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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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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May 27. 2024

스스로 굴리는 불행의 쳇바퀴

합격은 했지만 꿈은 없는

올해 2월, 임용 시험에 붙었다. 지금은 공익 복무 중이기에 내년 9월에나 발령이 난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나를 부러워한다. 합격했으니 20대의 가장 큰 걱정인 취업 걱정이 없다며 덕담하는 선생님들도 많고, 발령까지 시간이 1년 넘게 남아서 그 여유로운 시간이 부럽다고 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지레 짐작해 보면, 친구들 중 내가 가장 빠르게 취업에 성공했으니 '마음 편하겠다' 하는 생각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다.


재수 없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별로 행복하지 않다. 별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하루하루가 괴롭다.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합격했던 순간을 돌이켜보면, 그때는 꽤 기분 좋았던 것 같다. 1차 점수가 낮았기에 합격을 기대하지 않던 상태에서 받은 합격 문자라 더더욱 그랬다. 벅찬 마음과 함께 엄마와 2차 준비를 도와준 선생님, 선배, 동기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드디어 내가 인생에서 뭔가를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그때뿐이었다.



2월이 다 지나고 3월이 되니 다시금 불만스러움이 밀려왔다. 원래 내가 준비하던 시험은 교사 임용시험이 아니었다. 나는 5급 공채를 준비하고 있었고, 3차례 낙방 끝에 도피성 복학을 했다. 졸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교생을 갔는데 그 경험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교사로서의 삶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번 했다. 하지만 확신은 없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누누이 얘기해 주셨듯, 교생은 학교의 아이돌이고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처럼 환호받는 경험은 교생밖에 없으니까. 실제 학교 현실은 내가 느낀 것과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검증을 위해서 학교에 시간강사로 나갔다. 주 9 시수 수업을 담당했고, 고1과 고3 수업에 들어갔다. 고3 수업은 정말 최악이었지만 고1 수업은 꽤 재밌었다. 다만, 고1 수업 중에도 유쾌하지 않은 일들은 있었다. 교사에 대한 확신은 점점 떨어져 갔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교사 임용시험을 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5급 공채는 자신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훈련소에 다녀온 다음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운 좋게 붙을 수 있었다. 합격한 순간엔 기뻤지만, 그로부터 2주가 지나자 합격의 기쁨은 사라졌고 '신규'로서 발령받지 못하고 '공익' 신분으로 학교에 남게 됐다. 내가 교사라는 현실감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생각이 많아졌고 불만이 생겼다.


남들에게는 생각보다 교사라는 삶이 맘에 들어서 진로를 바꿔 임용을 쳤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분명 교생 때는 그랬지만, 시간강사 이후에는 그런 맘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도망쳤을 뿐이다. 나가 처음 달려가던 결승점에 도달할 자신이 없어지자, 이런저런 변명을 대며 옆길로 빠져 다른 결승점에 도달했을 뿐이다. 그 사실이, 내가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병신이라는 걸 인증하는 꼴 같아서 너무 괴롭다. 이곳이 결승점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고, 교사가 가치 없는 직업이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할 뿐이다.



다만, 내가 5급 공채를 준비했던 이유도 특별하진 않았다. 열등감 때문이다.

나는 수능을 다시 보는 등, 대학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았지만 다니는 대학교 간판에 불만이 있었다. 내가 서울대에 갈 재능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모교 간판의 재능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능을 다시 보지 않으면 간판을 바꿀 기회는 없고, 나는 재수해서 바꾼 간판이 지금 간판과 비슷한 학교일까 봐 불안했다. 서울 사립대에 갈 돈도 없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5급 공채를 준비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사람들만 치는 시험이니까. 게다가 심심풀이 삼아서 쳐본 1차 시험도 공부조차 안 하고 가볍게 합격했으니까. '사무관 타이틀을 달고, 학벌 콤플렉스를 날려버리자. 아무도 날 무시하지 못할 거야' 하는 생각으로 나는 5급 공채를 시작했다. 훌륭한 교육 정책을 짜서 모두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가겠다는 꿈은 나중에 있어 보이기 위해 덧붙인 립서비스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5급 공채에 합격하고 나서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만약 일행으로 직렬을 돌려 합격한다면, '교행으로 붙을 자신 없어서 지방대 가산점을 받기 위해 일행으로 돌린 패배자'라고 나를 욕할 것이며, 교행으로 붙는다 하더라도 주변의 기준선에 맞춰서 학부 간판이 모자라고 나이가 많은 나 자신을 패배자라 욕할 게 분명하다. 남과의 비교와 열등감을 연료 삼는 불꽃은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타오른다. 나는 지금 교사가 되고 나서도 불행해하듯, 5급 공채에 합격해도 끝없이 불행해하며 괴로워할 거다. 어차피 합격도 못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그걸 알면서도, 나는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저 사무관이라는 자리를 거머쥔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지고 모든 게 마법처럼 해결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한번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저 타이틀을 따지 못한다면 내가 너무 한심하고 병신 같아서 도저히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 의사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나는 스스로 불행을 만들고 불행을 찾아다니며 나를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만드려고 한다. 이는 행복해질 수 없는 불행의 챗바퀴를 끊임없이 돌리는 일임을 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챗바퀴를 멈출 수 없다.


이젠 내 어릴 적 꿈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군인이나 대통령이었던 적도 있지만, 공무원이었던 적은 없다. 교사라고는 좀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정작 교사가 된 나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지금 바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타이틀을 따는 걸까,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는 걸까, 남에게 인정받는 걸까, 내가 행복해지는 걸까. 아니면 내가 불행해지는 걸까. 그냥 죽고 싶다.




추신.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두 달 전 내게 늦은 답장을 주신 분께.

장 줘서 고맙습니다. 미안해할 일은 아닙니다. 저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하지만, 전 선생님께서 말해주신 그럴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선생님이 잘못하신 건 없으 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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