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번역하고 있는 건 동화책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게 적합한 동화책으로, 페이지 수는 200페이지 가까이 되지만 그림이 많고 글은 적어 번역할 분량은 정작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번역 일정은 내가 여태껏 맡았던 책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여유롭다. 굳이 계산하자면 하루에 대여섯 줄씩만 번역해도 될 정도. 출간 일정이 급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긴 시간 꼼꼼히 작업한 ‘완벽한’ 원고를 넘겨주길 바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아마 둘 다겠죠? ;;) 처음부터 에이전시에서 널널하게 마감을 정해서 계약서를 보내주었다. 그전에라도 마감하면 언제든 납품해도 좋다고 하면서.
상황이 그랬음에도 1차 번역은 휘리릭 끝이 났다. 책 내용이 너무 예쁘고 뒷이야기도 궁금하고 해서 나도 모르게 내달렸던 것 같다. 물론 1차 번역이니까, 꼼꼼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나 번역하기 애매한 문장과 단어들은 내 방식대로 따로 표시를 해두고 건너뛰긴 했다. 남는 기간 동안 2차, 3차, 최종, 최최종, 최최최종, 진짜최종, 이게진짜최종… 뭐 이렇게 갱신해 가며 내 맘에 들 때까지 실컷 교정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웬걸? 1차 번역 후에 첫 번째 교정을 볼 때까지는 그래도 부지런했는데, 두 번째 교정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징글징글할 정도로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한 거다. 마침 여름이 한창이라, 나는 툭하면 더운 날씨 핑계, 무서운 태풍 핑계, 시끄러운 매미 핑계를 대며 일을 다음날로 미뤘다. 또 다들 휴가다 뭐다 하면서 어디로들 떠난다기에 나도 거기 휩쓸려 오래간만에 해외여행도 갔다 오고 남편 있는 제주도도 갔다 오고 그랬다.
그 와중에 원고 청탁까지 들어와서(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ㅎㅎ) 원고를 제출할 때까지는 번역가 모드에서 오롯이 작가 모드로 지내기도 했다.
해야 할 일을 완성하지 못하고 찝찝한 상태로 놀 때는 왜 그리도 시간이 빨리 가는지.
어느덧 한 달도 남지 않은 마감일.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번역 원고를 열고 교정을 보는데…
어이쿠야, 내가 건너뛴 문장이랑 단어들이 이렇게 많았나? 그동안 대체 어디 갔다 왔냐며 항의라도 하듯이 원고 곳곳에 박혀있던 물음표들이 사정없이 내게로 달려든다. ‘요 단어는 어떻게 옮길 건가요?’ ‘요 문장은 어떻게 수정할 건가요?’
건너뛰기가 이렇게나 무섭다.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