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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니 Nov 08. 2022

19년째 태교 중입니다만...

6. 엄마와 명절

엄마와 명절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는 명절이어도 크게 분주하지 않다. 시댁 어른들과 사촌들이 오지 않아 손님상을 차릴 필요가 없고, 우리 식구가 먹을 명절 음식만 하면 된다. 더구나 시어머니는 우리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오셔서 교통체증을 겪을 일도 없다.     


올해 설 명절에 우리 딸은 병원에서 퇴원한 엄마를 걱정하며 이번 명절 음식을 어떻게 할지 꼭 집안 며느리처럼 걱정했다.     


할머니한테 이번에는 전도 부치지 말고 시장에서 사자고 할까? 아니면 아빠가 망치든 말든 한번 해보라고 할까? 근데 시장에서 산 건 맛이 없어. 전은 엄마 전이 맛있는데. ”     


나는 출근도 하고, 이제 서서히 체력이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기서 일은 이런 정도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시아버지 형제들이 명절을 지내러 오시기 때문에, 전은 15종은 족히 넘게 만들었고,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에는 송편과 만두를 만들었다. 최근 명절에는 모일 수 있는 인원수 제한으로 시동생 가족도 못오고 하니 전의 종류와 양도 줄였고, 송편과 만두는 사서 먹고 있다.     


그런데 일도 아니라고 말했던 진짜 이유는 결혼 전 친정 엄마와 함께 만들었던 명절 음식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건 진짜 이었다.     


선산을 관리하는 아빠 과업으로 인해 친정 엄마는 다양한 제사를 지내셨다. 집안의 외아들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도와줄 여자 어른도 없었다. 그래서 막내였던 나조차도 초등학교 5~6학년때부터 전을 부쳤다.      


언니들과 나이 차이가 꽤 있었던 탓에 중학생이 될 무렵부터는 언니들 몫까지 했다. 언니들은 도시에 나가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생활을 해서 명절 전날 오후에나 도착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집에 오는 자식들을 위해 다양한 먹거리를 만드셨다. , 튀김, 식혜, 송편은 기본이고 약과, 강정, 조청까지 직접 만드셨다. 그때 나는 오히려 전만 부치고 싶었다. 뜨거운 장작불 앞에서 엿기름을 젓는 일에 비하면 전 부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약과를 비롯해 모든 음식을 자식들 갈 때 줄 것까지 만드시다 보니 그 양은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 힘든 일들을 즐겁게 하셨다. 집안의 그 많은 제사며 손님들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싫어하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분들을 보며 뿌듯해하시던 표정만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명절 음식을 하는 것이 힘든 일만은 아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나름 큰 손이셨던 시어머니와 함께 명절 음식을 하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다만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은 시어머니가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닐까 걱정될 뿐이었다.     

친정엄마는 9년 전 교통사고 이후 일을 할 수 없어, 이제는 자식들이 준비한 음식을 드신다.     

나는 지금도 많은 음식을 만들던 엄마와의 명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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