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여 년 전까지 3년 정도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은 책에서도 나왔지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버는 것이었다. 20019년 웹소설을 출간했는데 실패하고 글을 쓰는 것이 진전이 없었다. 혼자 매일 집에서 글을 쓰는 게 너무 패배감이 들었다. 글을 계속 쓰려고 하니 정규직은 할 수가 없고 알바를 하기로 했다. 공장에 나가서 알바로 버는 돈이 짭짤했다.
두 번째는 중년 여성으로서의 우울증 때문이기도 했다. 매일 집에서 같은 생활을 반복하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한때는 사회적으로 성취하는 삶을 살았는데 지금 집에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많은 중년 여성들이 겪고 있는 그런 자괴감이었다. 공장 알바를 나가보니 뭐 그게 대수냐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었다. 돈을 버는 기쁨 외에도 포장을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겪는 일이 성취감을 안겨 주었다.
세 번째는 어렴풋한 동경이었다. 나는 80년대 대학을 다닌 여자로서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첫 수업부터 선배들에 이끌려 시위를 나갔다. (좀 그런 경향이 심한 학과였다). 대학에 다닐 때 노동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건 내 인생의 철학을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런 삶과는 무관하게 살았지만 대학 때 형성된 생각은 지금도 나의 삶을 이끄는 철학이다. 죽기 전에 노동자의 삶을 한번 겪어보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서 노동자 해방을 얘기하든 선배들이 변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물론 적당히 배반하며 소시민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는 민주화가 진전되었다. 나와 그들이 아는 것과 현재 우리가 살아 있는 모습 사이에는 커다란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다.
조형근 작가가 쓴 칼럼을 모은 ‘앎과 삶 사이에서’는 그런 나의 위치에 대해 잘 설명하고 성찰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금의 단서를 제공한다. 나는 조형근 작가의 칼럼을 몇 년째 꾸준히 읽어 와서 이 책이 나왔을 때 냉큼 구매했다. 항상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한 글들을 좋아했다.
그의 글들은 말 그대로 불편한 말, 위험한 정치가 필요한데 집이 너무 편안한 사람들에게 이 모순을 어떻게 겪어 나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모순을 그냥 겪으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옳은 선택을 하라고 촉구한다. 그래서 그의 칼럼에는 명확한 결론이 없다. 그냥 애매한 제시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종 행동은 나의 몫이 된다.
조형근 작가의 입장은 들어가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잘 드러난다. '힘센 소수의 잘못을 엄하게 따지되, 보통 사람이 져야 할 책임도 외면해선 안 된다. 때로는 거대 정당과 대기업 같은 힘센 권력의 오만을 비판했고, 때로는 내 속된 얼굴에 묻은 허물을 들추며 우리 소시민이 함께 감당해야 할 책임과 살아내야 할 일상을 돌아보았다. '
또한 다음과 같은 주옥같은 문장도 있다. ‘더불어 민주당 정권의 ‘내로 남불’ 위선에 대한 비판이 상당하다. 권력의 위선에 대한 비판은 늘 옳다. 더 준엄해져야 한다. 어떤 세력은 이참에 아예 정직한 노동을 비웃으면서 부동산이며 코인이며 투기 욕망을 정당화하고 부채질한다. 그러나 위선으로 입은 상처를 솔직한 악덕으로 치유할 수는 없다.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다. 냉소하기보다는 위선의 모순 속으로 걸어가야 할 까닭이다. 이 길을 걸어야 한다.‘ 이런 문장에 나는 열광한다. 끊임없이 삶을 성찰하고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이런 문장도 나의 마음을 친다. ’ 나도 저 역겨운 위선자 무리에 속하지 않을까? 대단한 고백은 못 되지만 내 삶은 내 글만큼 정의롭지 않다. 유독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글쓰기가 점점 힘든 이유다. 나에게 선함이랄 게 있다면 내면에서 우러나온 참된 원칙이라기보다는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연기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런 것 같다. 이 외에도 머리를 치는 벼락같은 정의들이 많다.
작가의 신간 출간 북토크에 갔다. 성격상 중년 세대가 많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대부분이 20, 30대 독자들이었다. 나만 중년이었다. 특히 청년 여성들이 많았고 그들이 많은 질문을 했다. 그녀들이 조 작가의 애매하지만 진보적인 정치적 포지션에 진심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는 게 정치라는 명제에 공감하는 많은 이들에게 ’ 앎과 삶 사이에서‘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