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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Jun 19. 2023

수능 논란과 공교육을 위한 변명

지난 16일에 불붙은 6월 모의평가 논란이 활활 타올라 이제는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처음은 고공단 나급(2-3급)인 담당 국장 경질로 시작했다. 그 이유는 6월 모의평가 국어 문제 중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문제가 출제됐기 때문이다. 연이어 평가원 감사가 결정됐으며 대통령실의 비문학 출제 금지 지시가 보도됐다. 오늘은 킬러 문제 배제 지시와 평가원장 사임이 있었다.


대통령실은 비문학 지문과 통합 교과형 문제가 교육과정 범위 밖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대통령실이 문제 삼은 11번 문제는 엄연한 교육과정 내 문제로 보인다. 비록 내가 국어 전공은 아니지만 얕은 지식으로 살펴보겠다.


현행 교육과정인 15개정 교육과정 중 고등학교 '독서'과목의 성취기준이다. 독서 분야의 학습 요소는 '인문·예술 분야의 글 읽기, 사회·문화 분야의 글 읽기, 과학·기술 분야의 글 읽기' 등이다. 대통령실이 말한 것처럼 국어가 아닌 다른 내용을 소재로 출제했다고 해서 교육과정 밖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해당 '독서의 분야' 성취기준의 평가 방법 및 유의사항을 보면 11번 문제는 교육과정에 매우 충실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문제가 된 지문은 화학 지문으로 '과학 기술 분야'의 제재이며 11번 문제에서는 그래프라는 시각 자료까지 활용해 문제를 냈다.


대통령실의 주장처럼 배경지식이 필요한 문제도 아닌 게, 문제에 사용된 개념은 모두 지문에 제시됐다. 1문단에서 "활성화 에너지를 조절하여 반응 속도에 변화를 주는 물질을 촉매라고 하며, 반응 속도를 빠르게 하는 능력을 촉매 활성이라 한다."라며 촉매와 촉매 활성이 무엇인지 알려줬다. 촉매가 금속물질에 흡착될 때의 반응은 2문단에서 "반응물의 흡착 세기는 금속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 흡착이 약하면 흡착량이 적어 촉매 활성이 낮으며, 흡착이 너무 강하면 흡착된 반응물이 지나치게 안정화 되어 표면에서의 반응이 느려지므로 촉매 활성이 낮다."라며 명시하고 있다. 


11번 문제만 따로 나왔다면 배경지식이 필요한 과학 지문이지만, 현행 비문학 문제는 지문에서 풀이에 필요한 배경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해당 문제는 배경지식과 관련 없이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문제이고, ebsi 기준 정답률 80%가 넘어가는 문제이다. 정말 해당 문제가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돼 배경지식을 요구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맞출 수 없다. 배경지식이 있으면 풀기 수월한 것은 맞지만, 배경지식이 없으면 풀 수 없는 문제는 아니다. 이는 비문학 지문의 특성상 당연한 현상이다. 


오히려 평가원은 지문의 내용과 실제 사실의 내용이 충돌할 경우, 지문의 내용을 우선시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적이 있다. 물론 평가원이 일부러 사실과 다른 내용의 국어 지문을 내지는 않겠으나, 이런 입장은 수능 국어를 풀기 위해 교육과정을 뛰어넘는 배경지식을 요구한다는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증명하는 방증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현행 수능 국어의 문제는 빡빡한 시간이다. 영어 절대평가로 인해 실질적으로 수능 과목이 하나 줄어들었고, 수학과 탐구는 더 이상 어려워지기 힘들 정도로 어려워졌다. 남은 건 국어뿐이었기에 비문학 지문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문제 수와 시험 시간은 같지만 지문 길이가 크게 늘고 그에 비례해 정보량도 늘었다.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해서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는 모든 문제를 풀기 힘들어졌다. 


학생들은 정석적인 독서 방법론이 아니라 지문을 해체, 분석하고 기술적으로 문제를 풀며 추가로 지문의 배경지식을 설명해 주는 학원가에 기대기 시작했다. 교사는 이런 식의 수업을 할 이유도 능력도 없다. 교사는 독서 방법론과 교수법을 배워서 현장에 나올 뿐 객관식 문제풀이 기술을 배우지 않을뿐더러, 이런 문제풀이 훈련은 교육과정의 취지와 목적에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풀이 수업을 할 수 없는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사람들은 공교육의 붕괴 이유를 교사의 능력 부족으로 꼽는다. 사교육에 비해 수업의 질이 떨어지니까 당연히 경쟁에서 밀려 도태된다는 논리다. 부정할 수 없다. 인강 강사나 대치동 1타 강사에 비해 평균적인 교사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교 수업의 질 부족이 반드시 교사의 능력 부족 때문만도 아니다. 교사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식의 문제풀이 수업을 할 수 없다.


강사와 교사의 현실적인 차이는 평가다. 교사는 교육과정에 맞춰 수업을 짜고 진행할 의무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평가할 의무를 갖고 있다. 평가자의 입장에 서있는 한 학원처럼 족집게처럼 문제를 골라줄 수도 없고, 출제 범위를 임의로 한정해 줄여줄 수도 없다. 직접적으로 어떤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이렇게 풀라고 이야기해 줄 수도 없다. 수능 기출문제를 가져와 문제풀이를 하는 방식의 수업은 내신시험의 출제범위를 선정할 때 문제가 된다. 이 경우 풀었던 기출문제를 그대로 가져오거나 내용을 조금만 바꿔서 출제하기도 어려우며, 교사가 직접 문제를 만든다면 범위 시비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결국 교사는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하나하나 훑으며 원론적인 이론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 개념을 설명하고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수능에서의 중요성이 아니라 개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원론적인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수업방식은 학생들에게 '비문학 지문을 잘 풀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으라'는 식의 내용 없는 수업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문제풀이 수업이 바람직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평가라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 에라도 문제풀이 수업은 학교에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변명을 해본다.



정리하자면, 먼저 이번 대통령실의 국어 문제 출제 지적은 근거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교에서 문제풀이 수업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교사가 강사와 달리 평가자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라는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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