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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Feb 11. 2022

관리형 독서실은 바람직한가


아, 너무 공부가 하기 싫다. 이렇게 해서 합격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어떻게 해야 공부를 할지 이리저리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요즘은 관리형 독서실이 유행이란다. 휴대폰 빼앗고 벌금이나 체벌 규정을 만들어서 강제로 공부를 하게 만들어준다. 공부를 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원해서 하는 거니까 효과는 좋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게 옳은 걸까? 잘 모르겠다.


나의 미래의 이익을 위해서 현재의 무언가를 포기하는 건 인간이 아니라 동물들에게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더 좋은 직장을 위해서 지금 힘들게 공부하는 인간이나 더 나은 사냥감이나 유리한 사냥 장소를 만들려고 눈 앞의 작은 먹잇감을 포기하는 동물은 다를 바가 없다.

문제는 현재를 희생하는 행동이 아니라 현재를 희생하는 방법이다. 자의로 나의 기본권을 포기하고 타인에게 내 행동을 억제당하는 일은 바람직한가? 내가 동의하고 상대도 동의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자살하고 싶지만 스스로 죽는 것이 무서워 타인에게 나를 죽여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가정하자. 여기에 상대방도 동의를 해서 나를 죽였다면 그 행동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물론 동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위의 예시는 의사 조력 자살(안락사)과 다를 바가 없다. 전세계에서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국가를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위의 사례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종합하면 서로 합의했다고 해서 그 합의가 모두 정당한 일은 아니라는 거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관리형 독서실은 정당한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

혹자는 본인 의지로 공부하겠다고 핸드폰을 피처폰으로 바꾸는 행동이나 핸드폰 없이 스터디카페에 가는 행동, 스스로 규정을 만들고 그 규정을 어기면 벌을 받는 식의 자기관리와 뭐가 다르냐고 할 수도 있다.

충분히 제기할만한 이야기다. 결국 관리형 독서실은 본인이 스스로 정한(어쨌든 동의했으므로) 규칙에 따라 나의 행동을 구속하되, 그 구속행위를 하는 업무를 독서실측에 맡긴 것과 비슷하다. 독서실은 학습자가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도록 도와줄 뿐이다. 독서실이 자의적으로 규정을 해석하고 학습자들을 강제적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은 아니다. 그렇다면 관리형 독서실은 인격과 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개인이 사용하는 도구의 하나로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관리형 독서실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관리형 독서실은 스마트폰과 같은 도구가 아니다. 당장은 도구의 역할을 하지만, 독서실은 기계적이고 중립적인 장치가 아니라 인간에 가깝다. 총무가 규정을 해석하고 총무가 개인에게 제재를 가한다.

나의 권리와 스스로에 대한 통제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유의지로 나의 자유의지 일부분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아무리 미래를 위해 현재의 일부를 포기(또는 투자, 저축)하는 것이 동물의 생리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권리와 의지를 포기하고 타인에게 나의 통제권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한가?

잘 모르겠다.

사실 서로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공부하겠다고 돈까지 주면서 나의 의지와 신체를 통제당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는 게 없어서 그런가 그런 방향으로 글이 쓰여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글을 쓰다보니 관리형 독서실이 내 눈에는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공부를 더 해야 할까... 세상이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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