원 기방 언니, 동생들과 자주 오는 곳이지만 그날만큼은 특별한 방문이었다. 도련님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가기 위해 입을 양장을 살 계획이었다.
여느 때처럼 중년 여성 사장은 호들갑이었다.
“역시 세미 양은 미모가 수원 시내를 들었다 놨다 할 지경이라니까. 그냥 서 있기만 해도 가게가 훤해지잖아!”
나는 가볍게 웃어 주며 입고 있는 파란색 서양식 양장을 거울이 비춰 보고 이리저리 몸을 돌려 보았다. 새털깃이 붙은 서양식 작은 여성 모자가 세련됨을 더해 주고 있었다.
“이거 요즘 경성에서 제일 유행하는 거 맞죠?”
“그럼요. 최근 구라파에서 들어온 금발 양인들이 입고 온 디자인이잖아요. 세미 양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
사장은 붉게 칠한 입술로 호호거렸다. 그런 호들갑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뒤에 앉아 코를 벌렁거리며 쳐다보는 도련님을 돌아보았다.
“아버님, 어머님이 좋아하시겠죠?”
순간 도련님의 얼굴이 좀 굳어졌다. 불안함이 잠시 마음을 스쳤는데 도련님은 바로 얼굴을 펴고 허허 웃으며 내게 너무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다. 그리곤 사장에게 얼마냐고 묻자 다시 안심이 되었다.
최신식 파란 원피스를 입고 새털 모자를 쓰고 도련님과 팔짱을 끼고 시내 중심가를 걸어가니 오가는 사람들이 다들 흘낏흘낏 쳐다보았다. ‘이 도련님은 내 남자다!’라고 선언하듯 나는 고개를 쳐들었다.
“이 원피스는 소매가 편해서 좋습니다. 팔을 마구 움직이는 데 딱입니다.”
“그건 왜?”
“돌멩이 던지기에 좋잖아요.”
도련님은 눈이 커져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수원에서 좀 떨어진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동네 언니 동생들과 소꿉놀이도 하며 놀았지만 남자애들과 비석 치기 놀이도 잘했다. 7살에 나는 동네에서 제일 비석 잘 치는 오빠의 비석을 넘어뜨려 남자애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한 번은 동네 애들과 함께 염소 풀 먹이려고 산속에 들어갔는데 멧돼지가 나타났다. 풀밭에 염소를 풀어놓고 동네 애들과 아카시아 꽃잎을 뜯어먹으며 놀고 있는데 무성한 수풀 뒤에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일제히 돌아보자 키 큰 수풀 사이에 번쩍이는 눈빛이 보였다. 누군가 ‘멧돼지다’하고 소리치자 우리는 혼비백산을 해 염소도 내버려 두고 도망갔다. 그런데 나는 나무 뒤에 숨은 뒤 땅바닥에서 단단한 돌을 집어 달려오는 멧돼지의 눈을 향해 힘껏 돌을 던졌다.
‘피융!’ 돌덩이가 날아가더니 눈에 정확히 맞았다. ‘퍽!’ 멧돼지가 부르르 몸을 떨더니 깨갱 소리를 내고는 다리를 휘청이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방향을 돌려 달려가버렸다. 그러자 도망가는 동네 아이들이 다시 내게 돌아와 ‘와!’ 탄성을 질렀다. 우리들은 살아 난 기쁨에 서로를 안고 방방 뛰었다.
그 사건으로 나는 오랫동안 동네에서 ‘돌 잘 던지는 여자애’로 회자되었다. 아무래도 ‘돌던지기’ 피는 타고난 것 같다.
그날 밤도 도련님은 기방을 찾았다. 이번엔 일본 유학 때 동기들과 함께. 동네 친구들과 올 때는 도련님이 좌중을 사로잡으며 큰 소리를 쳤지만 오늘은 구석 자리 내 옆에 앉아 내 허리를 지분대고 있었다.
동료 기생들 넷이 군데군데 끼어 있었지만 술자리 분위기는 평소와 달리 심각했다. 도련님의 동기 넷은 20대 남자들이었고 그중 가운데 앉은 남자는 하얗고 반듯한 이마에 눈빛이 형형했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말투는 단단했다.
“동경에서는 더 이상 조용히 지내지 않을 모양입니다. 조만간 큰 물결이 일어날 겁니다. 준비는 끝났으니까요.”
“그러한가요?”
눈빛이 형형한 남자의 말에 서란 언니가 물었다. 그때 도련님이 내 허리를 휘감던 팔을 풀고 허허거리며 말했다.
“그 소문이 수원까지 나서 부모님 등쌀에 조선에 들어왔지 아닙니까? 돈을 끓어 버린다고 해서.”
눈빛이 형형한 남자가 힐끗 돌아보았다.
“이런. 거룩한 애국 운동을 하는데 부모님이 말리시다니.”
평소 도련님을 비웃는 서란 언니가 한마디를 하였다. 눈빛이 형형한 남자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더니 창호 문 밖을 유심히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곧 경성에서는 만세 운동을 할 거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경성에서요?”
일제히 놀란 건 동료 기생들이었다.
“저희가 가만있을 순 없지요.”
서란 언니의 얼굴이 심각해지더니 입술을 떨며 얘기를 꺼냈다. 그 말에 눈빛이 형형한 남자는 이외라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함께 만세 부르시렵니까?”
서란 언니는 단단하게 말했다.
“저희가 지난 임금님 승하때 소복을 입고 맨발로 수원 장터를 돌며 곡을 했습니다. 총칼만 안 든 춘삼월 독립군이에요.”
그 말을 듣자 나는 마음이 답답해졌다. 나도 여기 향수원 기생들의 애국심과 기개를 잘 안다. 하지만 그때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서 당한 고초를 그 이상으로 잘 알고 있다. 한마디를 해 주었다.
“언니들! 언제까지 애국 애국할 거예요. 그때 만세 부르고 나서 감옥소에 갇혀 겪은 고초를 잊었어요? 고초를 겪고 난 뒤 나라가 우리를 뭘 해줬는대요? 임금님이 우릴 알기나 했어요? 누가 잘했다고 칭찬이나 했어요? 오히려 천 것들이 나섰다고 혀나 끌끌 찼잖아요. 섬나라 것들이 와서 나라를 망쳤다고 하지만 우리 같은 기생들은 사람 취급이나 받아요?”
“저년이!”
서란 언니와 동무 기생들이 일제히 나에게 발끈하고 눈빛이 형형한 남자가 나에게 소리쳤다.
“동무들에게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왜요? 나라가 나 같은 천 것에게 해 준 게 뭐가 있어요? 내가 왜 나라를 위해야 합니까?”
찬물을 끼얹듯 좌중이 조용해졌고 눈빛이 형형한 남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때 나는 몰랐다. 평생 이 남자와 얽히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